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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믿음이 크도다/ 마태복음 15 장 21-28 절
사람에게는 해야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해야하는 것은 안하거나 느리게 합니다. 반면에 좋아하는 것은 빨리 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이 항상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해야할 것은 필요하고 또 유익합니다.
어린아이는 구슬 사탕, 과자, 인스턴트 음식, 설탕이 많이 들 어간 음료 등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로서리에서 떼쓰며 우는 어린아이와“노!”하는 엄마의
결심에 찬 모습을 봅니다. 어린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손에 쥐고 놓지 않을려고 그렇게 울고 떼를 부립니다.
그러나“안돼!”라고 말하는 엄마는 자녀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어른인 우리는 과연 얼마나 다른가, 입니다. 해야하는 것을 먼저 실천하는 가, 실천하되 과연
어떤 느낌이나 자세로 실천하는가, 입니다. 어른인 우리도 좋아하는
것을 자제하지 못하여 마음 아파하는 경우는 없는가, 입니다.
믿음입니다.“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마15:28), 예수님은 한 여자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십니다. 믿음은 과연 무엇인가요? 실천하는 힘입니다. 해야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딱 일치되면 제일 좋습니다. 직업이나 사업도 그렇습니다.“오늘도, 어쩔 수 없어서 이 일을 해야한다”, 그렇다면 해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런 느낌이나 자세로 살아갑니다. 믿음은 힘입니다. 해야 할 것을 좋아하며 감사하며 기쁨으로 해내는 힘이 믿음입니다. 사실 해야할 일을 좋아하면서 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어주는 힘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영원히 스스로 만족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사람의 어떤 것으로 만족을 느끼지 않으십니다. 사람 처럼 부족한 것이 많아서 그것들이 채워져야 만족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한 가지 때문에 기뻐하십니다.“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사람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길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나아오고 예수님을 찾는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특별히 힘들고 어려운 문제꺼리를 그대로 예수님께 가지고 나오는 사람, 그 사람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내 자신의 문제꺼리를 내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내어놓는 것은 사실 좋아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내어놓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꼭 해야하는 일입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흉악히 귀신 들린”딸을 둔 어머니였습니다. 큰 문제꺼리로 고통을 당하는 딸을 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좋아하지 않을지라도 해야하기에 딸의 문제꺼리를 예수님에게 내어놓습니다.“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마15:22)“가나안 여자”, 이 말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예수님 때는 유대인이 아니고 더우기 여자의 경우에 생면부지의 유대인 남자인 예수님에게“나와서 소리지르는”것은 결코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백인이 유색인종을 차별한 것 못지 않게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차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방인 여자로서 그 어머니는 좋아하는 것을 하기 보다는 해야하는 것을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알라스카에서 태어나 웨슬리안이라는 명문 대학을 나온 후 하바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Joycelyn Clark이라는 미국 여성이 있습니다. 한국 이름은 조세린인데 지금 배재 대학교의 교수입니다. 그 교수가 하바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쓴 논문 제목입니다,“가야금 병창에 등장하는 판소리 가사와 중국 문학과의 관계”대학 때 부터 일본의 고토, 그리고 중국의 쟁이라는 악기들을 배웠습니다. 한국에 가야금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국립국악원에 접촉해서 가야금을 배웠습니다. 조세린 교수의 말입니다,“가야금이 처음에는 재미 없었어요. 고토나 쟁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 가야금은 산조, 진양조, 다스림…너무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게다가 손에서 계속 피도 나고 아프고…’내가 도대체 한국에서 뭐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그냥 좋아할 때까지 하자고 마음먹었죠. 결국 가야금을 좋아해서 가야금에 빠졌어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쉽게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오래 안 가잖아요.‘내가 이해를 못하니까 좋은 줄 모르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더 노력해보자’그런 생각이었죠”처음에는 가야금을 이해하지 못해서 해야하니까 회의도 생겼지만 계속해서 하다 보니까 이해하고 나아가 빠지기까지 좋아하 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가야금은 귀한 한국의 악기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그 가야금과 비교할 수 있는가요? 