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의 비결
                      
빌립보서 4 10-13

어느 부자가 하인들이 한창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 앞을 지나갔습니다.“만약 내게 $50 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하고 푸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주인이 잠시 생각한 후 부엌 문을 열고 그 하인에게 $50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뜻 밖에 생각치 못한 돈을 주인으로 부터 받자 그 하인은 주인에게 크게 감사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부엌 문을 나서자 마자 그 하인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내가 바보지, $100 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그 요리사 하인은 사람의 본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사람의 욕망이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욕심이나 욕망을 다 채우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늘 불 만족하고 행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오늘 성경 빌립보서 411, 12절 입니다.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기에 집도 없습니다, 가진 것도 없습니다, 자유도 없습니다, 그런 바울 사도가 자족하기를 배워서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간증입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인가요? “자족하는사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 디모데 전서 6 7,8절이 사실 그대로이지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의 몸 이외에 가지고 온 것이 있었던 분이 계신가요? 사실 벌거벗 은 몸도 그냥 주어진 선물이었습니다. 그 몸을 자신의 돈으로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선물로 받은 맨 몸으로 이 땅위에 태어났습니다. 그런 후 일정한 기간을 살다 그 몸을 선물로 주셨던 하나님이 부르시면 떠나가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하나님이 부르셔서 떠나갈 때 무엇하나 가지고 떠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정한 기간이라는 일생도 또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 자족하며 사는 것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은 다윗은 이렇게 찬송합니다,“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자족의 일생을 살았다는 고백입니다.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바울의 고백입니다. 자족하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자족,自足"스스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자족은 동양의 스승들도 강조해서 가르쳤습니다.“경행록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지족가락(知足 可樂)이요 무탐즉우(無耽卽憂)”, 족한 줄로 알면 아주 기쁘고 욕심을 부리면 근심만 더한다, 입니다. 탐욕이나 탐심,욕심을 물리치고 자족하면 기쁨의 행복을 누린다는, 자족의 강조입니다.

불교도 자족을 가르칩니다. 불교는이 세상에서의 온갖 번뇌를 버리고,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으로써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번뇌는 모든 사람에게 본성적으로 있는오욕(재 물욕,명예욕,식욕,수면욕,색욕) 칠정(기쁨,노여움,근심함,두 려워함,사랑함,미워함,욕심)”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번뇌를 이겨내어 도달하는 경지가자족”이라고 불교는 가르칩니다.

바울사도가 이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는 헬라 말과 헬라 문화, 헬라 철학이 그 때의 지중해 연안의 셰계를 지배했습니다. 마치 오늘 날 영어와 미국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헬라 철학자들 중에서도 스토익 학파에 속하는 철학자들은 도덕과 윤리 면에서 사람이 도달해야 할 최고의 경지를자족이라고 여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족하게 되는가, 그들은 욕망과 감정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과 비슷합니다. 욕망과 감정을 온전히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에픽투터스라는 철학자의 가르침입니다: 컵이 하나 깨어졌을 경우,“그까짓 컵하나 깨어지는 것, 신경 꺼, 그것에 내 감정이 지배되어서는 안돼.”다음에 애완 동물이 죽었습니다,“마음이 아프지만 어쩔수 없지,사람이 죽는 것 보다 낫지 않아, 신경 꺼.”그러다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불행한 일이생겼습 니다,“어쩌겠나, 이겨내야지, 신경 꺼!”그렇게 욕망이나 감정을 지배해서 무관심의 상태에 까지 이르는 것을자족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런 동양이나 서양의자족에 대한 가르침에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욕망을 완전히 없애거나 감정을 완전히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만으로는 욕망이나 감정을 완전히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실패하기가 일쑤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라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자족, 나아가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에 지금 자족하다는 간증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자족할 수 있었는가요?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감옥 살이는 결코 쉬은 형편이 아닙니다. 그런데 감옥살이 때까지 바울 사도가 살아온 과거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고전 4:11), 요즈음 표현으로 무숙자, 곧 홈리스인데 매를 맞고 헐벗은 홈리스 형편이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 23-27절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매 맞은 것만도 이렇습니다: 수 없이 맞고, 40에 하나 감하는 매를 다섯 번 맞고(195), 세 번 태장에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그리고 온갖 위험과 생존의 위험을 셀 수 없이 당한 바울 사도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바울은 또 궁핍하기도 했습니다.“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궁핍한 것은 참으로 자족하기 힘든 형편입니다. 그런데 바울 그 가운데서 자족을 배웠다고 증거합니다.

