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코너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하나님:
사울은 본인의 말대로 미미한 베냐민지파에서 뽑혀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된다.
그는 사람들 눈에 보기에 키가 크고 잘생긴 그야말로 꽃남이었다. 백성들이 노래하는
왕이 되기위해 저는 전심을 다한다. 그런데 문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자신이 범사에 본이 되어 저들을 선도하고 지켜주는 본분이
저를 왕으로 뽑아주신 하나님의의 뜻을 망각한데 있다.
사울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존재인가? 그야말로 자신이 왕된 입지만을
세워줘야하는 자신의 종이다. 인간됨을 버리고 권력에 집착하는 그를
돌이켜 왕다운 왕이 되도록 하나님은 길이도 참으시고 애쓰셨건만,
권력욕을 지키기 위해 분주한 그의 마음엔 하나님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하나님의 존재가 고작해야 그에겐 위험을 막아주는 도구일 뿐이지
인격적인 만남은 전혀 이루어지질 못했다. 그토록 많은 회복의
기회를 참으로 미꾸라지빠지듯 자기 합리화를 너무도 잘하여
번번히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소년 다윗이 이방인 블레셋의 골리앗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모독하는 것을 듣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던진 돌팔매로 저를 이기니
백성들이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라는 한마디에
획 돌아버려 광적으로 다윗을 죽이는 것이 일생의 과업이된다.
왕이 되었건만 껍데기는 왕이지만 그 마음은 너무도 황폐하여 거지같이 살았다.
병적인 권력에의 집착, 텃세, 시기심, 두려움, 자신을 잃음…
싸움을 싸워 보기도 전에… 급하면 불러대던 사무엘도 죽었고,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도 하나님은 드디어 " 그래? 어디 네맘대로
하고픈대로해봐" 하시듯 아무리 불러도 침묵하신다.
본인이 금하여 쓸어버린 신접한 무당에게 마지막 카드로 긁어
보는데…차라리 모르는 상태에서 죽기로 싸웠던들 그 정도로
실망했겠는가? 아군이 진멸되리라는 소식만으로 완전히 혼이 다 달아나니…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보다 낳은가? 어려운 일을 코 앞에
두면 점쟁이를 찾는 집사, 권사들로 장사진이란 예기는 어제
오늘 예기가 아니다. 예언의 은사를 점쟁이식으로 남용하는
변절된 은사자들의 횡포가 가능한 것은 사울처럼 답답하니 발길을
돌려 하나님을 달래 보겠다는 것은 꼭같은 심정이 아니겠는가?
너무도 오래동안 침묵하시고 하나님이 대답하시지 않을때
그럼 우린 어찌해야하나?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대로 답하지
않을뿐 하나님은 침묵가운데 답하고 계시다. 침묵 자체가 그
대답이시다. 법썩떨지말고 조용히 어지러운 상황들 가운데
자신의 마음을 곰곰히 하나님앞에서 붙들어 앉히고 정리
정돈하라는 뜻이시다.
조용히 분요한 마음을 가라 앉히면 분명코 어디서 떨어졌는지?
하나님앞에 회개할 부분들을 찾게될 것이다. 하나님은 문제 요인을
뿌리 뽑아주시려하나, 우리는 증상만 없애주길 원한다. 증상만 잠시
없어진다해도 그 뿌리가 남아 있으면 문제는 더 깊어진다.
아니 증상만 살짝 살짝 없애주면 오히려 썩고 썩어 필경은
속수무책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아~ 오늘날도 하나님을 나의 소원을 이뤄주는 요술램프의 종으로 삼으려는
사울의 길을 가는 기복신앙 신자들이 교회안에 얼마나 넘쳐나는가?
교회밖의 불신자보다 교회안의 불신자가 더 문제의 중증 환자들이 아니겠는가?
두려움대로 덮친 사울의 비참한 최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이 요나단을 비롯한 세 아들이
전사하고 자신도 화살맞아 중상하여 스스로 칼에 엎드러져 죽고
이스라엘군은 전멸하고, 잘리운 사울가의 머리가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길르앗거민들이 밤새도록가서 취하여 야베스로
돌아와 장사지내고 칠일 금식해주다.
군주의 자리를 그다지도 굳건히 지키고파 몸부림했건만…
모든 권력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주인의 자리에서 시중만
들라고 이용하려더니…. 종래는 아들들부터 잃고, 자신도
부상하여 스스로 처참하게 목숨을 끊게된다.
쥐려고 안간 힘쓰면 그 손에서 빠져 달아나고…
그져 맡겨진 자신의 할 일에나 성실을 다하는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덤으로 채워주시는 인생이
얼마나 풍성한지 너무도 기막히다.
아들들과 자신은 죽고 따르던 이스라엘군 전멸했으면 결국
자신이 두려워하던 최악의 최후를 맞이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진노중에라도 궁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벽에 걸리운 머리가 까마귀밥이 될 수도 있겠는데 길르앗
거민들이 밤새 위험을 무릎쓰고 달려와 가져다가 장사지내주고
7일이나 금식하고 애통해주니 불행중 천만다행 감사할 일이다.
비록 욕심은 부렸어도 이스라엘을 죽음으로 지킨 선의 보상은
잊지않으시는 하나님의 배려이시다.
여러 모로 맘에 안드는 아비, 군주일지라도 끝까지 함께하여
싸우다 죽은 충성스런 요나단을 비롯한 아들들을 두었으니…
비록 죽었어도 복된 가정이 아닌가… 그래도 못난 사울왕에게 주어진 귀한
분복이었다. 요나단과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아들을 둔 사울이었건만
아들이 복으로 보이기보다 다윗에게 왕자리를 빼앗기는 못난이로 본
자신의 복을 화로 몰고가 실패자로 인생의 막을 내린 못난 아비,
못난 왕, 졸렬한 인간의 모습을 보며 정신이 바싹든다.
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을 바라보지않는 자의 모든 노력은 결국 허사로 돌아가건만…
저의 모든 애씀이 향방없이 쏘아대는 사울의 무모한 화살같이 되지는
않을까 자신의 행보를 주님앞에 가져와 점검해 보며 두렵습니다.
저의 모든 작고 큰 수고가 모두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통로로
쓰임받기를 다시금 정신차려 마음을 추스려봅니다.
주님이 계시지않는 화려함보다는,
흠모할 모양이 하나없는 이대로 일지라도,
주님이 기뻐하실 것을 끊임없이 찾아가
어려움을 축복의 기회로 바꾸는 다윗의
일생처럼 살기 원합니다.
아직도 저는 사람들이 필요할땐 이용하고 계산이 안맞으면 밀어낼때 마치
겁탈당한듯 힘겨워 목노아 통곡하고픈 서러움에 빠집니다.
언제나 저는 범사를 감사하는 성숙함에 이르를지….
시도 때도없이 서럽다고 보채는 철부지 마음을 다독거립니다.
주님!
제게 사명길에 만나는 이런 저런 문제들이 감사의 내용임이 크게 보이는
은혜의 눈이 밝아지게 주님의 안경도수를 높혀주세요.
환경가운데, 다른 사람들가운데서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이고 좋은 것이 크게 크게 보이는 그런 은혜를
제게 주세요.
받고자 몸부림하다 있는 것도 누리지못하고 비참한 인생으로 막을 내리고
충성스런 아들 요나단마져 죽음으로 몰아간 어리석은 왕 사울, 악한 아비 사울의
삶을 무서운 경고로 받으며 합당한 이유로 부추키는 불순종의 가지들을 쳐버립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을 사랑합니다.
내 안에 주님의 양들을 크게 품는 궁휼하심으로 임하소서~~
이희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