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 Kang's corner
“무소유(無所有)”, 이 번 주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진 화두(話頭)였습니다. 지난 11일 입적(入寂, “죽음”을 뜻하는 불교적인 용어)한 “법정”스님을 기리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맑고 향기롭게, 청빈한 삶과 수행 정신의 사표”였던 그 분의 입적을 애도합니다. 그 분이 1976년에 펴낸 첫 책의 제목이 ”무소유”이기도 합니다. 불교도로서의 그 분이 남긴 교훈들, 그 중에서도 “무소유”가 가장 특징적입니다. 사람으로서 과연 “무소유”가 가능할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 일을 힘주어 강조함은 다른 이들에게 자극과 도전이 됩니다. 21 세기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의 특징은 “소유”입니다. 한국 사람은 물론 모든 사람들은 다 “소유욕”의 지배를 받고 현세를 삽니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소유함은 대부분의 바램이고 목표입니다. 특별히 자유 경쟁 경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입니다. 그 소유욕으로 인한 바램이 좋은 면도 있습니다. 인류 사회에 진보와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동기를 부여함입니다. 그러나 소유욕으로 인한 부작용, 그 부작용으로 인해 절대 다수가 당하는 고통도 큽니다. 2008 년 후반 부 부터 시작된 세겨적인 경제의 어려움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뉴욕 월스트리트를 지배하는 큰 금융회사들의 자제되지 못한 소유욕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그러면 “무소유”, 곧 소유욕을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 제일 이상적인가, 이 현세에서는 그럴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하는 것만이 최선책이라고 주장하기 힘듭니다. “소유욕”에 대한 바른 해답은 무엇인가? “무소유”는 실현의 가능성이 너무 희박한 주장이기에 “소유욕”을 “다스림”입니다. “소유욕”이 다스려질 때 자신만의 유익이나 편리를 위해 다른 사람을 악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정도가 극소화됩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최선으로 소유한 것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소유욕”을 “무소유”로 바꾸기 위해 마음을 비우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음을 비우는 대신 이기심이 아닌 다른 마음이 마음을 다스리게함이 해결책이라고 가르칩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공생애를 “머리둘 곳”이 없게 사신 예수님(마8:20)이 바울 안에 사셔서 바울의 모든 것, 특별히 “소유욕”을 다스려주셨기에 바울은 가장 위대한 일생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사셔서 우리를 다스리도록 복종합시다. 그럴 때 우리의 “소유욕”이 “베푸는 열망”으로 바뀌어서 나누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