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웃게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21장 1-7절, 히브리서 11장 11-12절
해마다 봄이되면…
땅 속에서, 땅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해 마다 봄이 되면…
항상 봄 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항상 봄 처럼 새로워라 (해마다 봄이 되면, 조병화)
3월 첫 주일, 춘(春) 3월이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봄이 가까이 와 있습니다. 올 해는 눈도 많이 오고 또 추위도 심했습니다. 그렇지만 꽃이 피는 봄은 오고야마는 것입니다. 시인의 노래대로 올해의 봄에는 생명을 만드는 일들이 크게 일어나고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며 봄처럼 새로워지는 은혜와 복을 우리 하나님이 크게 주실 것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 꽃은 사람이 사람에게 활짝 웃어보이는 꽃 중의 꽃, 환한 웃음 꽃이다.”(정일근)
봄이 자연계에 꿈틀거리는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운동이라면 사람에게는 웃음이 정녕 생명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평균 400 번 웃습니다. 그런데 어른은 기껏해야 15번입니다. 어린아이가 생명력으로 넘쳐나는 이유가 웃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웃음이 많기 때문입니다. 웃는 것은 건강에도 아주 좋습니다. 한 번 웃으면 여자들이 5분 이상의 에로빅 운동을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루에 10번 만 웃는다면 50분의 에로빅 운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강에 좋습니다. 두 죽어가는 환자가 병원에 있습니다. 한 환자에게는 좋은 약을 줍니다. 다른 환자에게는 웃고 기뻐하도록 해 줍니다. 살아남는 환자는 나중 환자, 곧 웃음과 기쁨을 실천한 환자입니다. 기쁨의 웃음은 명약 중에서도 명약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17: 22) , 성경 말씀이 증거합니다.
이 현세에는 슬픔과 한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를 웃게하고 기쁨을 주는 일들도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의 티 없는 재롱, 허물 없이 만나 나누는 다정한 친구와의 수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언덕 한 모퉁이에서 고결한 아름다움을 수줍은 둣이 보이고 있는 한 송이의 수선화, 새벽 공기를 가르며 어두움을 물리치고 동녁 하늘에 솟아오르는 태양, 그리고 보상이나 댓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도움의 손길들…우리에게 웃음과 기쁨을 주는 것들입니다.
성경도 웃음이 넘치는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1장 6절입니다,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시리로다.” “사라” 라는 이름의 한 여인이 웃었습니다. 감사와 기쁨의 웃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까지도 함께 기뻐하며 웃게하는 그런 웃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도 사라 처럼 웃음과 기쁨이 넘치는 자로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사라가 웃게되기 까지 어떻게 살아왔는 가를 살펴봅시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과 함께 이민의 길을 떠나왔습니다. 남편은 75 살, 자신은 65살이었습니다. 이민 가기에는 아주 늦은 나이였습니다. 더우기 성경은 그 늦은 나이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히 11:8) 떠나간 이민 길이었다고 증거합니다. 사라가 남편과 함께 늦은 나이에 갈바를 알지 못하면서 이민을 떠난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 특별히 “큰 민족을 이루고”, 자손들이 번창한다는 약속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때의 사라를 한 마디로 “나이 늙어 단산”한 상태라고 지적합니다.(히11:11) 그렇지요, 나이가 60이 훨씬 넘어 아이를 낳는다, 이루어지기가 힘든 사실입니다.
대부분은 나이가 많아짐을 환영하고 기뻐할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현세의 형편입니다. 특별히 오늘 날의 사회적인 한 특징은 “젊음 우상” 입니다. 젊음이 행복의 비결인 양 사람들로 하여금 젊어지도록 젊음에 중독이 들게하는 세상입니다. 할 수 있으면 더 젊게 보일려고 합니다. 언젠가 70 세를 지난 어느 분이 광고에 나왔습니다. 그 분은 교수였는 데 등산가였습니다. 등산으로 건강을 잘 유지해가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등산에 관계 된 판매 광고에 모델로 발탁되었습니 다. 70세에 광고 모델이라, 그 일이 너무 흔하지 않기에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님들, 나이가 많아짐의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가 “아름 다운 노년(Sharing Good Times)”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책에서 카터 대통령은 인생 행복론을 이렇게 간증합니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얻으려 기대하기 전에 남에게 무엇인가를 나누어줄 것을 생각한다면 인생이 더 행복해진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 나이들었기에 나누어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정처럼 영글어온 삶의 기쁨이나 영생에 대한 산 소망을 나누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더 아름답고 값진 것입니다.
나이가 65세,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남편과 함께 이민 개척자의 삶을 힘차게 전진한 사라, 젊은이 못지않는 용기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단산”의 몸이었습니다. 도저히 자녀를 잉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에 의하면 “죽은 자와 방불한” 상태였습니다. 임신을 하거나 잉태를 하여 자녀를 낳는 것은 죽은자 처럼 불가능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라를 보십시요, 90세 된 할머니 나이의 레이디가 아들을 안고 젖을 먹이고 있습니다. “또 가로 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창21:7) 불가능의 가능성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웃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시고도 남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맹신이 아닙니다. 무모한 인간 신념이 아닙니다. 인간의 과학이나 지식의 힘, 의 나 경험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그 믿음이 90세된 레이디가 아들을 낳아 젖을 먹이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겨있습니다. 믿음이라는 열쇄로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성경을 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약속 과 믿음과 능력입니다. 90세의 레이디가 아들을 낳아 젖을 먹이는 놀랍고도 신비한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웃게하신 것입니다.
