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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으로도 인도하시는 하나님
민수기 9장 15-23절
하나님은 필요하다고 판단하실 때 구름을 사용하셔서도 인도하십니 다. 성경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구름을 통해서라도 인도하시는 인도자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나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갈 때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시고 공급하셨는 데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으로 하신 것을 증거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특별히 어떻게 구름으로도 인도하셨는가를 성경이 증거해주는 대로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항상, 구체적으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는 분 이십니다.
오늘의 하나님의 말씀 15-16절을 다 같이 읽으십시다,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니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에는 불 모양이 있었는 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지금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막을 지었습니다. 그 성막 위에 낮에는 구름이 덮었고 밤에는 불 모양 같은 것이 덮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구름과 불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자연 물체를 사용하셔서 택하여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친 백성과 함께하여주심을 실물 교훈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 250여만명이 애굽을 나오기는 했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백성을 어디로, 어떻게 인도해나아가야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요즈음 같이 지도나 목적지까지의 길을 안내하는 기계인 GPS를 주신 것도 아닙니다. 앞날을 도저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있을까,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서 무엇을 먹어야 하나…앞으로 나아가야하는 광야 여행길에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더우기 광야입니다. 한마디로 죽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광야입니다.
1996년에 저가 아내와 함께 40 여명의 목사님, 사모님이 함께 한 성지여행 팀으로 그 광야기를 지나갔었습니다. 물론 우리들은 비교적 튼튼하고 성능이 좋은 버스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안내하는 분이 치밀하게 잘 계획하여 지나가는 광야였습니다. 시속 50 여 마일의 속도로 달렸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도 광야입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물줄기 하나도 볼 수 없는 아주 깡 메마른 광야였습니다. 그 광야를 지금 250여만명의 장정은 물론 어린이와 연로한 분들이 걸어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앞날을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불안과 공포와 염려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우리가 사는 오늘날의 형편도 별 다를 것이 없습 니다. 아무리 지식과 기술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전하여 화성에 까지 우주 탐사선을 보낼지라도 역시 앞날을 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이 지구위를 사는 인간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살아갈 앞 날에 대한 불안이나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다, 과연 나의 앞날은 안전할까, 건강할까, 베고프지는 않을까, 위험은 없을까, 어려움은 없을까…그런 생각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구름과 불기둥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여주심의 증거입니다. 앞날을 가장 좋게 인도하여주신다는 하나님의 보장이고 증거입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겼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의 계곡 광야 길을 40년 동안 죽지 않고 배고프지 않고, 심지어 신발이 헤어지지 않으며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앞날을 가장 지혜롭고 복되고 안전하게 사는 길은 구름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지금도 그 권능이나 지혜나 사랑이 여전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가 말틴 루터가 한 번은 어떤 일로 인해 몹시 마음이 상하며 불안하고 의기 소침하게 되었습니다. 걱정과 근심을 떨쳐버리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날 저녁 무렵 작은 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해가 서산에 넘어가 어둠이 내릴 때 그 새는 노래를 부른 후 머리를 날개 밑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새의 모습을 본 루터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아, 저 새는 나와 비교하면 자연 피조물 가운데 극히 작은 한 피조물이다, 그런데도 내일에 대한 염려나 걱정이나 불안 없이 하나님의 보호, 인도하심을 저토록 굳게 확신하고 있구나! 그러기에 편안히 잠을 자는 것이 아닌가! 루터는 작은 새 한 마리를 통해 자기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깊이 깨달아 회개하고 감사하며 앞날을 믿 음으로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16절의 한 마디를 기억합시다, “항상 그러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공급하심이 항상 있었다는 것입니다. “항상 그러하여”,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들을 은혜와 축복가운데서 가장 좋게 인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렇게 믿으시는가요? 믿으시기에 감사하시는가요? 그렇다면, “항상 그러하여”, 항상, 앞날에 도 우리 하나님은 더 좋게, 안전하게, 복되게 우리들을 인도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좋고 안전한 인도하심을 받는 비결입니다.
오늘의 성경 17-22절에는 두 마디가 되풀이 됩니다, “진행하고” 그 리고 “머문다, 유진한다”입니다. 곧 이스라엘이 언제, 어떻게 앞을 향해 나아갔고 또 언제, 어떻게, 어디에 머물었는가 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들이 이 현세를 하루 하루 어떻게 사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진행하는 것입니다, 일하며 살고 뜻하고 계획하여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문다”입니다.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순간에 이 땅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 현세에서의 삶입니다. 250 여만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아가는 광야 생활 전체였습니다. 그 광야 생활 전부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입니다.
예를 들면 좀 더 편안한 곳이라고 더 오래 머물렀는가입니다. 광야에도 간혹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야자수 나무가 있고 또 우물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더 편안한 곳입니다. 그 곳이라고 더 오래 머 물었는가 입니다. 반대로 불편한 곳이라고 급하게, 빨리 떠났는가 입니다. 머물고 떠나는 것, 곧 무엇이 그들의 삶 전체의 결정이나 행동을 지배하고 주장했는가입니다. 사람의 판단이나 감정이나 느낌이나 생각에 좋을대로 였는가 입니다.
18절 입니다, “…여호와의 명을 쫓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쫓아 진을 쳤으며…” 19절입니다,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 하였으며…” 20절입니다,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23절입니다(다 같이 함께 읽으십시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지켰더라).”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면 가고 멈추라고 하시면 멈추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렇게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 지식이나 경험이나 느낌이나 판단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생각하고 뜻하고 계획해야지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과연 합당한가 입니다. 그렇게 살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광야 같은 세상 길을 지나가는 우리가 가장 좋고 안전하고 복되게 살아가도록 인도해주시며 보호해주시고 공급해주시기를 원하시고 기다리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게 먼저 묻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않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살펴본 후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안전하고 복된 것입니다. 복되고 풍성하고 안전한 길은 인간의 꾀나 지식이나 경험이나 판단에 만 맡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뜻이나 감정이나 말의 숨은 동기까지 다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광야길을 가장 좋게 인도하실려고 기다리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의 명을 쫓아 머물거나 나아가는 순종에는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구름이 떠오를 때 까지 기다려야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하나님이 오늘 날 우리들을 인도하시는 방법은 구름이 아니라 구름보다 영원히 더 확실하고 좋은 성경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구원받은 성도와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감동입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이나 지도입니다. 교회라는 예수님의 공동체의 가르침을 사용하셔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순종하는 데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감정이나 판단에 따라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 특별히 교회의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주의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성급하게,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보여주실 때까지 때로는 인내로 기다리는 것 입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가장 좋게 인도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을 쫓아 순종하는 데는 겸손히 행동에 옮기는 열심이 필요했습니다. 기다리다가 구름이 떠오르면 언제든지 즉각 진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중단하고 진행하는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변명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각 진행하는 행동의 열심이었습니다.
오래전 대서양을 항해하는 배가 있었습니다. 대서양 한 가운데를 지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여객이 보니까 선장이 배의 높은 돛대 위에 올라갔다 내려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선장님, 그렇게 높은 돛대위에 왜 올라갔다가 오십니까?” 선장의 대답입니다, “돛대 위에 나침반이 있어요. 그 나침반을 보고 오는 중이오.” “선장님, 이 갑판 위에도 나침반이 있지 않습니까?” “아, 이 갑판 위의 나침 반은 배 안에 있는 여러가지 쇠붙이들 때문에 때로 정확하게 방향을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돛대위의 나침반은 쇠붙이의 영향을 받지 않기에 정확히 방향을 가르쳐줍니다. 그러기에 이 배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는 돛대위의 나침반을 보야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