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숫군”은 지키는 사람입니다. 적군이나 도적이 공격해오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수고와 희생을 바칩니다. 파숫군을 먼저 죽이면 정복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기에 적군이 먼저 파숫군의 목숨을 빼앗기도 합니다. 오늘 날도 군인들이 있는 곳에는 파숫군의 보초가 반드시 있습니다. 저가 한국에서 군대 생활 할 때 미군들과 함께 판문점에 간 적이 있습니다. 판문점을 들어가고 나오는 문은 경계가 아주 삼엄했습니다. 같은 민족이 사상의 차이 때문에 원수로 여기면서 서로를 경계하는 비극을 몸으로 느겼습니다.“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겔33:7) 파숫군이 깨어 보초를 서다가 적군이 침략해 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때 즉시 힘을 다해 나팔을 붑니다. 적군의 침략을 방어하도록 미리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파숫군으로서의 책임을 다 해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아군이 죽는 경우에는 파숫군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파숫군이 그만 깜박 졸았거나 잘못 판단했거나 어떤 경우든지 적군의 침략을 경계하여 미리 알리는 나팔을 불지 않았기에 아군 중 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그 책임이 파숫군에게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선자자의 사명이 마치 적군의 침략을 나팔을 불어 알리듯이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영적 파숫군의 사명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 일인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그 영적 사명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고 증거합니다. 예수님만이 죄인인 인간이 죄용서함 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구원과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알리는 것입니다.(행4:12) 그 복음의 나팔을 널리 불어야하는 파숫군이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파숫군입니다. 복음의 나팔을 불어 구원과 심판의 사실을 알려야합니다. 그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요? 모르기에, 잊었기에, 등한히 하기에 마치 잠자는 파숫군 처럼 영적으로 졸고있지는 않은가요? 깨어 나팔을 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