영원히 제일 좋고 귀한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다 이해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줄 모릅니다. 성경을 다 이해 못하니까 좋은 줄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반드시 도와주시기에 좋아하는 면이 적을지라도, 해야하는 일, 기도하고 성경읽고 감사하고 섬기고 사랑하는 그 일들을 더 힘쓰고 노력해보자,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이 가나안 여인 처럼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인을 어떻게 맞이하여주셨는가요?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 하시 니" (마15:23), 도움을 얻고져 “소리 지르는 데, Crying out”, 전혀 대꾸도 안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싹 무시하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요청합니다, “예수님, 저렇게 큰 소리치는 여인을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는 다른 데로 보냄심을 받지 아니하였도다”(마15:24)”,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대답입니다.“성부 하나님이 유대인 중에서 구원받을 사람을 위해서 나를 보내신 것이지 이방인을 위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의 거부입니다.“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저를 도우소서”(마15:25) 이렇게 무릎 꿇고 간구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이 세번 째 대답하셨습니다,“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마15:26)“개들”, 곧 그 가나안 여인은 이방인으로 개 처럼 멸시와 모욕을 예수님으로 부터 받았습니다. 요즈음은 애완 동물, 특별히 개는 사람 못지 않게 잘 돌봄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는“개”는 멸시와 천대의 대명사였습니다.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이 여인을 한 두 번도 아니고 예수님이 왜 세 번이나 멸시와 냉대의 거부를 하셨는가요? 예수님은 그 토록 마음이 차거우며 특별히 문제꺼리로 고통이나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매몰차게 거부하신 분이셨나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 하신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보다는 해야하는 본질적인 것을 좋아하면서 하도록 믿음의 그릇을 키워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당장에 그 여인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도우셔서 문제꺼리를 단번에 해결해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그렇게 해주시기를 원하시는 긍휼과 연민의 사랑으로 충만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믿음은 그릇입니다, 당장 좋게 보이는 것 보다는 영원히 좋고 귀한 것을 담는 그릇입니다. 작은 그릇은 작게 담습니다. 큰 그릇은 크게 담습니다. 믿음을 키워 큰 그릇으로 만들어주시는 예수니의 테스트입니다. 예수님은 왜 먼저 믿음의 그릇을 크게 키워주실려고 하시는가요? 믿음의 그릇이 잘 준비되지 않은 채 축복을 주시면 오히려 그 축복을 축복으로 누리며 유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연약 함입니다.
지난 7월(19일),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시각장애인이 KBS 방송국의 뉴스 앵커맨으로 합격했습니다. 523:1의 경쟁이었습니다. 26 살의 이창훈씨입니다. 태어난지 7 개월 만에 뇌수막염으로 완전히 앞을 못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굿이라는 굿은 다 하고 좋다는 절마다 가서 불공을 드렸습니다. 딸 셋 후에 낳은 아들이 시각장애인으로 일생을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아픔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눈이 떠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하루는 유명하다는 도사를 찾아갔습니다. 그 도사의 말입니다,“이번에도 차도가 없으면 교회에 나가세요!” 아주 뜻 밖의 말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평생 처음 나간 교회였습니다. 아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간절함과 열심의 헌신이 불타올라 새벽 기도회 때 마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처음엔 아이의 시력을 회복시켜달라고 울며 불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점 점 저의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아들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불신자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그렇게 기도하는 어머니의 믿음을 성령님이 점 점 크고 강하게 키워주셨습니다.“아들아, 너는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란다, 하나님 아버지가 반드시 너를 도와주신다. 그리고 너의 일생을 귀하고 존귀하게 쓰실 것이다”이 어머니의 믿음이 어린 아들의 마음과 삶을 붙잡아 모든 어려움들을 이기고도 남게 했습니다. 이창훈씨의 간증입니다,“내가 앞을 볼 수 없었기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예수님이 나의 주인과 왕으로 다스리며 인도해주시도록 모든 것을 맡겨드리는 믿음을 얻게되었어요. 이제는 보이지 않는 지금이 더욱 감사한 축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