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히 쓰는 그릇
                           디모데후서 2 14-21
저가 미국에 유학 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어느 한국 분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초대한 분의 친지들도 서너 가정이 함께 모였습니다. 분들, 특별히 부인네들이 나누는 말들을 엿듣게 되었습.  부인네들의 대화 중에 레녹스 차이나라는 말이 자주 내렸습니다.  차이나 분명히 중국인데 그러면 레녹스 무엇인가, 중국제 물품인가 하고 의아해 했었습니다. 때는 요즈 음과는 아주 달리 중국 상품이 거의 미국 시장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것은 차이나 중국이 아니라 가정에 고이 비치 해두는 접시나 그릇들이었습니다.  레녹스라는 이름의 가정 즙기, 그릇들에 관한 대화였습니다.

 오늘의 하나님 말씀은 그릇들에 대한 것입니다.
집에는 금과 그릇이 있을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딤후2:20a)   집입니다.  식구들도 많고 손님도 많은 집입니다. 그러기에 집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들이 있습니다그런데 그릇들이 같이 귀하게 쓰여지지는 않습니다, “귀히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딤후 2:20b)  그릇은 장식품 이나 사치품은 아닙니다.  음식을 담는  쓰임받는 것이 목적입니. 그러기에 그릇의 그릇됨은 어떻게 쓰임받는 가입니다. “귀히 받는 입니다. “귀히 쓰는 그릇입니다.

  교회입니다. 그릇들은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입니다.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 모두가 귀히 쓰임받는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 오늘 여기 오신 분은 귀히 쓰는 그릇으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행복자의 앞날 되기를 절히 바랍니다.

 먼저 깨달아 알아 감사할 것은 주인이 필요하기에 그릇을 둔다는 입니다.  주인의 뜻과 목적 때문에 그릇이 집에 있게된 것입니다“…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21절 입니다. 그릇이 스스로 나는 만큼 생겼고 이만큼 질이 좋으니 주인의 집에 가겠습니다, 그렇 해서 주인의 그릇이 것이 아닙니다그릇이 스스로 쓰임받기 충분하고 합당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인의 뜻과 목적 따라 부름받은 것입니다. 그릇을 소유한 주인의 뜻과 목적이 다는 것입니다. 그릇의 의미와 가치는 주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주인에 의하여 쓰임받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릇은 자신의 전부를 주인에게 맡길 뿐입니다.

 오늘의 성경인 디모데 후서를 기록한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크리스찬을 박해하고 교회를 없앨려는 심에 넘쳐났습니다.  교회를 괴롭힐려는 목적으로 다메섹이라는 으로 가고있었습니다. 갑자기 태양빛 보다 밝은 빛이 비추이었습 니다.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 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누구이신가요?” 하고 묻는 질문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무엇을 것인가를 가르쳐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눈이 보이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리어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아나니아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서 사울을 만나라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울은 이름을 모든 사람에게 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   택한 나의 그릇입니다. 예수님이 사울을 구원하신 것은 예수님의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습니 . 말씀대로 사울은 바울이 되어 일생동안 예수님의 복음을 나라,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먼저 택해서 그릇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두신 뜻과 목적을 이루 위해서 택하신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이 주인으로서 바울을 택하 쓰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것이 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하려 함이니라.”(고후4:7)  그릇 같습니다. 질그릇은 별로 자랑하거나 내세울 만한 것이없 런지 모릅니다. 그리고 깨어집니다. 그런데 질그릇에 보배 담겼습니다. 그러기에 귀합니다. 보배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소망입니다. 질그릇이 자기 안에 담긴 생명과 기쁨과 소망을 증거해 보이기에 귀한 것입니.  바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도 예수님이 택하신 그릇입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받게하려 함이니라.” (15:16)

