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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평안으로 충만한 사람
로마서 8장 5-11절
나의 마음 속에 소망이 있네
그리스도가 주셨다네
근심중에 있어도 변함이 없네
아직 안 보이는 걸 기다리는 소망
나의 마음 속에 기쁨이 있네
그리도가 베풀어주셨다네
세월 흘러 간데도 소멸치 않네
세상에서 얻지 못한 기쁨 있다네
내가 전진해 나갈 한 길 있네
그리스도가 활짝 열어주셨다네
어두움이 드리워도 헤매지 않네
저 천국에 이르는 기쁨이 있는 그 길
일본의 “눈 깜빡이 시인”으로 불리우는 미즈노 겐조(水野源三, Genzo Mizuno, 1937-1984)의 시입니다. 그 시인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심한 열병을 앓다가 후유증으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손발은 물론 온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 누워있어야 하는 전신장애의 식물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화하거나 생각이나 감정, 뜻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눈꺼풀이었습니다. 그러니 죽음 같은 절망의 삶 이었습니다.
어느 날 근처 교회의 목사님이 심방을 왔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떠날 때 성경을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희생의 사랑과 도움으로 겨우 성경을 눈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눈꺼풀의 움직임으로 성경 한 페이지를 다 읽었다는 표시를 하면 어머니가 성경책장을 넘겨주곤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게하는 복음이고 능력입니다. 미즈노 겐조가 성경을 읽는 중, 예수님이 자신의 구세주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좌절과 절망과 한숨이 이제는 희망과 기쁨과 감격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눈꺼풀로 표현한 감사와 기쁨과 믿음의 말들을 그의 어머니가 받아 글로 적은 시들이 수백편이었습니다. 그 시집들은 일본의 베스트 셀러였습니다. 지난 1984년에 47살의 나이로 천국에 갈 때까지 미국의 헬렌 컬러, 한국의 송명희 자매 못지 않게 비록 몸은 불구였으나 예수님을 만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글로 표현하여 수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소망과 목적을 불러 넣어주었습니다. 귀하고 위대한 일생이었습다. 그 분의 표현대로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힘들고 어려움이 큰 사람들에게 모든것을 승리로 바꾸는 소망의 능력이십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영의 생각”입니다. 우리의 영, 곧 심령속에 넘쳐나는 생각입니다. 곧 그리스도가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것은 곧 “생명과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고 평안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 명과 평안은 마음 속에 넘쳐나서 밖의 어떤 형편과 어려움이라도 다 이겨내게하는 능력입니다. 그 생명과 평안의 능력이 얼마나 확실하고 구체적인가를 미즈노 겐조가 보여준 것입니다. 그 시인만이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을 진정으로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 그 영혼이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생명과 평안으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그 생명과 평안으로 승리하도록 구원하여 자녀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산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이 생명과 평안을 누리며 매일을 승리하며 살아가느냐 입니다. 믿는 신앙 생활이 믿지 않는 불신 생활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믿는 자들은 불신자들이 알수도 없고 누리지도 못하는 생명과 평안을 알고 누리며 또 전하여 주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 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어소서”(469 장)
그야말로 생명과 평안의 유통자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느냐 입니다. 만약에 생명과 평안의 유통자로 살지 못 한다면 왜 그런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입니다. 오늘의 성경은 한 마디로 “육신의 생각”이라고 증거합니다. 5-11절에는 “육신”이라는 단어가 무려 6번이나 나옵니다.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이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데 얼마나 큰 방해가 되는가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하여 수 많은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과연 “인간, 곧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기도 해 왔습니 다. 예를 들면 유물사관입니다. 사람을 완전히 육신의 존재로만 보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불라드미르 레닌은 고전 음악을 듣거나 미술품과 자연을 감상하는 것, 즉 아름답고 귀한 문화적인 경험이나 활동을 완전히 거부했습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공산주의 이론의 실천에 어긋나고 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고 단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공산주의 기초나 기본은 무엇인가 입니다. 사람의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영혼이 잘 되고 영혼이 생명이나 평안을 누리는 것을 결코 인정하거나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공산주의 이론은 결코 사람의 참된 행복과 안녕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 옛날 헬라 철학이나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육신과 정신의 완전한 분리나 차별입니다. 분리하는 이유는 육신이나 물질 같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들은 아주 가치가 낮다는 것입니다. 육신이나 물질은 속되고 더럽고 추하다고, 심지어 악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정신만이 본질이고 육신은 껍데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을 어떤 존재로 가르치는가요? 하나님이 먼저 남자의 몸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여자는 물론 남자의 갈비뼈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흙으로 지은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어셔서 생령, 곧 살아있는 특별한 존재가 되게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창조를 한마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증거합니다.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성품이나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형상”은 곧 닮은 면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육신이 없으신 영이십니다. 그 영이신 하나님을 닮은 면이 사람 속에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창세기 1, 2장에서 지으신 그대로 살아왔으면 되 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누리도록 예비하신 모든 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이 나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항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사람 속에 두신 하나님의 형상이 타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얼그러지고 깨어져서 제 기능을 그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타락하게 유혹한 사단의 속성을 닮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타락한 본성을 갖게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타락한 본성이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그 본성이 힘이 세어서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육신”이라고 표현합니 다.
