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고난이 복음 전파의  활력소가 되다: 사모행전 14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14:22)

 

요약)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말하니 허다한 유대인과 헬라인이 믿으니

반대하는 유대인이 목숨을 걸고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니 무리가

둘로 나뉘다. 돌로 치려는 것을 피해 루스드라로 옮겨가다. 루스드라에 나면서

앉은뱅이를 고치니 신들이 내려왔다고 쓰스와 허매라고 제사하려고 드니

겨우 무리를 말린다. 반대 유대인들이 따라와 무리를  선동해 바울을 돌로 쳐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성 밖에 끌어내니 살아가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
비시디아, 밤빌리아, 버가 앗달리아로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와 이방인 선교 보고를 하다.

 

묵상)

 

역사는 언제나 동일하게 반복된다. 역사는 한 곳에 집중된  소수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 가지에 열심인 사람은 만사에 열심이다.  예수믿는 이들 때려잡는 일에도 열심이더니
참된 진리에 눈이 뜨니 바울의 전천후의
열정을 어느 것도 막을 자도,  막을 것도 없다.

 

돌아 맞아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같다 버려도 살아나 더욱 복음 전파에 박차를 가하니

도무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이다. 사명자는 무섭다. 죽여도 죽여지지 않고 아무리

없애 버리고  누를스록 더욱 크게 번성하니 반대하는 자들이 염병이라 부르며
이를 악물고
죽이려 드는 것이 이해가 간다.

 

자신이 예수믿는 자를 쳐 죽이던 입장에 있어 그들의 상태를 너무도 잘 알기에

더욱이나 저들의 반대를 개의치 않고 오히려 저들 중에 몇이라도 자신처럼 진리에

눈뜨고 충실한 주의 종이 될 자있을까 하여 자신의 받는 핍박을 아무리 극심해도

바울은 툭툭 털고 일어날 수가 있었으리라.

 

그런 형편에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고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다른 이를 섬기는

바울이다. 그의 모습가운데서 성령의 사람의  본을 여러 모로 눈여겨 보게된다.

 

그는 우선 구원의 확신, 승리에 확신, 기도 응답의 확신, 사죄의 확신, 인도의 확신에

자신의 다림줄을 요지부동으로 내렸다. 자신이 구원받고 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받은 은혜가 큰 만큼 나누는 일을 사명으로 초점을 조금치도 놓치지 않고

불철주야 정진한다. 자신을 잊고 형제들 생각만 한다, 전도하고,  세워주고, 다른 궁핍한 
이들의 필요를 채우려 헌금을 모아 먼 길 마다 않고 가져다 주고, 병든 자들 고쳐주고  돌봐준다.

 

확신의 사람, 사명의 사람, 희생의 사람, 섬기는 사람, 고난의 사람이다.

위대한 인물의 공통점이다. 자신의 이익을 다 버리고, 모진 고난도 불사하고,

 오직 섬기는 자들의 유익만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이들이다.

 

진정한 주님의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주님의 마음닮아 맑아져

그 삶의 열매가 주님의 삶과 같아진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세상이  위대한 사람이라

일컽는 반열에 끼게 되는 것이다.

 

바울 그 많은 제자가운데 그의 열심은 정말로 그 정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열심도 실은 자신도 노력했겠지만 다 그 마음에 부어 주신 성령의 강권함에서

시작되고 그는 다만 아멘으로 순종하고 따른 것 뿐이다.

 

늘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 앞에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람들 앞에선 부르심받은
사도로 자신의 확고 부동한 위치를 밝힌다.

 

기도)

 

사랑하는 성령님~~

 

그렇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예속한 종으로 순간마다 묶어놓고 자신을

중심에 굳게 세워놓고 자신이 누군가를 늘 생각했습니다. 죽어도 핍박하며 달려드는

자를 죄있다 문책부터 않으시고 구원해 주시고 받아주신 그 사랑이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만날 때마다 새롭게 사랑받을 아무런 자신의 자격없음을 뼈에 사모치게

절감했겠지요. 그래서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넘친다고 돌을 맞아 죽을 아픔도

구구절절 그 사랑 생각하며 능히 참아낼 수 있었겠지요.

 

때로는 자신의 허다한 죄조차 은혜를 받는데 약이 됩니다.

선의 이름으로 부지 중에 죽인 영혼들이 얼마나 많을지?  자신의 실수나

죄로 인해 괴롭혔을 영혼들.. 그 누구일 줄 몰라 다만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되는 자기 의를 굳게 내세우고 공치사합니다만 정말로 치사할 자기의의

종목일지? 아니면 주님의 절대 판단 기준에는 형제를 아프게한 책망 거린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듭니다.

 

성령님~~

오늘 아침엔 조용히 무뤂꿇고 나의 알량한 자기 의로 시험들게하고

상처받앗을 알 듯 모를듯한 약한 영혼들을 위해 회개하며 간절히 용서를

구합니다. 설령 도무지 이중적인 행동이 옳지않음은 당연하더라도,
분명히 연약한 심령을 마음을 닫게 하였다면 나는 잘했다 스스로 장하게 여길지라도
  처절한 실상은 사납게 판단하고 고소하는  내 식의 법으로

나를 다스린 것이겠지요. 또 주님의 이름으로 선악과를 땃습니다.

 

성령님~~

성령님께 의지하기보다 내 눈에 보기에 좋을 대로, 알량한 소견으로 찌르는 말을 먼저

밷았으니 그저 죄인입니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교인들에게도 부드럽고

은혜스러운 주님의 마음이  내 입을 통해 흘러가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이러고도

제가 주님의 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지?  저의 흥분하기  잘하여 말의 실수가

많음을 용서를 구합니다.

부당히 취급받았다 억울하고 분통해 하는 맘으로 핍박받았다, 거절당한 아픔으로
단정하기 잘하여 좌절로 숨어 들기 잘하여 부어주신 귀한 
구령의 열정의 기운을 빼앗는
합리화된 사나운 혈기, 공치사하는 모든 자기의의 심사를 버리고  겸손히 내가 나됨을 감지덕지 감사하고
성령님의 온유하심으로 덭입기를 사모하여 이 마음을 드립니다.


그럴 수가있나? 원망으로 기우는 번다하고 아픈 이마음 새롭게 하소서~~

성령님의 평안이 넘치는 임재를 온 맘 다해 사모합니다.

임하여 주소서~~

섬김의 열정을 새롭게 하소서~~

 

이희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