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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아버지를 둔 최고의 행복
로마서 8장 12-17절
사람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이해하기 힘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참 아름다운 어머니의 마음, 부모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말 중에서 설명이 필요치 않으면서도 가장 잘 알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입니다. 그리고 “자녀”입니다. 이 세상의 절대 다수의 “자녀” 에게는 “부모”라는 말의 뜻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엄마”, “아빠”라는 말은 자녀가 몸으로 체험해 알고 있는 실체입니다. 사람에게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말 이상의 생명과 호흡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에게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고민은 죄인인 우리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영적인 분입니다.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신 창조주이십니 다. 사랑과 자비가 무궁하시고 완전히 의로우시며 거룩하신 인격자 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하는 것을 두신 뜻과 목적대로 다스리시고 주장하시는 왕이시고 주인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입니까? 육신을 입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한한 죄인입니다. 유한하다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다고 하더라도 생각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이나 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전능하시고 인격자이신 영의 하나님이 유한하고 육신을 입고 사는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을 어떻게 알도록 하는냐, 그것이 고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혜가 무한하십니다. 그 지혜로 유한한 우리가 가장 쉽게, 잘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우리는 그 하나님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주십니다.
오늘의 말씀인 로마서 8장 12-17절은 우리의 피부에 와 닿도록 하나님과 우리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고 증거합니다. 더 이상 말의 설명이 필요 없는 “부모와 자녀” 의 관계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14절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하나님은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죄인인 우리를 “아들과 딸인 자녀”로 삼아주신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성경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장 놀랍고 복되고 좋은 진리입니다. 성경이 아닌 어느 다른 종교의 경전에 절대자 하나님과 인간을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가르치는 곳은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그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저가 1964년, 처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더욱 열심히 읽도록 특별히 도움이 된 한 구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믿기만 하면, 그 이름, 곧 예수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보통으로 되는 정도가 아니라 “권세”가 주어진다, 입니다. 그 “권세”는 특별한 권리, 합법적인 권리입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된다"는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생겨나서 영원히 계속된다"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는 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한 번 되면 영원한 자녀라는 뜻입니다. 그 말씀이 저의 마음에 새롭게 큰 빛으로 비추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 나는 하나님의 자녀, 곧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 특별한 권리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도우셔서 믿고 알게 된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나는 피조물인데 피조물인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나, 그것은 신비한 일 중의 신비한 일이고 기적 중의 기적이고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5절입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도록 성령이 감동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하고 부 르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요? 창조주, 전능하신 분,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계신분, 사랑과 긍휼과 지혜가 무한하신 분,영원히 계시는 분, 그 분을 “아바 아버지”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랍고 황홀하고 영원히 감사할 일 입니다. 인간인 내가 스스로 원해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부르도록 감동하시고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친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나니”, 16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인 데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그렇다고 증거해주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이 증거자입니다.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사실이라고 확실히 보증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 부분의 성경은 황금문자로 씌어졌으면 좋을 뻔하였다. 극히 찬양할만 하며 놀랍게 위로가 넘친다”고 고백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죄인인 내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믿고 알도록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세구절만이라도 우리의 마음 비에 확실히 새겨서 결코 잊어버리지 맙시다. 이 구절 그대로 우리가 믿으면 우리의 모든 문제꺼리가 다 해결된 것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결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 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된 위로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소망입니다. 하나님만이 구원이십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에게서로다!”(시121:1-2) 여호와 하나님이 곧 우리의 도움이십니다. 