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복음 5장 묵상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4)

 

예수님이 예루살렘 양문 곁에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예기

 

묵상)

 

천사가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면 낳는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바라고

모여든 많은  병자들,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들 중에 38년간이나

병들어 누워있는 병자에게 예수님이 닦아 가시어 말을 건네신다.

 

이미 병이 오래되어 몸도 마음도 자포자기한 그를 놀리시려는 것도 아니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신다. 그의 심기를 건드리시려는 의사는 더구나

왜 그런 질문을 하셨을까?  인간이란 어찌보면 질기고 독하다 해야 할지?

 

그렇게 아프다 보면 그 아픈 것이 아무리 심해져도 익숙해 지기 마련이다.

아픈 것 자체에 길이 들여져 그런대로 병을 끼고 견딘다.  그러니 처음

발병했을 때보다 병이 깊어도 낫고자 하는 의지나 바람은 막연한 모양뿐

실제는 희망을 접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38년된 병자의 문제는 이제 병 자체 보다는 오히려 낫고자 하는

의지를 내려놓은 체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문제의 핵심부터 다루고

계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이에 저는 낫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하기 보다 자신이 낳을 수 없는 이유부터

늘어 놓는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 주질 않으니 다른 사람들이 언제나

선수를 쳐 자신에게는 기회조차 가져 볼 엄두도 낼 수 없다고 말이다.

 

저와 나를 보면 너무나도 비슷하다. 재미없고 어쩌면 자신이 처한 환경은

더 이상 변할 수 없는 끝이라도 난듯이 지래 그야말로 운명론처럼 팔자로

돌리고 환경만 보고 한숨짖는다.  내게 무슨 좋은 일이라는게 남들처럼

있겠냐고?  입을 모아 팔자 타령이다.

 

그러나 과연 그 것이 진리이란 말인가? 어디까지나 희망이란 특수층

사람들의 전용물이라고? 올라갈 수 없는 나무라고 땅만 쳐다보고

한숨짓는  절망이란 병에 너무나도 오래찌든 내게 묻고 계신 것 같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은 오늘 나에게 물으신다.

그의 불평에 대해 동문서답 같은 정답을 말씀하신다.

 

네가 깔고 앉아있는 바로 그 안전아닌 편안 지대인 그 자리를

가지고 일어나 가라고 말이다. 불신앙의 모든 불평의 소리를

집어 던지고 일어나 믿음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주님은 명령하신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저 궁시렁거리고 불평하던 저가 말씀대로

자기가 앉고 있던 자리를 걷고 일어나 감과 동시에 그의 38년된

고질병이 그를 떠났다.

 

기도)

 

사랑의 주님!

 

제가 주님의 마음을 답답하고 아프게해 드리는 저의 고침받아야할

병은 감사치 못하고 어리석은 마음이 허망해져 주님이 공평치 않노라고

차별 대우한다고 불평을 일삼던 것입니다. 그리고 곁눈질로 내가 원하는

일들;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순인 제게 시원히 할 일이 넘쳐나는 것에 목이 말라

열심히 자기 일을 헌신하는 이들보면 언제나 부러워하며 내 자리를

재미없다고 불평하는 것이 저의 고질병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릴 아름다운 주님과 마음이 하나로

연합되는 그 마음으로 굳건히 붙들어매고 싶습니다.  다른 이를 보며

부럽다 못해 고소할 건수를 찾는 마귀의 괘계에 걸려들지

않으렵니다.

 

녜 주님!!

 

낫고자 합니다. 순복하며 아름다운 당신의 심장과 하나이고 싶습니다.

내 마음에 막힌 모든 정죄하는 맘, 고소하는 맘, 분노, 쓴 마음

시기심, 탐심을 모두 십자가발아래 내려놓고 버립니다.

 

비록 저들이 악한 일을 했을지라도 꼭 같이 생각하지 않으렵니다.

액면 그대로 받으렵니다. 주님이시여~~  제게 당신께만

충성하여 주님의 마음을 온전히 회복되고 자유로이 주님과 기쁨으로

거하려 합니다. 저의 마음을 가로막는 모든 막힌 담들을

헐어 버리고 당신의 집을 지으며 일어 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낫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이희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