타락한 본능인 육신의 세력이 겉으로는 잘 모르도록 숨어있는 것 입니다. 교양이나 수련이나 노력으로 덮여있지만 언제나 나타나서 행패를 부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6절입니다, “사망”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 이라”, 7절입 니다,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원수이기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8절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생명과 평안을 누립니다. 그런데 육신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3장은 이렇게 타락한 그 결과들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두려워서 숨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리고 변명하고 고통을 당하고 수고해야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본능의 힘이 육신의 힘,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 본능 이 힘이 세어서 사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육신의 모습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줍니다. 마가복음 7장 21-23절입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맺음, 분쟁, 시기, 분냄, 당지음, 분리함, 이단,투기,술취함, 방탕, 곧 15가지의 사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로마서 1장 29-31절에서는 18가지로 설명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는 15가지입니다. 이런 요소들을 종합하면 욕심, 교만, 미움, 두려움, 염려, 성적 타락 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 숭배입니다. 이런 요소들은 한 가지 목적으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곧 “영의 생각인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최근에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어 구원얻게 한 원주민을 심방했습니다. 선교사가 그 초신자에게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요즈음은 내 속에 흰 개와 검은 개, 두 마리가 큰 싸움 을 하고 있습니다”, 그 초신자의 대답이었습니다. 선교사가 그 초신자를 영적으로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하여 질문을 계속했습니다, “성도님, 그렇게 싸울 때 어느 개가 이기는가요?” 초신자의 대답입니다, “두 개가 싸움을 하고 난 다음 내가 가만히 기도하며 생각 해보니 내가 잘 먹인 개가 항상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속에 있는 흰개, 곧 “영의 생각인 생명과 평안”이 검은 개인 “육신의 생각”을 항상 이기도록 흰개를 더욱 잘 먹이십시다. 그렇게 하도록 성령님이 도우시고져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 하고 영에 있나니…”, 9 절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요? 우리의 몸을 전으로 삼고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는가요? 그렇다면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곧 육신의 세력들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장 16절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을 도와주시고져 함 께 하여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성령 하나님이 충만히, 온전히 다스려 주시기를 믿음으로 구하면 반드시 성령님이 주장하시고 다스려 주십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이 주시는 9가지 열매들, 곧 생명과 평안이 충만히 넘쳐나서 그 생명과 평안으로 승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령님의 충만하심, 성령님의 주장하심, 성령님의 다스리심, 성령님의 도우심을 얻을 수 있는가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입니다. 성령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십니다. 말씀 충만이 곧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님은 믿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마음에 충만히 임하십니다. 성경 말씀을 늘 읽고 마음에 간직합시다, 그리고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미즈노 겐조의 간증 같은, 대표적인 시입니다,
만일 내가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을
만일 모든 형제 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을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을
성도님에게 괴로움, 어려움, 아픔, 두려움, 염려…가 있는가요?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하시는 기회로 허락하심입니다. 그리하여 생명과 평안의 길로 달려가게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을 온전히 힘입어 생명과 평안의 길로 달려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