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비죤의 교회 
                                        요한 계시록 3 7-13

 ()” 한국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뜻이 있습니다. “사립 어릴 때의 고향을 생각나게 합니다.  독립문 대한민국의 개화 일본 제국주의 압제에서 독립을 위해 힘쓴 선배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숭례문, 광화문, 동대문 서울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닫히고 열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문이 닫혔다하면 안전과 보호의 뜻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히거나 끊어지거나 끝난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5 10에는 문이 닫힌지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신랑을 기다리던 10명의 처녀 가운데서 5명은 기름을 비하지 않았기에 신랑이 문이 닫혔습니다.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그런데 문이 열리는 것은 좋습니다. “입학이나 취직의 문이 열렸하면 희망과 기쁨의 소식입니다. “문호가 개방, 열렸다하면 발전과 진보가 이루어진다 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 리라!”,  오늘 본문 8절입니다. “열린 문을 두었으되”, 무한한 축복과 가능성의 문입니다. 문이 이미 열려있다고 말씀하십니다오늘 성경은 주후 100 터키 지방에 있었던 7 개의 교회들 에서 빌라델피아 교회에 주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열린문의 축복입니다. 창립 기념 일인 오늘, 우리 교회 앞에 이미 열려져 있는 축복과 가능성의  문입니다.

 누가 문을 여시는가요?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 7절입니다.  누구이신가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  하나 나라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6 19에서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천국의 직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수님이 천국의 주인이시고 왕이시기에 베드로에게 직분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요한계시록 1 18 절입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주인이신 예수님입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권세는 최고, 최대의 권세입니다. 천지 만물과 존재하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볼지어다, 내가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교회에 모든 축복과 가능성의 문을 이미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세력도, 누구도 닫을 없습니다.

 수년 전에 어느 미국 교회 앞을 지나갔습니다. 교회의 표시판에 이런 초대의 글이 적혀있었습니다누구든지 삶의 문제꺼리가 있으면 들어오세요.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삶의 문제꺼리가 없다구요? 그렇다면 제발 들어오셔서 떻게 그런 삶을 있는지 알려주세요!” 문제꺼리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 꺼리일지라 예수님께 기도하면, 특별히 성도가 함께 기도하면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이 열어주십니다, 해결해주십니다,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믿으시는가요? 예수님은 불가능이 없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교회에 축복과 가능성의 문을 이미 열어놓으셨습니다.

성경은 열린 문이 무엇이라고 가르쳐주는가요?
마음의 문입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 님이 아무리 크고 놀라운 축복과 가능성의 문을 열어 놓았을지라도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받아 누리며 유통할 없습니다.  주께서 마음의 문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사도 행전 16 14절입니다. 루디아라는 여인의 마음의 문입니다. 마음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주께서”, 예수님이 여신 것입니다. 여인 루디아의 마음의 문이 열린 것은 유럽의 축복의 분이 열린 것입니다. 루디아는 유럽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의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루디아의 마음의 문이 열려서 바울의 말을 청종 입니다. 바울의 , 성경을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마음의 중심에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루디아의 집에서 유럽의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도 루디아 처럼 열려지기를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져서 아멘으로 응답하기에 말씀이 힘이 되고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어서 생명이 넘쳐나기를 간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교회를 허락하신 유는 교회로 모인 성도들의 마음의 문이 열려져서 말씀을 받아들여 마음이 온전히 새롭게 변화되기 위함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 이라도 말씀으로 변화될 우리가 사는 지역이 변화되고 나아가 상이 변화될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변화되어 변화시키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하나님이 구원하셨습니다. 

