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코너
누구를 위해 열심히 종을 울리나~~: 사도행전 9장 1-31절 큐티
“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
“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많아 지니라.” (
요약)
거짖을 진리로 믿고 살인까지 무릅쓰고 교회를 전심으로 핍박하러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을
아나니아를 사용해 바울로 회심시키시는 성령님. 극적인 회심후에 예수는 그리스도라
다메섹에서 증거하니 이제는 죽음의 위협이 본인에게 밀려오다. 그러나 저를 제자들이 믿지
못하니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바울을 변호해 준다. 이에 더욱 열심히 일하는 바울과
저를 죽이려드는 헬라파 유대인들. 이에 형제들이 저를 다소로 보내다.
묵상)
사람의 행동 패턴은 변하지 않는다. 한 가지에 열심인 사람은 무엇이고
열심이다. 비록 잘못된 교리와 전통이었지만 그 것을 최상의 진리로 믿어 전심으로 목숨걸고
수호하던 바울이다.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순교를 하는 스데반을 보면서도 자신의
유대교에 배반된다는 그 생각에 몰두해 있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생각이 굳게 닫힌 무신경으로 맹신에 가까운 그이다.
그래서 보통의 방법으론 그의 고정된 눈을 주님께로 향하도록 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리 인간적으로 합리화 할 수 없는 극적인 불가사이한
기적의 방법으로 다메섹으로 예수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 미친듯 달려가는
그의 다리를 걸고 넘어뜨리셨다.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려 비추시니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소리까지 들려 주시는 편법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계속 바울이 알아들을 인간의 음성으로 계속 말씀하시고 끝내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나니아를 연결시키시어 그에게 마무리의 바톤을 넘기신다.
실로 하나님은 할 수 있으면 인간의 손을 사용하시고 인간 관계를 통해 역사하시길 선호하신다고
다시금 절실히 느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워낙 악착같이 성도들을 잡아들이던
극성파였는지라 이제 비록 그가 회심한다 해도 모두가 경계하고 의심의 눈으로
바라 보는 이들이 태반이지 그를 믿어 줄 이는 별로 없었으리라.
이제 시작된 성령의 새 사역이 시작단계이었으니… 더욱이 하나님의 일은 혼자는 결코 할 수
완맨쇼가 아니기에 바울 회심후 하나님은 바울을 밀어주는 도우미들를 붙여 주시기에
바쁘시다. 회심하자마자 본인이 핍박하던 것을 진리라고 전파하니 그 효과가 얼마나 powerful했을지
상상이 간다. 회심전의 사울과 같은 극심파들이 저를 죽이려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신이 믿는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은 귀하다. 그러나 잘못된 비 진리를 절대
진리로 믿고 수단 방법을 총동원해 자기 것만을 사수하려는게 문제이다.
자기 생각에 맞지않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용납않고 살인도 온갖 죄악도 마다 않는다.
종교는 아편이라고 했듯이 종교 중독은 너무도 무섭다. 우리가 진리를 알 때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거늘 … 인간을 위한 진리가 인간을 대적하는 것으로
변질케하는 잘못된 신념의 종교의 파괴력은 정말로 무섭다.
극적인 위기 상황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자의 삶에 뿌리박는
하나님의 기회이다. 위기로 인해 사울의 회심이 진짜임이 증명되고 생사를 나누는
형제로 접목되는 바울의 동역자 신고식을 티나게도 한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그를 담아 성에서 빠져 나와 생명을 건지기도 하고,
저를 의심의 눈으로 벽안시하는 이들에게 담대하게 바울을 사도들에게 변호해 주는
바나바를 붙여 주신다. 믿음이 있다하며 지도자들간에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주장만을
진리로 우기고 펼치려든다면 너를 죽이고 또한 나도 죽고 우리 모두 만다. 하나님나라의 일은
혼자의 능력이 뛰어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탈진해버리고 그 한계는 뻔하다.
