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랑

                                  누가복음 15 20-24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가정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정이나 가족은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마음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그런 아들을 아버지가 어떻게 대했는가,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촛점입니다. 오늘은 아버지와 둘째 아들의 관계만 말씀드립니다. 


하루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15:12)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먼저 재산을 유산으로 나누어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둘째 아들이 먼저 그렇게 요구한 것입니. 그리고 유산이라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다음에 부모님의 자발적인 뜻에 따라 자녀가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십니다. 살아계 아버지께 유산을 달라고 먼저 요구한 것입니다.

여기 오신 성도님들 가운데  부모님으로 부터 유산을 받으신 분도 계실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많이 감사하셨겠지요. 저는 시골 가난한 농촌에서 자라났기에 전혀 부모님의 유산을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일찍 세상을 떠나섰고 시골 농촌 논과 얼마가 저의 재산이었습니다. 더우기 위로 형님이 계셨습니다. 아예 유산 자도 생각할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시는 유산을 달라고 요구했을까,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형인 맏아들만 사랑하고 자기는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했 것입니다. 둘째 자녀는 어릴 부터 손해 인생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도님들 가운데 둘째이신 분이 계시면 용서하십시요. 성도님은 결코 그러지 않았을 것으로 믿습니. 일반적으로 둘째는 욕심도 많고 자기 것을 챙길려고 합니다. 그것은 어쩔 없는 간의 본능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많이 오해했습니다. 혹시 아버지가 자기에게  유산을 남겨주지 않고 돌아가실지 모른다, 형에게만 재산을 물려주면 나는 어떻게 되나 , 하고 오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형과 사이가 좋지 않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야 형이 아무리 소리쳐도 아버지가 나의 보호막인데 있으, 그렇게 이겨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 형이 나를 동생으로 대해주겠느냐, 그렇게 생각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가족이나 아버지의 간섭이 아주 싫었을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가족이나 부모를 떠나 독립하여 간섭없이 살고 싶어합니. 그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최상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모아가지고 나라에 가서…”(15:13)  나라에 가서”, 멀리 이민을 떠난 것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얼른 몫을 챙겨서 간섭 받지 않고 독립해 마음대로 살겠다, 둘째 아들의 소원과 결심이었습니다. 그러 기에 며칠이 못되어재물을 모아 가지고”, 아버지가 유산으로 주시는 재산을 얼른 처분했습니다.  며칠이 못되어”, 아버지로 부터 받은 유산은 동산이기보다는 부동산이었을 것입니다. 예나 오늘이 부동산을 처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며칠이 못되어”, 빨리 처분한 것입니다. 정가 보다 훨씬 값에 처분했다는 뜻입니다.

둘째 아들의 모습니다, 약싹 빠르게 자기의 유익을 챙기는 것입니다. 돈을 최고로 삼습니다. 재물의 노예가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효막심합니다. 살아계시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하는 것은 아버지 보다는 돈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극히 이기주의적인 마음입니다. 자신을 되돌아보며 참고 기다리고 양보하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급합니다.  결코 이상 관계하지 않기로 작정한 처럼 막가는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들에게는 그런 속성이나 모습은 없는가요? 너그럽고 참아주며 그럴 수도 있지!”하고 이해하고 감싸주는 음의 여유, 예수님의 모습, 온유와 겸손이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인가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목적은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입니다. 아들,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두가지라도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과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닮아가는 은혜와 복을 우리 하나님이 더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렇게 당장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에 좋을대로 판단하여 아버지의 마음을 크게 아프게하며 아버지에게 모욕을 안기고 아버지의 명예를  짓밟고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  나라로 이민 가서 어떻 되었는가요?

“…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허비하더니 없이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백성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없는지라.” (15:13-16)

