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코너
한가지 아는 것은?: 요한복음 9장 묵상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 이니 이다.” (
“ 예수께서 가라 사되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져 있느니라.” (
요약)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시니 안식일에 예수님이 고쳐 주었으므로
이를 물고 늘어지는 바리세인과 자신에게 일어난 치유사건을 담대히 그대로
증거하는 소경과 바리세인들에게 끊임없이 손내미는 예수님
묵상)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어느 누구나를 막론하고 자기 중심으로 우주가
움직이는 착각을 한다. 바리세인들이라 하면 지도급으로 백성들의 안위를
염두에 두어야함이 당연하겠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에게
돌아올 유익에만 신경이 총집중 되어 있다.
날때부터 소경된자가 눈을 떳으니 도무지 이런 일이 어째 일어날 수
있겠는지? 객관작인 사건으로 놀랠 만도 하건만… 아무리 천재지변이
터진다 해도 자신에게 별 이득이 없는 일이라면 놀라지도 않는 인간들인지???
그것이 몹시도 궁금하다. 소경조차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시라면 이런
일이란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을 담대히 시사한다.
자신이 생생히 만난 일조차 부인하라고 소경의 입을 막으려고 눈이 뒤집혔다.
바리세인~~ 자신의 입장 변호를 위해 아주 지엽적인 것을 하늘이라도 무너진듯 들고
나와 억지를 당당히 부린다. 소경이 고침받은 날이 안식일이라는 꼬투리를 붙들고
당당하게 휘둘르려 한다.
기득권은 내가 잡기 이전엔 공의와 사랑을 들먹이며 내 손에 쥐기 위한 공격의 대상이다.
그러나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이제부터 입장이 달라진다. 내 손에 이리도 어렵게
들어온 것이기에 어느 누구도 근처에 아예 기웃거리는 것조차 허락치 않고
내 것을 지킬려는 텃세하는 꼬라지가 가히 볼만하다.
쥔 자와 가지지 못했다 생각하는 자들의 암투는 가히 살인적이다. 문제는 쥐었다고
굳게 믿는 자들이 제 것도 아니고 쥘 수도 없는 것을 소유권을 가지고 제것처럼
텃세를 하고 제 것도 아닌 것을 제 것으로 교만을 떠는데…
하나님의 사람이 제 것도 아닌 것을 텃세하는 교만한 것들로 인해 마음이 상하거나
위축하면 우리 주님이 마음 아파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얼마나 공평하신지! 아무 것도 내놓을 것없는 거지소경이 예수님이
만져주심으로 눈이 떠졌다. 그런 기적이 자기 같은 자에게 순서가 돌아온 것에 얼마나
놀라운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38년간이나 고생하던 고질병에서 놓임을 받았거늘
바리세인들의 핍박이 겁이나 나를 고쳐준 이는 예수라고 권력에 아부하려 고자질하던
그런 배응망덕한 인간이 보통이거늘…
그래도 소경은 감사를 감사로 알고 눈을 뜨게 해주신 사실을 사실로 담대히 고한다.
그 부모도 역시 비겁하게 아는 사실도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참으로 어찌 사람들이
그리도 자기 입장만이 소중한지… 아~~ 도무지 어디에 의인이 있단 말 인가?
어디에서 의인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인가!
한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은 본다고 사실을 사실로 말하는
소경이 세상을 혼자 손에 쥐고 있듯이 뭘 모르는 꽉 맥힌 바리세인 영적 소경보다는 정말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다. 왜 우리는 이리도 이 못난 거짖말에 끌려 들어가
우리에게 주시는 복을 기를 쓰고 차버리는지?
소경들을 인도하는 선생이라 자처하나 또 다른 소경이 되어있는 바리세의 질기고
질긴 옷들을 혐오한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바리세인들의 아집가운데 나의 아집을 보며,
저들의 집착가운데 나 자신의 집착을 보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생각을 파하며
산란한 생각들을 주님의 발 앞에 사로잡아 복종합니다.
주님의 마음과 열정적으로 연합한다 하며 돌아서 보면 또
그 것이 마른 막대기 바리세의 옷을 입고 있는 자신을 봅니다.
“ 오호라 곤고한 자로다. 몸으로는 율법을 마음으로는 성령의 생명의 법을
섬기며 이 중간 새에서 고통합니다. 나를 이 사망의 골짜기에서 구원하소서~~
“율법의 굴레로 스스로 목매고 들어가는 어리석음이
시원히 보여지는 축복을 넘치게 주소서~~
그 무엇이 대단하여 그깐 것에 목숨을 걸겠습니까?
주여~~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처절하고 초라합니다.
당신의 대단한 딸인 제가 동서를 분간못하는 죄의 종들의
기득권주장하는 텃세에 밀려 밀려 또 아파서 울고 있는 제가 한심합니다.
아직도 믿음으로 당당히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철없는 어린 것들을 품고 세워주지 못하고
저들을 대적하는 피해자의 누더기 옷을 걸치고
울고 불고 아파하는 제가 어찌 당신의 딸이라고
감히 말을 할지요?
아직도 아직도 말입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날듯하니 "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있나?"
도무지 말도 되지않는 제 법으로 드리대는 이들 향해
" 내가 한 가지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눈이 떠 보이는 것이고요
내 눈을 뜨게 해주신 이는 예수님이세요" 그리 당당히 말을 못하고 어리버리한
저를 용서하세요. 어디를 찔러도 예수님을 드높히는 믿음의 고백이 터져 나오는
그런 당신의 딸다우려면 먼 것 같아요. 받은 은혜가 넘치는데 감사보다는 힘들어하는
시간이 더 많은 이 철없는 저를 어찌하면 좋을지요? 주님의 깊으신 마음이 더 크게 보여
내가 아는 이 한 가지 눈뜬 사실을 기뻐 외치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이 희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