전능 하시고 해결자이시며 위로와 소망, 도움, 그리고 구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곧 아버지, 나의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리라…구하는 이 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믿으시는가요? 아버지 이시기에 구하면 좋 은 것 주실 것으로 믿으시는가요? 좀 오래전에 하르낙이라는 신학자가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과 교리를 다 연구한 후에 그것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알며 그리고 이웃을 사랑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기독교 믿음의 전부이다.” 성경을 기록한 44명 이상의 저자들이, 성경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고 우리 보다 먼저 믿고 천국에 간 모든 성도들,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에게 이 시간 들려주는 응원의 웨침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이시다. 그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믿는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반드시 너를 지키시고 돌보시고 인도하시며 이기게 하신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녀는 두 종류입니다. 부모가 직접 낳았길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출생을 통해 된 자녀입니다. 그리고 또한 자녀는 입양입니다.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양자녀로 입양된 것입니다. 한국이 미국이나 스칸디아 반도의 나라들에게 감사할 일중의 하나가 입양입니다. 6.25 사변 후 한국의 많은 고아들이 입양 된 것입니다. 저가 1973년 미국에 유학 올 때 서울에서 아틀란 타까지의 편도 비행기 표 값 $600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소문해서 홀트 양자회를 찾아갔습니다. 미국으로 입양되는 한국의 고아들을 데리고 오면 비행기 값 반을 대어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개학 날이 아직 한 달 남았지만 홀트 양자회 에스코트로 입양되는 고아 셋을 미국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양자의 영”으로 일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도록 입양시켜 주신 것입니다. 마치 홀트 양자회와 같은 역할을 해 주신 것입니다. 한국의 고아원에 있는 고아가 스스로는 결코 미국의 가정에 입양되지 못합니다. 홀트회에서 미국의 가정과 연결시켜 주고 도와 주어서 양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도록 입양되게 하여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감동 해주시며 성경의 빛으로 비추어주셔서 예수님을 믿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결코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이라고 부르지 못합니다.(고전12:3)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 데 그 일은 인간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사실 영원히 중요한 것은 죄의 용서함 받아 이 땅에서 부터 영생 구원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로 만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피 값이 나의 모든 죄를 다 용서 해주었다, 그렇게만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도 성령님이 감동해주셔야 되는 것입 니다.
입양된 양자에게는 권세, 곧 특별한 권리가 있습니다.
먼저 옛날의 것은 다 지워진 것입니다. 과거로 부터의 참된 자유입니다. 그렇게 없어지고 지워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참 양 자녀입니다. 한국의 고아원에서 겨우 하루 새끼 밥 먹고 때로는 서러움과 외로움이 넘치던 그 과거, 다 잊어버려야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부모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양자의 영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 곧 구원받은 성도는 과거의 모든 옛 사람을 다 잊어버려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땅 속에 묻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권리와 지위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리,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은 지위,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할 신세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순간 부터는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천국의 영원한 생명책에 기록 된 사람, 죽음까지도 이기고도 남는 사람, 악한 원수 마귀도 손 못대는 사람,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 사람된 것입니다. 감사와 감격과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찬송이 터져 나 오는 사람인 것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입니다,“만족과 감사는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든다. 그러나 불만족과 불평은 부자를 가난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나의 아빠, 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다. 그러므로 나의 아빠이신 하나님이 나를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여주시고 돌보아주시고 승리케 하신다”, 그렇게 눈을 뜰 때 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밥 을 먹을 때마다, 일을 할 때나, 쉴 때나 잠자리에 들 때에도 고백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붙잡고져”(The Pursuit of Happiness)라는 책이 있습니다. 최근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저자인 Christopher Gardner의 실화입니다. 흑인인 그에게는 1980년대 샌프란 시스코에서 노숙자로 일년 이상을 살아야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아내도 어린 아들을 두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낮에는 주식 중개인으로 일했 지만 별로 벌어지는 돈이 없어 밤에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노숙자 쉘터나 지하철의 화장실 등에서 자야했습니다. 그런데 비록 Homeless 였지만 결코Hopeles는 아니었습니다. 소망을 잃지 않고 아들을 무릎 위에 재우며 힘을 다해 공부하고 일했습 니다. 마침내 그의 성실함과 정직함을 본 어느 고객에게 스카우트 되어 뉴욕의 증권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무숙자 이후 23년 만에 1억 7000천 만불의 가치가 있는 증권회사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흑인으로서 최악의 바닥에서 뛰어올라 뉴욕의 갑부가 될 수 있었던 중심되는 힘은 아들을 향한 사랑과 돌봄이었습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집이 없든 있든, 화장실에서 자든, 회사 책상에서 자든, 직장이 있든, 없든 제 아들과 저는 그 때 잡은 손을 아직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린 늘 함께였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