둘째 아들은 가지고 유산을 얼마 못되어 까먹어버렸습니다. 이제는 배고픈 처지까지 것입니다.  그래서 돼지치는 일이라도 해야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돼지는 아주 깨끗치 못한 동물이었습니다. 하도 배가고파서 돼지 사료라도 먹어야했습니다. 그런데 조차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무일푼 신세가 것입니. 마디로 비참해졌습니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서글프게 비참한 형편은 배고픈 것입니다. 그러기에 백성들이 배고파 굶어죽어가는 데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폭탄을 쏘아대는 사람은 가장 악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쏘아올린 포탄의 값으로 식량을 산다면 이북의 모든 동포들이 3년이상 부르게 먹고 남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북한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고 수백만이 배고픈 형편입니다. 지구촌의 사람들, 특별히 북한의 동포들 중에서 베고픈 사람이 없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아들이 돼지 밥이라도 먹어야 목숨을 이어갈 있는 형편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자살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살은 안됩니다. 미국의 한인들도 자살자가 많습니다. 동부 지역만해도 한달에 5명이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자살하지 않도록 도와야합니다. 자살을 방지할 있는 최상의 길은 믿음입니다.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합니다. 그렇 하도록 믿는 우리가, 교회가 더욱 분명하고 구체적이고 최선을 다해,  희망이 여기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신다, 그렇게 증거해야합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리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어버지께 죄를 얻었아오니 지금 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이에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 니라…” (15:17-2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둘째 아들이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깨달은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결심한 것입니다. 결심을 행동에 옮긴 것입니다, “이에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문장은 너무나 좋고 좋습니다.  살되 행복하게, 짓이겨지고 망가진 과거를 청산하고 좋게 회복하여 사람으로 신바람나게 사는 길을 찾은 것입니다.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15:20)

아버지가 먼저 달려갔습니다. 돌아오는 아들을 무조건 받아주시는 아버지입니다. 결코 책망하거나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고 모습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니다. 품에 안기기만 하면 됩니다. 무조건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무조건의 사랑입니다. 사랑을 체험하는 길은 오직 하나,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옛날 동네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을 내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도왔습니다.  요즈음 처럼 개인주의가 아닙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못할 짓을 둘째 아들을 용서하지 않을려고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아들을 돌을 들어 치거나 매로 때려 가만두지 않을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실을 아버지 이기에 아버지가 먼저 달려 나가서 아들을 안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품위가 깎이는 비정상적인 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리 먼저 달려가 아들을 안은 것입니다. 아들을 무조건 받아주는 물론 아들을 안전하게 보호한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사랑은 어떠한가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저희를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어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없느니라.”(10:28-29)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영원한 자녀로 인정해주시기에 영원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으리라.”(8:39)  하나님은 구원하여 자녀 삼으신 성도님 한 분을 영원토록 보호하시고 영원히 안전하게 지켜주시는 창조주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15:22) 아들로서의 권리를 완전히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영생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마귀의 자녀라고 성경은 말합니다.(8:44) 구원받기 전의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마귀의 향아래서 마귀의 지배를 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님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정해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법적인 권리입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에게 지체하지 않고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입히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운 것은 둘째 아들이 아들로서의 신분과 권리가 완전히 회복된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포한 것입니다.   아들로서의 권리가 회복되었으니 아들로 기고  영접해달라는 아버지의 공식적인 요청입니다. 결코 멸시받지 않도록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여 예수님의 증인 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존귀와 축복으로 씌워주십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15: 23) 
잔치, 기쁨의 잔치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에서는 회개 것이 없는 의인 100명보다 사람이 회개하여 아버지께로 돌아 오면 사람을 인하여 기쁨이 넘칩니다이기주의적인 때문에 오해하고 반항하여 아버지를 떠났던 아들, 아들이 돌아왔기에 이제 깨어진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 것을 아버지가 선포한 것입니다. 깨어진 아버지와의 관계입니다, 형과의 관계입니다, 나머지 가족과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웃들 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둘째 아들이 회개하여 돌아왔을 무조건 받아주시고 안아주신 아버지입니다.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리고 먼저 달려가 아들을 안은 것입니다. 아들을 영원히 보호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회복시켜주시고 잔치를 열어주신 아버지입니다.  신분을 회복해주시고 관계를 완전히 회복시켜주시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복음입니다.

여기 우리를 불러 모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님 분을 향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공로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짐을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값을 감당 하셨기 때문입니다. “ 사랑 받은 사람 만 사랑 알도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믿으시지요?


프린스톤
신학교 선배 분이 한국에 돌아가서 대학에서 가르치다 지금은 은퇴했습니다. 수년 한국에서 여성 국무 총리로 지명되었던 분입니다. 분의 간증입니다, “살아온 70년의 삶을 한약 보자기에 넣고 짜면 감사라는 글자가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길던 짧던 우리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을 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일까요?  감사입니다. 앞으로의 우리 삶을 미리 내다보면 드릴 찬송의 제목이 무엇일까요? “감사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에 영원히 감사로 보답하며 살아가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