  집에 있는 그릇은 어떤 종류인가 보다는 어떤 상태인가가 요합니다. 귀히 쓰이거나 천히 쓰이는 기준이 있습니다. 기준이 무엇인가요?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졌기에 귀한가요? 나무나 진흙 으로 만들어졌기에 천한가요?  그릇의 가치는 주인이 얼마나 자주 요긴하게 사용하는가가 결정합니다. 그릇이 아무리 이나 은으로 만들어졌다고 할지라도 거의 쓰임받지 않은 집의 진열장에 보관만 되어있다면 그릇 본래의 가치와 의미는 없습니다. 비록 나무나 진흙으로 만들어졌을지라도 주인이 항상 즐겨 사용한 다면 그릇은 그릇됨의 기쁨이나 보람이 아주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은 그릇이 귀하냐, 귀하지 않느냐 기준을 가지라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자기를 깨끗하게하면니다.  물론 그릇은 스스로 자기를 깨끗하게 없습니다. 생물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집인 교회의 그릇인 성도들은 자기를 깨끗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릇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가가 귀히 쓰이는 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릇의 상태가 깨끗한 것이 귀히 쓰이는 비결입니다. 아무리 금과 그릇이라고 할지라도 만약에 깨끗하지 아니하면 식을 담을 없는 것입니다. 나무나 그릇일지라도 깨끗하면 인이 음식을 담는데 귀히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그릇들인 우리가 귀히 쓰임받을 있도록 깨끗하게 준비되는 길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피입니다.
“…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7)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사람도 예외 없이 더럽혀졌습니다. 외모가 아닙니다. 사람, 마음과 양심과 인격입니다. 죄가 더럽힌 것입니다. 죄는 더럽히는 세력입니다. 죄가 들어와서 죄의 세력에 넘어가면 멀쩡하던 사람이 달라집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 무엇이 유익이되고 손해가 되는지, 무엇이 아름답고 추한지, 분별이나 분간이나 구별이나 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마지막은 파멸입니다. 성경은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죄의 세력이 아무리 검고 크고 힘이 세고 더러울지라도, 어떠한 죄일지라도 예수님의 피는 께끗하게 씻어 가장 희게 만들어줍니다. “모든 입니다. 어떤 죄일지라도 예수님의 피의 능력과 공로로 용서함되었다, 그렇게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면 깨끗해지 것입니다.  “…영원한 성령으로 말미 암아 없는 자기를 하나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뇨?”(9:14)  없는 그리스도의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언제, 어디서나, 무슨 죄일지라도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우리의 감정이나 마음이나 생각, 인격이 깨끗해진 그릇으로 하나님을 섬기게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깨끗한 그릇되는 길은 말씀입니다.
성경은 자체가 능력입니다. 우리를 깨끗케하여주는 하나님의 력입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15:3) 예수님의 말씀인 성경을 듣고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마음과 인격은 성경이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더러워진 몸이나 옷은 비누나 디터젼트로 씻어야 깨끗해집니다. 옛날  한국 어머니나 아주머니, 누나들은 빨래거리를 시냇가나 물가에서 방망이로 두드리고 물에 헹구어 씻었습니다. 참으로 힘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떠한가요? 세탁기에 넣습니다, 비누를 붓고 기계를 돌리기만하면 됩니다. 특별히 흰색갈의 옷은 희게해주는 화학물질을 넣습니다. 깨끗이 세탁이 됩니다그런데 우리의 마음이나 양심이나 인격은 어떻게 깨끗케 있나? 성경 말씀입니다.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끗이 제하소서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내가 정하리이다.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51:2,7)  어떻게 하면 다윗이 간구하는 것처럼 깨끗하고 정결하고 눈보다 희어질 있는가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나이다.” (17:17)  아버지의 말씀, 성경이 깨끗하게 합니다.“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5:26)  성경 말씀 우리를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어주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마음에 간직함으로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깨끗한 그릇되는 길은 시련과 연단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아낌없이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성도님으로 하여금 때로 시련이나 연단을 통과하게 하시는가요?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고난은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불순물과 잡것들을 없애는 과정입니다. 마치 광석이 용광로를 거쳐 후에 강철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용광로를 통과하기 전에는 광석덩이에 온갖 잡것들이 섞여있습니다. 그러면 귀한 쇠붙이나 철로 결코 쓰임받지 못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어떤 유익인가요? 고난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되어 주인이신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는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달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23:10)  정금입니다. 깨끗한 그릇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이나 연단이나 고난이 감사하십시다. 하나님께 귀히 쓰실려고 허락하시는구나, 그렇게 믿으며 감사하십시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하심이라.”(벧전 1:7)  칭찬과 영광과 존귀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 전부입니다. 시련을 거쳐가서 깨끗한 그릇되었기에 하나님 앞에 쓰임받습니다. 결과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칭찬과 영광과 귀입니다.

 한국 정부의 국무총리로 내정 정운찬 교수의 간증입니다. 분은 서울 잠실동 남포 교회의 안수집사입니다. 충남 공주 근처의 아주 가난하 농촌 태생입니다.  일찍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 가난을 떨쳐버릴 없어 때는 학업을 포기할려고도 했습니다. 그런 중학교 카나다에서 스코필드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교사의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할 있었습니다. 삶에서 배워야 것의 대부분을 나는 스코필드 할아버지에게 웠다제가 갖고 있는 모든 것과 사람 됨됨이는 스코필드 할아버지 만들어 주셨다  스코필드 선교사는 한국을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묘가 국립 현충원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하신 가장 일은 영혼에게 영적 믿음의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귀히 쓰인 그릇이었기에 귀히 쓰이는 그릇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선교사가 안되어도 귀히 쓰이는 그릇으로 일생을 있습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귀히 쓰이는 그릇의 앞날로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