창조와 섭리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참 좋은 초가을의 날씨들을 허락하셨습니다. 가을은 땅위는 무르익어가는 열매, 그리고 위로는 푸르러만 가는 하늘이 특징입니다. 가을 하늘입니다. 하늘은 우리에게 싱싱하고 아픔다운 상징적인 뜻을 줍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소원하다 일찍 요절한 윤동주 시인의 애절하고도 청순한 마음입니다. 그 시인의 “괴로움”은 부끄러움 없기를 바라는 속사람과는 다르게 부끄러움을 만들어가는 자신의 연약성을 바라보는 결과인 것 같습니다. 자연의 한 부분인 하늘만 바라보고 그 하늘을 기준으로 삼으면 괴로움을 극복하거나 승화시키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스데반은“...하늘이 열리고 인자(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8:56)고 증거했습니다. 하늘 만이 아니라 하늘을 주장하시는, 하늘의 주인, 창조주, 구주 예수님을 바라본 스데반입니다. 그랬기에 비록 그 예수님이 구세주, 주님, 하나님이라고 증거하다 돌에 맞아 순교했을지라도 그의 일생은 영원히 아름답고 귀합니다. 가을에 하늘을 많이, 많이 바라봅시다. 위를 바라보는 것, 곧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엣 것을 생각지”(골3:3:2) 않는 사람이 크리스찬입니다. 현대의 특징은 너무 강하고 교묘하게 사람들로 하여금 땅엣 것에 집착하게 하는 것입니다.하늘, 곧 하늘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스데반 처럼 바라볼 때 땅 엣 것들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여 한 주간 특별 새벽기도회를 갖습니다. 참여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가져온 특별 새벽기도회에 많은 성도님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교회의 창립 기념일을 맞아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정리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서 이루어진 공동체이기에 예수님의 증인됨이 그 존재 목적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예수님의 증인 되는 것, 땅 끝까지 이르러 함께 예수님의 증인되는 비죤과 사명에 촛점을 맞추어야합니다. 이 가을에 하늘이 그 영광을 드러내고 찬양하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