그러나 각 자의 은사가 출중하지 않아도 자신들의 모든 자존심들, 자기 주장들을 내려놓고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지길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주님의 마음으로 연합한다면
그런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 모인 곳이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사람을 세워주눈 바나바가 있어 전심으로 바울을 형제들에게 데리고 다니며 안심을 시켜주었기에
때때로 형제들의 돕는 힘을 얻어 바울이 날개달고 사역에 전력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성령님이 임하신 초대교회의 기적중의 하나는 지도자들간에 서로 부딛칠 일이 왜 없었겠는가? 다들 열심히
전심들을 다했으니 오히려 여전히 성화되지 못한 모난 부분들로 인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끊임없이 터졌을 것이다. 허나 누군가는 믿음으로 썩어지는 밀알의 역할로 성령의 은혜로 화평케하고
세워주는 바나바같은 이들로 인해 인간의 높디 높은 장벽을 허물고 주님의 마음으로 결속한
사랑으로 하나된 인간 관계 회복이 영원토록 모든 교회들이 따라야할 아름다운 샘플이다.
기도)
사랑하는 성령님~~
오늘날도 초대교계 지도력에 임하신 복음 전파의 열정적인 연합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주님께 마음주고 그 마음으로 형제를 도와 복음 전파에 힘을 모으는
바울도, 아나니아도, 바나바도, 익명의 형제들 모두가 필요합니다.
갈수록 개인이나 개 교회, 개 사역단체의 내 것에 대한 벽이 너무도 높을
뿐 아니라 아예 적국으로 취급하는 불꽃튀기는 사역의 보호심, 경쟁심이
가슴이 아픕니다.
내 이름으로 내 교회의 사역이 관련되어야 목을 내놓고요.
자신의 이름과 상관이 없으면 완전히 문을 닫아 거는
내 일 내 사업, 극도화된 개인화 협소한 벽으로 주님의 나라는
수만 갈래로 각 자의 노선을 달립니다.
내게 당장 아무런 이익이 없고, 좀 손해가 나더라도 주님의 나라에 보탬된다면
손을 내밀 수 있는 소박한 주님의 마음을 지닌 주님의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알량한 소견으로 자신이 허는지 세우는지 모르고 사사로운 의견을 사수하는
저희 속에 숨어있는 어리석은 습관들에 늘 속아넘어가질 잘하여 헛된 일에 목숨거는
저희들은 아닌지... 누구를 위해 열심히 종을 치고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며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억울한 마음, 쓴 마음을 주님의 이름으로 잘래내며
늘 상 변함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따뜻히 맞아주는 당신의
가슴과 손으로 남으리라 마음을 다 잡아 봅니다.
모든 기회들을 주님의 성품을 삶가운데 드러내는 통로되도록 엎드려 지혜를 구하며
아버지의 지혜에 흘러나오는 궁휼의 마음을 내게 주신 크나큰 복으로 끌어 안고
제게 허락하신 만남들의 인연들을 깊은 사랑으로 아름답게 키워 가렵니다.
영원히 거기 있어 평안이 쉴 수 있는 당신의 가슴이 나의 가슴에 부어진 샘물되어
행복을 퍼내는 평범한 날의 따스한 행복을 누리렵니다.
어딜가든 세상 끝날까지 주님의 손잡고 누리는 평안과 희락을
나누고 살렵니다. 그 것이 나의 성공입니다. 모든 주님의 사람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기쁘게 해주고 세워주는 그 일에 전심을 쏟으렵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주님의 마음을 가진
주님의 사랑하는 자로
일생을 주님 앞에 살렵니다.
저를 품어 주시고 주님의 은혜가 풍성히
흘러 내리는 은혜의 가슴을, 궁휼넘치도록
기름을 부으소서~~
성령님을 가슴가득 사랑합니다.
충만히 임하소서~~
사모하는 모든 심령에게 같은 주님의 마음으로 하나됨을
목마르게 사모함으로 같은 은혜로 충만히 채워 주소서~~
이희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