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요동케 하는 복음: 사도행전 17장 큐티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7:11)

 

요약)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전하다 시기하는 유대인들의 핍박이 심해지니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 , 베뢰아 를 거쳐 새로운 것을 듣기를
즐기는 아덴에게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을

전파하며 회개를 촉구하니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다.

 

묵상)

 

시기하는 유대인들의 핍박도 바울이 스데반을 죽이고 핍박하던 같은 현상이다.

단지 자신이 이제는 핍박받는 상대가 된 것이니 아마도 복음을 외치다 저들에게
죄를 돌리지않고 마치 천사같은 얼굴로 순교한 스데반을 생각함으로  점점 열기를 다해가는
극심한 핍박에도 눈썹하나 까딱않고 부르신 사명위해 앞만 보고 
정진할 수 있었으리라.
핍박이 심해지면 질수록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르고 오랜 관념에 억매어 자신의 것을
이를 악물고 사수하던 자신의 옛 모습을 되돌아 보니 오히려며 
저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깊어져 복음전파에 오히려 박차를 
가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참으로 이상하다. 핍박이 심하고 믿는 것이 어려울 시절엔 온갖 접하는 고통이

오히려 친구처럼 잘도 견디며 삶의 초점이 확실했다. 그런데 요즘엔 맘만 먹으면 너무도 많은

자료들이 홍수같이 널려있고 누구하나 예수믿는다고 괴롭히지 않는다. 외적인 고통이

제거되니 아무리 널려 있어도  천국복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자기 자신만이 소중해진
극도의 자기중심 나 나 나 가 
왕이 된 독불장군의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를 거스리면
적이다. 자신의 왕국을 키워내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가  점점 극악해지니 자기 숭배( self worship) 끝에
 남는 것은
온갖 시기, 질투, 분노, 좌절, 쓴마음, 한, 원망, 불평, 원수맺음, 우울증 등등의 내면의 병들뿐이다.

 

지금은 제 맘대로 자기만을 위해 살 수 있는 물질과 살기 편해진 것이 풍부한 극치의 세상이다.  대 제국의 
왕이었다해도  지금처럼  편리하고 화려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까?  허나  과연 내 손에 많은 물질, 온갖 쾌락의 방법이
넘쳐난다해도 그 것을 즐길만한 영, 혼 육의 건강함이 따라와 주어야만  행복함이  가능하다.

 

환경에 따라 사람의 행복이 좌우되는  행복관처럼 거짖말이 없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 옳다 여기는
것에 삶에 초점을 맞추고 달릴 수 있을 때
주어진다. 그러나 그 목표는 제 맘대로 정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그 목적에  내 삶의 초점이 맞추어져 제대로 중심을 잡아야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복의 유통자가 된다.

 

자신이 아무리 옳다하나 천국확장의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면 결국 주위 사람들을

해치고 나아 가서는 자신을 죽이는 잔악한 파괴력이 된다.

 

인간이란 지으신 하나님의 인도함 없이는 이래도 저래도 절대 자신을 감당못하는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존재인지 모른다.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말씀이 전해질 때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 것이 그러한가하고?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면

그 사람은 결국 진리의 말씀에 눈이 떠지고 행복한 복의 유통자 사명자가 된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사람이 가장 흠모하는 것, 자신이 속한 곳에서  자신의 삶이 인정받고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음을 누리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제 손으로 스스로 자리를 만들려니 그게 잘 않되니 문제입니다.

자기는 잘해보려 하는건데 그 것이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도움은 커녕

해가 되고  어려움을 맘드는 원인이 되니 인간됨의 한계를 통분합니다.

 

가장 똑똑한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제 멋대로 살자니

이름없는 들풀이나 짐승만도 못한 인생이 너무도 많습니다.

저들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온전히 따라 아무리 악 조건이라도

헤치고 씨가 떨어진 곳에서 살아 남습니다. 그러나 유독 인간만이

환경이 좋아질수록 자신을 해하는 미련한 존재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깊히 상고하는 자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다윗이 성전에 올라가는 시로 드렸습니다.

 

비록 넘어지고 치명적인 실수를 허다히 범할지라도 그 중심의 하나님의

법이 있어 그러한가 상고하는 자는 주께서 책임지는 인생이 되니

그저 행복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참으로 천하를 요동케하는 복음입니다.

과연 하나님 말씀이 그러하가 날마다 마음가운데 깊히 깊히 생각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주님~~

내 안에 두신 주님의 말씀이 그러한가 깊히 상고할때에 어찌 그리 달고

오묘한지요. 그 오묘한 말씀의 맛을 누리는 재미만으로도 복된 인생이거늘

그 복을 나누는 재미 또한 넘치는 제게 더해주신 저의 복의 복입니다.

 

주님의 말씀과의 만남이 기막힌 꿀송이입니다.

그 약속을 저의 삶가운데 충성스레 이루어 가시는  주님의 역사하심과의

만남또한 기막힌 영광입니다.

참으로 황홀한 구원의 능력을 기쁨으로 누립니다.

 

만방에 주님의 주님대신 이름의 놀라움, 광대하심을 전하리이다.

할렐루야~~

찬송받기에 합당하신 주님을 감격하며 사랑의 노래를 소리높혀 드립니다. 

 

이희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