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눅2:7) “구유, Manger”는 “가축의 꼴을 먹이는 그릇”입니다. 곧 가축의 밥통입니다. 영원히 제 2위 하나님이신 분이 속수무책인 아기로 이 땅 위에 나셔서 다른 곳이 아니라 짐승의 밥통 안에 뉘어져있습니다. 첫 성탄의 중심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태어나셔서 제일 먼저 짐승의 밥통 안에 뉘어졌음은 비천한 신분으로 너무나 초라하게 이 세상에 오셨음을 증거합니다. 구세주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목적을 말해줍니다.“겸손과 고난”입니다. 겸손히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함입니다. 그 십자가가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성부 하나님의 뜻입니다. 짐승의 밥통에 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크리스찬이
교회로 모여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그 예수님의 증인되는 것입니다. 증인되는 길은 희생과 고난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겸손의 자세로 끝까지 증인되는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의 교회, 한국 교회는 짐승의 밥통에 뉘이신 예수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너무 먼것은 아닌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큽니다.“10 대 대형 한인교회, 한 해 식비 100만 달러 넘는다.” (2010년 12월 7일자 LA 중앙일보) 그런 교회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을 이유가 충분할 것입니다. 대형 교회이기에, 성도들의 수가 많기에, 친교를 위한 식비는 교회 예산으로 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형 교회들이 선교와 구제로 많은 예산을 지출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보도가 미국의 한인 교인들은 굶기에 교회에 밥먹으러
온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아기로 짐승의 밥통에 뉘이신 예수님은 먼저 우리 교회에 “너희가 교회에서 먹어야 하지만 너희들만 먹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세상의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목사인 저도 먹을 것이 없는 주일 교회 친교를 기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그러니 이 강림절에 제일 먼저 회개의 기도를 해야할 사람은 저인 것 같습니다,“주님, 구유에 뉘이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저만 먹지 말고 먹여주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