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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히 이기게하는 사랑(2010.7.11) 로마서 8장 35-39절
이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월드 컵 같은 운동 시합에서 규칙대로 싸워 이기는 것은 참 좋습니다. 한 나라 전체에게 좋은 영향을 줍니다. 월드 컵에서 이긴 나라들은 경제도 많이 나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월드 컵 결승 전에서 스페인이 이기기를 바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스페인은 네델란드 보다 경제 적으로 더 힘든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경도 이기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가르칩니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됨이니라.”(벧후 2:19)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만국을 다시리는 권세를 주리니…”(계2:7,26)
그런데 오늘의 성경은 성도인 우리가 무엇을 “넉넉히 이긴다”고 가르치는가요? 이기고 지는 데는 반드시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모든 일”입니다. 넉넉히 이기는 대상이 “이 모든 일”이라고 증거합니다. 35절은 “이 모든 일”을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가르칩니다. “환난”(affliction, trouble, tribulation) 입니다. 밖으로 부터 오는 어려움들입니다. 환경이나 형편이 주는 어려움들입니다. "곤고" (hardship)”입니다. “곤고”는 원래 “좁은 장소”의 뜻입니다. 장소가 좁으니 죠여드는 것 같고 불편하고 힘든 것입니다. 환난으로 인한 내적 고통입니다. “핍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직접, 공개적으로 당하는 불이익이나 고난입니다. “기근”은 배고픔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당하는 배고픔도 아주 큰 고통입니다. “적신”입니다. 벌거벗기움, 곧 자존심을 완전히 파괴시키는 수치스러움 입니다. “위험”입니다. 사느냐 죽느냐가 눈에 보이듯이 느껴지는 생명의 위협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후서 11장 26절 에서 이 “위험” 을 8번이나 당했다고 간증합니다. “칼”입니다.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는 식품용 칼이 아닙니다. 목을 베는 도구입니다.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입니다. 목을 끊어서 처형한 단두대(guillotine), 그 끔찍하고 무시 무시한 두려움과 고통입니다. 초대 교회 때 믿음을 끝까지 지킨 성도들이 당했던 고난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35절의 일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크게 느껴지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시편 44 편 22절을 인용합니다,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다 함과 같으니라.”(롬 8:36) 하루 종일 죽음의 위험을 느끼게 되는 형편입니다.
이것들 뿐만이 아닙니다. 38-39절입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권세자들”은 세상 나라의 권세가가 아닙니다. 영적인 사단, 마귀입니다. “높음”은 큰 세력을 가진 자의 위협입니다. 그들의 큰 위협이 피부로 느겨진 것입니다. “깊음”은 가난함이나 멸시받는 낮은 위치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세계 전체, 영적 세계 전체, 시간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 전체, 곧 “다른 아무 피조 물”, 그 어떤 세력이나 형편이나 환경, 어떤 박해, 고난, 고통, 유혹에서도 “넉넉히 이긴다”는 확신입니다. 넉넉히 이기고도 남는 승리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과 같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2 미터가 넘는 거인 장군이었습니다. 그 골리앗이 완전 무장을 하고 상대할 대상을 내 보내라고 이스라엘 왕 사울에게 도전해왔습니다. 아무도 감히 그 도전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질 것이 뻔해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한 틴에이져 소년 다윗이 사울 왕에게 말했습니다, “폐하, 저를 보내주세요!” 왕이 다 윗을 보니 아직 앳된 소년이었습니다. 무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간청을 하니 자기의 갑옷과 무기를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다윗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어보다가 사울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너무 커서 맞지 않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다윗의 손에는 물매와 돌맹이 다섯개가 들려있을 뿐이었습니다. 골리앗과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다윗이지만 골리앗을 향해 달려가면서 웨쳤습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17:45) 그렇게 달려가며 다윗이 날려보낸 돌맹이 하나에 꺼꾸러진 거인 장군 골리앗입니다. 넉넉히 이긴 싸움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런 승리를 거둘 수 있은 비결은 물맷돌을 던지는 기술이나 돌의 힘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이기게하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골리앗 처럼 거대한 장애물이나 어려움이나 고통, 심지어 생사를 위협하는 힘든 환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성도는 “넉넉히 이기는”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넉넉히 이기는” 비결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37절)입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힘입니다. 이 사랑을 35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세 끊으리요?...”이라고 증거합니다. 39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가장 구체적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곧 예수님이 몸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죄인에게 그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사람으로 이 땅위에 오시고 사시고 마침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히4:15:, 5:7) 예수님이 왜 심한 통곡을 하셔야했고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셔야했는가요?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으로 오셔서 33년 간 이 땅위에 사셨을 때도 완전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완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셨던 예수님이 통곡하시고 눈물로 간구하신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도우시는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나누시고져 예수님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으신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마침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나누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증거된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 영원하고 완전한 생명과 구원의 줄입니다. 우주 비행사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올라가서 우주에 있는 우주선을 고치는 광경입니다. 그 때 우주인에게 그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줄입니다. 자신의 몸을 자신이 타고 간 우주선에 매어두는 줄입니다. 그 줄이 끊어지면 우주의 공간에 영원히 버려지게 됩니다. 끊을 수 없고 끊어져서는 안되는 줄입니다. 생명의 줄입니다. 십자가의 줄로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연결 되어 있기에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고난이나 질병이나 어려움이나 그 어떤 것도 결코 영원히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 모든 필요한 것을 부어주는 공급의 줄입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살아있게 되는 길은 탯줄입니다. 그 탯줄을 통하여 어머니로 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모든 것을 은사,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줄은 영원한 보호의 줄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보호하는 힘입니다. 어린 아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 그렇지 않습니까?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았을 수없느니라.”(요10:29)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영원히 보호하십니다. 그러기에 “넉넉히 이기도” 남는 것입니다.
1841년 부터 일생 동안 아프리카에서 의료 선교사로, 탐험가로 일하던 리빙스톤(David Livingston)선교사가 16 년 간 선교후 안식년으로 모국인 영국에 갔습니다.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한 학생이 묻습니다, "선교사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아프리카의 선교, 외로움과 온갖 어려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정글에서 어떻게 1 6 년 간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는가요?" 리빙스톤 선교사의 대답입니다, “예수님의 두 가지 약속의 말씀으로 인해 늘 승리할 수 있었지요,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겠다’.”
하나님이 여기 우리 모두를 이 세상 속에 선교사로 두셨습니다. 선교사로 두신 목적은 넉넉히 이기게 하는 사랑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가페의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여준 사랑입니다. 우리도 성경의 약속을 붙들고 의지함으로 넉넉히 이기도 남는 아가페의 증인으로 달려가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