그런 형편에 처한 바울이었는 데 어떻게 그 가운데서 자족할 수 있었는가 입니다. 바울은 결코 구원받은 후 천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 같은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참으로 자족 하기 힘든 형편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자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던가요?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모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의 가장 기본이고 제일 먼저는 자족입니다. 자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다 가져도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족했습니다. 그 자족의 핵심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입니다.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입니다. 예수님이 자족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에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노력해야합니다. 사과 나무 밑에 드러누워 입을 벌리고 사과가 그 입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더 발전하고 더 진보하고 더 나 아지고 더 향상하기 위해 힘써야합니다. 현재의 상태에 안주해 있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모든 과학이나 기술, 문화, 사람의 사는 것의 발전이나 발달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여 그대로 주저앉아 머무러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모든 면에서, 특별히 신앙에서도 더 성숙하고 발전하고 향상하고 진보하고 나아지기 위해 부족함을 느껴야합니다. 그렇게 부족함을 느꼈기에 모든 면에서 발전과 진보가 이루어져왔습니다. 자족은 그런 부족함을 느끼지 말라, 그런 부족함을 느껴서는 안된다, 그런 뜻은 결코 아닙니다.
자족의 반대는불만, 불평, 원망입니다. 불만이나 불평이나 원망은 발전이나 향상이나 진보를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 세력입니다. 그러기에 자족하는 마음은 모든 일에 큰 유익을 가져옵니다.“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6) 지족, 곧 자족하는 마음이 특별히경건”,즉 믿음으로 사는 성도에게 유익을 가져온다는 말씀입니다.

능력주시는 예수님 안에서자족할 수 있었던 바울 사도였습니다. 예수님이 자족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과 삶속에 살아주셨기에 자족했습니다. 마치 태양이 떠오르면 하늘의 모든 빛들은 다 사라집니다. 태양 빛이 가장 크게 비추이기 때문 입니다. 태양이신 예수님이 그 마음속에 사셨기에 다른 빛들은 다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실체와 그림자가 있습니다. 자족이 누리게 하는 행복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의 그림자가 행복인줄 알고 그 그림자를 잡을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데 그 그림자 조차도 붙잡은 사람이 없습니다. 마치 저 산 너머 걸린 무지개를 잡을려고 쫓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무지개를 붙잡은 사람이 있나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은 행복이라는 것의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를 붙잡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 실체가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주인으로 사시도록 마음과 삶과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 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요구했습니다,“쌀 항아리도 채워주시고 과일 광주리도 채워주시고, 고기 상자도 채워주세요.”하도 졸라대서 하나님이 그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쌀 항아리 앞으로 가면 쌀이 생겨났습니다. 그 쌀을 항아리에 퍼 담기에 신이 났습니다. 한참 그러다 과일 광주리가 비어있어 불 만이었습니다. 빈 과일 광주리 앞으로 가니 과일이 생겨나 과일들을 정신 없이 광주리에 담았습니다. 과일 상자가 점 점 커져갑니다. 한참 후 눈을 들어 보니 고기 상자가 비어있습니다. 고기 상자 앞으로 갔습니다. 고기들로 상자가 넘쳐나니 상자가 더 커집니다. 다시 쌀 항아리를 보니 커진 과일 광주리와 고기 상자에 비하여 너무 작습니다. 쌀 항아리 앞으로, 다시 과일 광주리 앞으로, 고기 상자 앞으로 달려 다니면서 채웠습니다. 어느 듯 죽는 날이 가까워오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제야 문득 채울려고만 쫓아다닌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하나님께 항의 했습니다,“하나님, 이렇게 거지 처럼 채우기만 하며 살아오도록 왜 내버려두셨습니까?””그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니라. 진작에 바울 처럼 자족을 배워 알았더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을!”,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바울 처럼 자족을 배우는 구체적인 길입니다:
1.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족,
  Contentment”“Contained, 포함되었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의 모든 것은 나를 구원하여 자녀 삼으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
,
  상의 섭리 속에 다 포함되어 있는것이다
, 그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의지
  하는 것입니다
. 그럴 때 자족하게됩니다.

2.현재 내게 있는 것에 대하여 먼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좋게 보이든지 좋지 
  않게 보이든지
, 어떤 형편이건 간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수년 전 한 방송국에서 청취자들을 상대로 무엇을 관에 넣어 가고 싶은가" 하고 물었습니다. 대답들 입니다: 많은 여자 청취자들은 셀폰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심심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많은 남자들은 TV Remote Control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평소 때 집에서 자녀들과 부인 때문 에 보지 못한 프로그램을 마음대로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홀인 한 골프 공과 골프채도 넣어가고 싶어했습니다. 이 현세에서 못 다 친 골프를 치기위해서 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이야기는 이 현세에서 과연 무엇으로 자족하고 있는가를 생각케 하는 대답들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있는 것 때문에 먼저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3.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의 섬김은 참된 자족의 마음 을 생겨나게합
  니다
.

4.앞날에 대하여 지레, 먼저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
  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이 허락하신 오늘 하루를 감사히
, 기뻐하며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

5.성경 말씀이 마음과 생각, 감정을 다스리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살아 운
  동력이 있습니다
. 성령의 검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자족하지 못하도록 이 모
  양 저 모양으로 공격하는 마귀의 모든 시험들을 말씀의 검으로 이겨낼 때 
  자족합니다
. 그 길은 성경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능력을 더하여서 우리도 바울 처럼 어떤 형편에서 든지, 궁핍하든지 부요하든지, 평안하든지 힘들고 괴롭든지, 늘 자족하도록 주장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