젊은 여성도의 간증입니다. 철학, 문학,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신론자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을 없다고 판단하며 살아갔습니다. 책을 만들어 내는 어느 출판사에서 일했습니다. 심히 하는 만큼, 꿈을 꾸는 만큼 살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책은 휴대 전화처럼 팔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불만이 계속 쌓여가서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개미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상에 유행 따라 사는 것이 답답했습니 . 무엇을 위해 이렇게 쫓기며 사는 것일까,   허무해졌습니다.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답을 찾고져 회사를 그만두고 도서관으로 출근해 철학 책들을 파고 들었습니다. 거기에도 해답은 없었습니다. 철학자들이 자살하고 인생을 탕진한 것을 알고 우울해졌습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언어 연수 핑계로 영국에 갔습니다. 어느 일이었습니다.  머물고 있는 조용한 영국 마을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예배당 구석에 가만히 앉아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을 아주 다정하게 잡고 교회당으로 들어왔습니다. 부부와 교제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부부로 부터 자기가 그렇게도 찾아왔던 참된 안식, 평화, 기쁨, 행복, 삶의 만족이 어떤 것인가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비결이 무엇일까, 바로 예수님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젊은 성도의 고백입니다, “환경은 그대로이지만 이제 불안하지 않다, 주님의 뜻과 질서 안에 하루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평안한가를 체험하기에 진정으로 감사하며 기쁨과 만족을 풍성히 누리며 살아가는 행복자이다.” 예수님의 교회, 교회의 지체인 성도가 문화와 언어가 다른 경우에서 일지라도 영혼을 변화시킬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보라, 내가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열린 문은 전도의 문입니.
예수님이
우리 교회에 전도의 문을 이미 열어놓으셨음을 믿습니.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하시기를 구하라…” (4:3)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회의 성도에게 기도하기를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전도의 문이 열려서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도 기도합시다, 오늘 하루 주님이 전도의 대상자를 만나게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간절히 전도 대상자를 만나게 달라고 기도하면 성령님이 만나게 해주실 확신합니다.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고전16:9),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나눈 간증입니.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효과적으로 영혼들을 구원하 기회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효과적인 전도의 기회가 더욱 많아지도록 인도하시고 축복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열린 문은 놀라운 축복의 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신명기 28 12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언약의 성 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는 자에게는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주십니다. 예수님의 값으로 죄가 용서함 받은 것을 믿기에 아들과 삼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항상 제일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인간의 부모도 그러한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어떠하실까요? 자녀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허락 해주심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특별히 누구에게 그런 문들을 열어주시는가요?
볼지어다, 내가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을 키며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8 절입니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누구 앞인가요?  적은 능력을 가지고 말을 지키며”, 주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사람의 눈이나 평가로는 적은 능력 사람입니다. 적은 무리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조건이 변변치 않게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수년전에 한국에서 우리 교회를 방문한 분이 있었습니다. 분은 장로님이었습니다. 친교를 끝내고 작별의 인사를 나눌 때였습니다, “목사님,  모든 것이 좋은 미국 교회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니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의 눈에 초라하게 작게 보여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이 열린 문을 두십니다. 하나님은 무리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오직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랑하고 아멘으로 더욱 순종하는 앞날되기를 간구합니다. 열면 닫을 자가 권능의 주님이 모든 축복의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오래 어느 미국 교회 파킹장에서 유전이 터졌습니다. 유전으로 인해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드렸습니다.  공동의회를 열었습니다. 공동의회의 의제는 유전에서 나오는 돈을 어떻게 것인가 였습니다.  유전의 수입을 교인들이 공평하게 나누자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아울러 덧붙여서 결정한 것은 새로운 교인은 받아들이지 않기로 것입니다. 교인이 들어오면 입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야기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하나님이 무한한 은혜와 축복과 가능성을 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무진장한 영적 유전입니다. 말씀 안에 약속된 모든 축복들입니다. 복음입니다. 예수님입니다. 지금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보장해주시는 모든 영원하고 신령 복들입니다. 은혜와 복들을 함께 누립시다. 우리 끼리만 누리 것으로 멈추지 맙시다. 널리 나누어주십니다. 영적 은혜와 복은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지고 넘쳐납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여기 모인 우리들을 사용하셔서 은혜와 복을 끝까지 나누고 증거하도록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 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