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의 은혜 / 고린도전서 15 1-10 

지난 2천 여 년 동안 사람, 곧 인류에게 가장 좋고 크게 영향을 끼친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 성경의 거의 반을 바울이 기록했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13 권의 성경 책들은 신약 성경 전체 분량의 분의 1 입니다. 바울을 싣고 간 배는 곧 세계 역사를 실었다는 결론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런 바울의 고백입니다,“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바울은 자신이모든 사람 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증거합니다. 그런데 그 수고는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내가 한 것은 결코 아니다,“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웨치고 있습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인 고린도전서에서 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성경 13 권의 시작과 끝에 공통되는 한 마디 말을 잊지 않고 기록했습니다,“은혜입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1 5 절입니다,“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 곧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로마서 16  20 절입니다,“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그가 기록한 성경을 읽는 로마의 교인들, 그리고 오고 오는 세월, 그의 서신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전부, 그의 의식과 무의식, 인격, 곧 전 존재를 이끌어간 한 마디 말이 있습니다,“은혜입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지금까지는 물론 앞날의 내 일생 전부, 나의 인격 전체를은혜가 이끌었다,“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가요?  그 사람은 은혜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가정은 은혜의 가정이었다, 그 교회는 과연 은혜로 충만해서 은혜가 흘러나가서 이웃을 은혜의 강물로 적셨다, 그렇게 기억되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 람에게 베푸시는 호의, the unmerited favor of God toward humanity”입니다. “공로”(Merit)와 정 반대입니다. 한 일에 대한 댓가를 받는 것은 공로입니다. 공로는 일을 했기 때문에 일한 것에 대한 응당의 댓가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는 정 반대입니다. 댓가를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댓가를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댓가나 호의와 아주 정 반대되는 것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은혜입니다.

