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갈라디아서  미니 큐티 기도문

 

 

가짜 복음은 자기 나름대로 생명으로 여기는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진정한 복음은 듣기에는 쓰고 재미없어도

나를 살리는 영약임을 명심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법으로 옭아매는 두려움때문이 아니라 감사로 은혜에 감격하여  살리는 복음을

받아 들여야 자기 생명을 아끼지않고 힘껏 헌신하여 드리는 마음이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남을 열매를 보아 압니다.  바울

은 공적으로 하나님의 대사로서 단호하게  우왕좌왕 마치 복음이 여러가지인것처럼 연약한 갈라디아 교회들안에 들어와 뒤흔들

어 놓는 소위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교회를 교묘히 휘젖고 분리시키려는 마귀의 역사를 경고합니다.

 

오늘날에도 특별이나 이민 교회에는 각종의 문화 배경, 종교의 색갈이 다른 이들이 모여서 한 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는 복된 소식이 달라서 자기 기준대로 교회를 움직여 보려고 나름대로 애를 씁니다.

허나 우리 모두가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명심하고 예수님이 어떻게 양들을 사랑하여 서로를 배려하며 사랑토록 십자가위

에 돌아가셨는지 ?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복음인 것을 모두가 정신차려  때때로 부딛칠때 자신이 옳다 여기는 의견의 자기식

복음을 내려놓고 오직 모두가 십자가의 복음만을 따르기를 자기색갈이 강한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더욱 강하게 도전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라."  진정으로 이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길 소원하며 작정합니다. 내려 놓으면 놓을수록 드러나는 내 안에 숨어있는 육체

의 힘의 잔재들을 따라 사는 습관이 너무도 깊은 왜곡된 자기 사랑에 뿌리를 내려 쓴뿌리들과 엉겨 주님께 순결한 신부로 섬기지

못하게 막는 걸림돌임을 보며 심령으로는 하나님은 실제로는 육을 따라 사는 모습이 통분해 한탄하며 회개합니다.

 

율법이냐 은혜냐? 믿음으로 은혜받았다하며 개가 토한 것으로 돌아가듯 나의 눈은 여전히 내 자신의 익숙한 기준을 법으로

삼아 정죄하고 힘들어 하고 하루에도 수천 번 이에 따라 천국, 지옥 사이를 건너 다닙니다.  어느 누구도 자랑한만한 건덕지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는 정말로 알량한 소견을 죽어라 붙들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자기 의의 옷을 입고 스스로 속고 교만의 왕좌위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거지 왕의 모습을 제 모습가운데 보며 부끄러워 합니다.  

주님의 은혜의 몸답게 제대로 하늘  복이 나가는 통로가 시원스레 되도록 분별의 시력을 밝혀 주소서~~

 

성령을 따라 유업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딸이 됨을 누리렵니다. 아무쪼록 육체가운데서 올라오는 모든 거짖된 소리들의

홍수에서 다만 성령님의 음성을 가려내어 듣도록 내 귀의 다이얄을 하나님의 마음에만 오직 맞추기 원합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 너는 손해본다, 공평치가 않다,  억울하다…” 휘젖는 땅에 매인 생각들에게서 자유하여 하늘에 속한

생각을 순복함으로 자유를 누리길 소원합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를 일으키는 육체의 일이 현저한데 문제는 남의 행동은 잘보이나 자신의

행동에는 감각없는 자인지라.... 정과 욕심인지 제대로 분별하는 은혜를 부어 주시어 분별되는 대로 회개하고 성령이

기뻐하시는 것만을 골라 순복하는 주님께 속한 자이길 소원하며 간구합니다. 다른 사람의 모양새에 빠르게 신경이

거슬리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너그러움을 버리고 같은 성찰을 할 수있도록  깊은

영적 분별의 눈을 밝혀 주세요.

 

기회가 있는대로 믿음의 가정들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권해 주십니다. 남에게는 잘하기 쉬워도 가깝다고 느껴지면 함부로

대하는 우리의 육신을 따르는 습관 중 하나입니다. 다시 한 번 아주 가까운 가족들에게 좀 더 주님의 심장을 가지고 세워

주리라 다짐해 봅니다. 더욱이 자녀나 남편, 아내에게 덕이 되지못해 저들을 믿음으로 부터 밀어 낸다면

설령 나의 한 성질하는 본 모습을 모르는 이에게 대단한 천사표로 인정받아도 하나님은 뭐라하실지요?

 

서로를 세워주려 짐을 져주는 아름다운 배려하는 것을 집에서 부터 자라면서 배우지 못한채로 결혼이라고하지만   

믿음의 기정이라 하나 실제론 이기적이고 그져 나 밖에는 모르고 내 좋을대로 멋대로 행동하는 싸가지들이 넘쳐나는 것이겠지요.

날이 갈수록 섬긴다는 것은 남의 일이고 그져 받으려 들고 제멋대로 사나운 이 세대의 무서운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모로서

옷깃이 여며집니다. 자기 아이들은 그져 떠받들고 마치 천사로 여기지만 저들이 살아가야하는 이 세상이 그져 자기

아이외엔 다른 사람이 보이지않는 이기주의 부모만큼 너그럽지도 않고 점점 비정하기만한 이 세대를 어찌 저들이 헤쳐

나가며  제 멋대로의 성질들을 어찌 감당하며 저들이 만나는 이들에게 침으로 못할 고통을 주는

고슴도치가될지? 아찔합니다.  문제의 아이뒤에 문제의 부모가 있슴을 명심합니다.

 

진정 내 아이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어느 곳을 가든지 꼭 필요한 그런 존귀한 사람, 행복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무조건 아이를 과잉으로 편들어 미래에 사회의 문제아 싸가지로 키우고있지는 않는가?  아이와 깊은 대화를 쌓아가며 먼저

이웃을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되는 인성 교육에 부모들이 학교 공부에 신경쓰는만큼 정도라도 마음을 두어야되리라

그져 자기 아이만이 예쁘기만한 눈먼 부모 마음들이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어릴 때 눈을 뜨기만을 기도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우리 예쁜 아이들이 키가 크며  점점 자기밖에 모르는 괴물처럼 변해가는 것을 보며 사납고 거친 아이들을

내 아이들이 혹시 자기를 싫어할까 교육하길 겁내는 부모들의 마음을 애통해합니다.

 

아이들가운데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아끼지않았던 바울의 심정을 생각하며  부모들이 먼저 현저한

육체의 일을 버리고 아이들에게 본이 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부모가 되길 기도합니다.  썩어질 육체의 탐욕과 쾌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세상의 풍조에서 그져 부모의 눈이 무서워서가 아닌 자발적인 믿음의 표현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거룩한 부모 거룩한 아이들로 살아내는 저희들되도록 저희의 심령을 비우며 성령충만의 열매들이 넘쳐나는 스위트 홈

되길 간절히 사모하며 엎드려 눈물로 기도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이 마음이 크게 임하려면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마음이 제대로 때에 맞추어 일을 해야하는데   주님께서 참으로 제멋대로 달아나는 거칠고 사나운 마음들을

사랑의 마음을 부어 주시어 땀은 흘러도 기쁨이 넘치고 따뜻함이 넘치는 천국이 내 주위에 내리도록 성령충만을

목마르게 사모합니다.

 

주님도 미소지으시고 모두가 행복한 천국이 그립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아 ~~ 우리 모두 안에 주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믿음안에 따뜻하게 어울어져 사는 모습 너무 보고싶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복만이 되기를 사모하며 기도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진정한 복된 소식이십니다.


이희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