동계 올림픽이 한국 사람들 마음 속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동으로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메달을 땄건 따지 못했건 한국 선수 모두가 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 장한 대한의 젊은이들입니다. 한국 사람들,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나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특별히 김연아의 코치들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어떻게 올림픽 기록을 깨뜨리는 선수로 김연아를 훈련시키고 지도할 수 있었을까, 입니다. Brian Orser 코치가 펴낸 그의 자서전,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무엇인가를 무조건 즐기는 마음이 나와 연아가 가야할 길을 결정한 계기였다. 재능이란 너무나 즐거워서 스스로 노력하게하는 것이다.” 그 코치가 가장 먼저한 일은 “무표정한 연아를 웃도록 하는 것”이었습니 다. 곧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그것이 연아 속에 잠재해 있었던 예술 본능을 이끌어내어 기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한 것 입니다. 마음으로 부터 진정으로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비결이었다는 것입니다. 안무가인 David Wilson도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연아는 깡마르고 아주 긴 몸을 가진, 그리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어린 소녀였다. 첫 번째 과제는 그런 연아를 웃게 만드는 것이었다…2 주 후 수줍고 조용한 동양 소녀가 아니라 얼굴을 활짝 펴고 웃으며…진정 스케이트를 즐길 줄 아는 소녀가 된 것이다.” 연아의 두 코치가 들려주는 금메달리스트의 비결입니다, 즐기고 기뻐하며 웃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하시니…”, 하나님이 웃게하여주시는 사람들, 누구인가요? 우리들입니다. 세상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 참 귀합니다. 그리하여 한 나라의 국민들을 감동시키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보다 더 크게, 더 좋게, 영원히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불러주셨습니다. 그 감동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웃게하도록 도와서 뛰어난 운동 선수가 되게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웃게하십니다. 그것은 영원히 최고로 좋고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동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34:8)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로다.”(시37:4)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인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시107:30-31)
하나님이 이루신 기적입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라가 잉태케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불가능하게 보여지고 ,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일들을 이루어가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성도님들의 아버지이십니다, 믿으시는가요? 믿으신다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드립시다, 힘을 다 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이 가장 좋으신 뜻대로 이루어주십니다.
임마누엘 칸트라는 철학자는 사람의 웃음을 이렇게 나누었습니다:전혀 웃지 않는 사람, “무소(無笑)” , 어렵고 까다롭다. 악의로 웃는 웃음, 무섭다. 되는대로 웃는 웃음, 천박하다. 미인의 웃음, 교태스럽고 음탕하다. 부자의 웃음, 징그럽다. 그렇다면 어떤 웃음이 가장 좋을까요? 사라의 웃음입니다. 불완전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기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셔서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는 웃음입니다.
세익스피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단 한 가지만의 얼굴을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으로 천의 얼굴을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이 주신 본래의 얼굴로 살아갑시다. 사라 처럼 웃는 얼굴입니다. 사실 웃는다, 감사한다, 기뻐한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본래의 것을 되 찾는 길입니다.
사라가 웃음의 영원한 복을 받게 된 비결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니라.”(히11:11) 사라는 잉태할 수 없는 자신의 신체적인 조건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습니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잉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가능하다, 나를 지으시고 사랑하시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는 창조주, 불가능이 없으시다, 그렇게 믿은 것입니다. 자신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루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가장 잘 압니다. 인간적인 생각이나 판단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렇게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능케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이루시고 해결하시고 고쳐주실 수 있다,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대부분 문제 그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꺼리만 바라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문제꺼리를 너무 크게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그 문제꺼리 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 하는 것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어가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잉태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보시고 잉태의 힘을 주신 것입니다. 그 믿음이 사라를 웃게하는 비결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심을 믿어야할 찌니라.”(히11:6)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이 반드시 계신 것을 믿으시는가요? 반드시 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모든 것을 맡겨드릴 때 상주심을 믿으시는가요? 사라는 믿음으로 영원한 상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결국에는 기쁨과 웃음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널리 증거하는 “열국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복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전염성은 기쁨과 웃음입니다. 콜레라 전염병 보다 더 강한 전염성이 있습니다. 기쁨이나 웃음은 널리, 크게 펴져 나갑니다. 우리의 웃음과 기쁨은 무엇 때문인가요? 사라는 이삭 때문에 웃었습니다. 이삭은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리라”(요15:11) 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이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을 우리 속에 강물 처럼 충만케 하여주십니다. “나를 웃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웃으며 기쁨으로 승리케 하도록 반드시 도우시고 해결해주시고 더욱 강건하도록 축복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참 좋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를 믿기에 사라처럼 웃음과 기쁨을 누리며 그 기쁨을 퍼뜨리는 성도님들로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