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코너
|
죽음도 불사케하는 복음: 사도행전 21장 큐티 “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 요약) 에베소에서 눈물어린 작별하고 가이사랴에 빌립의 집에 유하니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와서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당할 환란을 경고하며 막으나 죽음을 불사하는 각오로 예루살렘으로 가다. 바울을 잡아 죽이려 온 성이 소동하나 저들에게 히브리 방언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신 일을 간증한다. 묵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곧은 신념대로 굳게 뛰는 영웅은 고달프다. 저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죽음으로 불사하여 섬긴다. 아마도 본인 스스로가 영웅이 되려거나 영웅이라 여기는 영웅은 아마도 없으리라. 저들은 순수한 목적에 어느 외적인 압력에도 굽히지 않고 다만 자신이 붙잡은 신념 하나를 지키기 위해 초지일관한다. 바울이 달려가는 전도자의 생애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난리통이다.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가 자리잡는 것이 어찌 그리 힘이 드는지… 극악한 시샘으로 분노로 뭉친 이들이 동족 유대인들이다. 시기, 질투의 악한 마음에 씌이면 가까운 동족이 이해 상관없는 남보다 더 악랄하다. 과연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이를 악물고 물어 뜯는 이가 언제나 가까운 동족들, 가까운 이들이니… 눈이 뒤집히면 인정 사정없이 너무도 악독해 지는 저들의 실태를 알면서도 바보도, 어리석은 자도 아닌 저가 폭탄을 쥐고 불로 뛰어들어가는 고집 또한 그렇다. 죽어도 자신의 사명이라 잡은 것을 하나밖에 없는 목숨도 초개같이 여기고 결코 아끼지 않으니… 참으로 사명의 힘은 무섭다. 그러나 죽어도 지킬만한 사명이 있고 이 사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자만큼 멋진 행복자가 어디 있겠는가!! 기도) 사랑하는 주님~~ 바울이 생명을 걸고 전하려는 복음입니다. 생명을 걸은만큼이나 주님의 마음과 가까웠던 복음입니다. 먼저 믿었던 우리의 조상들이 붙들었고 순종했던 복음도 수없는 고난의 피를 무릎쓰고 저들이 생명을 걸었던 값진 보석이었지요.
그러나 우리에게 흘러 들어와서 오늘에 우리가 사명이라 부르고 들고 뛰는 복음은 너무도 많은 사심으로 얼룩지고 퇴색하여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생각합니다. 과연 내가 외치는 복음!! 나를 통해 배어 나가는 복음의 순도가 어느 정도일지요? 째지는 가난도 싫다. 핍박도 싫다. 초라한 모양새의 작은 교회로 인해 내가 가진 복음이 마치 열등한 것처럼 때때로 작게만 느끼는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물론 입으론 큰 체하여도 속 내는 조여오는 열등감을 거절치 않는 자신이 마냥 부끄럽습니다. 자신의 세속화된 부요함을 과시하는 소위 대형교회 성공 수퍼 사역자 들의 세상사랑을 입으로는 통탄하나 막상 나는 그들과 얼굴을 맞댈 때 젊었을 때처럼 충정의 양심의 소리일 수 있을까? 아니면 모든 세인들처럼 입을 다물고 자기 일 자기가 알아서 하는거지? 남의 인생 존중하겠다는 명목으로 영원히 침묵의 길을 갈 것인지? 유명세가 높아져 가니…. 자연 멀어져 가는 우정이 마음이 쓰립니다. 평범한 친구의 우정조차 유지할 수 없는 유명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함인지… 그저 유명가운데 파뭍혀 복음의 진수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퇴색된 것에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목숨내 걸고 두호한 복음이 퇴색한 모조품이 었다면… 모든 신뢰 관계를 의심해야 하고 자신을 권리아닌 권리를 붙들고 오용, 남용하는 착각의 인생이 토하리 만큼 싫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들이 먼저 닥아 오면 거절못하는 나도 같은 죄인아닌가요? 다만 현재의 형편이 열등하기에 죄의 길로 튀지 못하고 영웅 심리에 착각하고 있는 속물인 자신이 아닐지? 어쩐지 같은 길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한 자신이 두려워집니다. 세인에 눈에 화려한 성공 사역자의 자리로 가면 나도 저들과 다를 것 없이 목이 곧게 될른지요? 준욱들고 초라해지는 자신을 주님께 의탁하며 정죄의 눈으로 분노하던 나를 붙들어 앉혀 봅니다. 그 자리에 가 보지 않는 한 무엇이건 함부로 말할 수 없겠지요 풍부에 처하던 빈곤에 처하던 변함없이 채우시는 주님의 이름에 담긴 아름다운 비밀의 복음을 널리 전하렵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바라 봅니다. 나를 붙들어 주세요. 죽음이 온다해도 굳게잡은 바울처럼 퇘색만은 막아 주시길 의탁합니다. 아니 내 마음아시고 속화를 막고 맑은 영성으로 유지해 주시느라 늘 나의 형편은 이리도 힘든 것이겠지… 무엇하나 쉽게 넘어 가는 것없고, 아무리 당해도 사람을 의심못하고 믿는 푼수인 나를 무얼 더 확인하시려는지? 이리도 마음껏 축복하며 사랑으로 돌본 자들로 부터
저를 가두어 두신 나의 작은 사모 자리를 더 이상 숨막혀 하지도 불공평이라 무식한 소리일랑 이제는 그칠까합니다. 속화로 썩음을 방지토록 나를 절여오는 소금산가운데 파뭍어 두신 것을 이제는 차라리 감사하렵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순전히 붙들었던 그 복음이 내게 흘러 들어
투정하고 복을 화로 붙들겠느냐? 하나님은 " 내가 곤고할 즈음에 곤고함에서 끌어내시니 좁지않고 넓은 것으로 끌어 내시며 네 앞에 차린 상은 살진 것이 되리라(욥 38)" 라고 하늘 복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좁통같은 마음으로 불평을 일삼는 것에서 많은 고생을 지나니 칼같이 예민한 신경이 무디어지고 넓어진 이해심으로 마음이 감사로 넘치는 살진 상으로 제 마음에 평안과 기쁨, 감사로 넘치게 차려 주셨습니다. 이 부요함을 무엇으로 바꿀 수 있겠어요.
제가 미쳐 깨닫지 못해 어리석은 불평으로 기울었음을 티끌과 재가운데 회개하며 내게 어려움을 준 이들위해 기도합니다. 저들이 무슨 짖을 하는지 몰라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 자기만 생각하다보니 곁에 있는 제게 불똥이 튀어 부지중에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은 미쳐
자기는 잘한다고 하는것이 하나님나라를 그르치고 동족을 죽이려든 같은 유대인들이니 주님가신 길, 믿음의 선조들이 걸은 고난의 사역길, 같은 길에 끼워주신 것을 영광으로 오히려 찬양하며 탈진으로 들어가는 마음을 사로잡아 주님께로 데리고 옵니다. 지치고 치친 저를 만져주세요. 죽으면 죽으리라 달려갈 이유를 다시 넘치도록 내 영혼에
이희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