악심을 품은 채 기를 쓰고 자신을 죽일려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번 두 번이 아닙니다. 여러 번입니다. 더우기 왕입니다. 왕국에서 왕이 모든 수단 방법을 다 사용하여 자신을 죽일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외국으로 도망을 쳐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왕이 죽고 자신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입니다. 국력이 아주 센 왕국의 왕으로 보좌에 앉았습니다. 한국의 역사 드라마에서라면 다윗 왕은 자신을 죽일려던 그 왕 사울의 모든 자손을 씨를 말리듯이 없애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하에게 묻습니다,“나를 죽일려든 사울 왕의 자손 중에 살아남은 자가 있느냐?”“절뚝발이 손자 하나가 저 먼 시골 구석에 쳐박혀있나이다”, 신하의 대답을 듣자 마자얼른 데리고 오라고 다윗 왕이 명령했습니다.“므비보셋이여,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므비보셋의 대답입니다,“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삼사 9:1-8) 마땅히 죽어야 할 자신에게왕의 상에서 먹는”, 곧 왕족의 취급을 베푸는 다윗입니다. 도저히 받을 자격이 없는 데 다윗 왕이 자기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 준다는 것입니다. 은혜입니다.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이 증거하는 이 은혜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축복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고전15:1)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해주었던 복음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행  18: 5), 두 번째 전도 여행 중에 바울이 고린도에 왔었습니다. 먼저 동족 유대 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들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거부하고 반대하며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18:8)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리스보라는 회당의 책임자를 비롯하여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무엇이 은혜인가요? 복음입니다.“예수가 그리스도다”, 예수님 만이 유일한 구세주라고 증거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오늘의 성경 고린도 전서 15 3-6 절이 증거하는 대로 예수님이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생이니라”(3: 10,23, 6:23) 예수님이 나의 죄 값인 죽음을 내 대신 십자가 위에서 죽어주셨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피 값으로 나의 모든 죄가 용서함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고전15:3) 바울이 먼저 받았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먼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만난 예수님, 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인 복음을 들었을 때 믿었습니다.“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 영생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내 죄 사함받고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1960 년 대, 저가 많이 부른 찬송가였습니다. 대학교 2 학년 때 저가 <4 영리>를 통하여 복음을 처음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에 엄청나고 좋은 계획을 두고계시는 데 나의 죄가 하나님과 나를 끊어놓았기에 그 계획을 전혀 모른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죄를 용서받는 길을 열어놓으셨는데, 곧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다,  그 예수님을 나의 마음의 왕좌 위에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것이 곧 죄 용서함 받음으로 얻는  구원이다. 그 구원이 은혜인 이유는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믿은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은혜입니다, 놀랍 고 큰 은헤입니다, 그 은혜는 우리 하나님은 구원하여주신 자녀를 변화, 성숙, 성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시련이나 연단이나 고난이나 실패를 사용하셔서 그 자녀의 마음과 인격과 삶이 성화되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자로라”(고전15:8-9)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칼빈은 이 말씀을바울의 회심이 갑작스럽고 강력한 것임을 뜻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의 앞뒤를 연결할 때 이 말씀의 뜻은 유산된자와 같은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유산된 생명, 부모에게는 한 없는 아픔이지만 더 이상 가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기 이전 바울 자신의 모습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지극히 작은 자입니다.“작다, micros”라는 말의 최상급입니다. 가장 작다는 뜻입니다.“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나에게라고도 자신을 증거합니다.(3:8) 또 바울은 자신이죄인 중의 괴수”(딤전1:15)임을 고백합니다. 바울은 사실 인간적으로는 조금도 꺼리낄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으로 말하면 명문가의 아이비리그 출신 변호사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적인 뛰어남이나 좋은 것이 그대로는 복음을 전하기에는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을 사용하셔서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심으로 복음이 들려지고 믿어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러기에 그 모든 것을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사랑하는 성도님들, 무엇이 진정한 성숙이고 성화인가요? 복음이, 예수님이 제일 귀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와 부활의 소망이 제일 좋고 크고 값있고 영원함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화되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해주신 자녀가 복음, 곧 예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복종하여 순종하도록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시련이나 연단이나 고난을 통해서 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후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을 거쳐갔었습니다. 먼저 신약의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로 부터 왕따를 당했습니다. 성도를 핍박하고 교회를 진멸시킬려든 사람을 결코 같은 사도의 반열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에 와서 전도를 하기 전 요즈음의 터키 지방인 비시디아 안디옥이나 루스드라에서핍박을 받고 ”(13:50)“돌로 쳐서 죽은 줄알기까지(14:19) 고난을 당했습니다. 헬라 도시 빌립보에서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 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은혜를 끼치다가 붙잡혀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많이 침”(16:22-23)을 당한 후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베푸시는 가장 좋은 은혜는 때로 시련이나 연단이나 고난을 통해서 허락하시는 영적인 성숙, 곧 성화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자녀삼아주신 목적은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심”(8:29)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사실 성경이 보여주는 믿음의 선배들 중에 시련이나 연단이나 고난을 거쳐가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없습니다.“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 하나님이 단련을 허락시는 이유는정금같이 나오게하시기 위함입니다. “정금입니다. 미국에는  요즈음 금을 살려고 보석상 마다금 삽니다는 안내판을 크게 붙여놓고 있습니다. 앞날이 그렇게 밝게 보이지 않는 경제 형편이기에 사람들은 금을 더욱 많이 가질려고 합니다. 변하지 않는 값어치가 금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금입니다,“Amplified”영어 성경은정금“pure, luminous, and refined Gold”라고 번역했습니다. 아주 잘 정제된 빛나는 순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런 순금도 귀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영광스럽게 아름답고 귀한 것은 예수 님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나타내어지는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영적 성숙과 성화입니다. 우리 속에 그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을 더욱 튼튼하게 뿌리내 리게 하시고져 하나님은 시련이나 연단이나 고난을 허락하십니다.“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고난이 유익합니다, 왜 그런가요?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입니다, 이 고난이 반드시 좋고 아름답고 귀한 유익을 가져올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선으로 바꾸어주십니다.“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 보다 승하니이다”(119:72) “천천 금은”, 곧 이 세상의  사람들이 그렇게도 갖기를 원하는 명품이나 명예나 돈이나 쾌락,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주의 율례, 주의 입의 법”, 성경 말씀,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제일 귀하다는 고백입니다성령님은 그런 고백과 삶을 주장하셔서 참된 영적 성숙과 성화를 이루어주십니다.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성자 프란체스코의 제자들이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스승님은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가요?”프란체스코의 대답입니다,“내가 무슨 성자야.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은혜들을 저 도둑이나 강패나 살인 강도에게 주셨다면 그들이 나보다 훨씬 더 휼륭한 성자가 되었을 것이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오직 하나 님의 은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겸손과 인내의 능력입니다. 겸손과 인내가 은혜입니다. “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모든 사도입니다. 예수님의 12 사도들이나 바나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수고했다는 바울의 주장입니다. 고린도후서 11 장에 바울은 그 수고들을 열거해 놓았 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하고…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 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에 맞고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 벗었노라”, 23-28 절은  무려 24 가지의 수고라고 증거합니다. 만약 그 수고들 가운데 한 가지라도 당했다면 우리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초등학생들이 받은 상을 자랑하듯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원해서 직접, 간접으로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이 주시는 인내와 소망과 기쁨과 힘으로 감당해 낸 것이다, 내 속에 사시는 예수님의 그 권능의 손이 붙들어주셨기에 감당해 낸 것이다, 바울의 증거입니다. 참된 겸손과 인내의 능력입니다.

20세기 초기 중국에서 복음 증거에 크게 쓰임받은 위치만 니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니 목사님이 20 대에 중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중국의 내륙 지방에서이기에 의술로는 처방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중에 하나님이 보여주신 장면이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난 데 없이 큰 바위에 부딪쳤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가 요지부동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바위를 치워주랴,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하랴”  물어 불어 나서 배가 그 위로 지나가게 해달라는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져서 양자강을 올라가게되었습니다.

성도님이 가는 앞길에 바위 같은 장애물, 어려움, 답답한 일, 아픔, 그 어떤 것일지라도, 구하고 행각하는 것에 능히 넘치도록 응답하여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면 그 모든 것을 넘어가고 이겨내기에 충분한 은혜의 강수를 넘치도록 허락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하나님의 때 하나님이 높여주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겸손함이 은혜입니다. 그 하나님의 가 언제인가요? 이 현세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국 갈때까지, 끝까지 겸손하는 것입니다. 참된 은혜입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5:11) 주님이 주시는 결말이 반드시 있기에 그 결말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겸손으로 인내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12:2)

참기 힘들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형편이나 처지는 아닌가요? 바울에게 겸손과 인내의 능력을 주셔서 승리하게 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겸손과 인내의 능력을 반드시 허락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을 승리하게 한 그 은혜를 구합시다, 믿음으로 구합시다, 의심치 말고 구합시다,“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바울을 바울 되게 한오직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로 성도님들을 승리하도록 붙들어주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사람으로, 은혜의 가정으로, 은혜의 교회로, 은혜의 민족과 국가로 전진해가도록 성령께서 더욱 충만히 임하여 주장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