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이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요한계시록 2 1-7

오늘은 우리 교회의 생일이면서 또한 9.11  10 주년이 되는 날입니다오바마 대통령이 오늘을  <국가 추모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9.11 으로 희생된 분들의 가족들을 위로의 하나님이 위로해주시도록 위해서 기도합니다어떤 분은 세계사가 2001  9  11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단정했습니다좀 지나친 주장 같습니다만 9.11 이 끼친 영향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9.11 과 같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미국과 자유 우방들이 최선을 다해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9.11 사건이 주는 한 교훈이 있습니다. 이 현세에는 다른 사람의 참된 행복과 자유와 번영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악한 세력이 잠시 이기는 것 같으나 참된 승리는 자유와 정의와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역사를 통해 예수님의 교회를 위협하고 파괴할려는 세력들이 있어왔습니다. 지금도 이 현세에는 그런 악한 세력이 있습니다그런데 이 땅위에 예수님이 허락해주신 교회는 그 어떤 방해 세력에 의해서도 결코 무너져 내리지 않습니다.“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 하리라”(16:18)고 선언하신 예수님이 교회를 지키시고 돌보시기 때문입니다무엇이 교회인가요참된 교회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예수님을 왕과 주인으로 경배하고 의지하고 사랑하고 증거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그 참된 성도들의 마음과 영혼속에 이미 시작된 예수님의 나라가 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결코 그 어떤 세력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 큰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우리 교회를 오늘 이 시간까지 인도 축복하신 주님입니다. 앞날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말씀대로 우리 교회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기준이나 판단대로 평가되어서는 안됩니다. 겉으로 사람이 보기에 어떠할지라도 교회를 이루는 성도 한 분 한 분이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기고 따르는가, 그 믿음과 헌신의 정도가 교회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성경은 이 현세의 교회가 과연 어떤 교회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져 교회들을 소개합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3 장은 7 교회들을 보여줍니다. 그 교회들은 주후 100 여 년 경 터어키 지방에 있었던 교회들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그 때 있었던 7 교회들을 사용하셔서 현세에 있을 모든 교회들이 어떤 교회가 되어야하는가를 실물 교훈으로 가르쳐줍니다. 에베소라는 도시에 있었던 교회를 통해서 성령님이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칭찬입니다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 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2,3) 에베소 교회는 바울 사도가 제 3차 선교 여행 때 세웠습니다. 2 3 개월 동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 이름하는 부부 평신도 일꾼과 함께 기도하며 힘을 다하여 복음을 증거함으로 세웠습니다. 그 후 디모데와 사도 요한이 에베소 교회를 목사님으로 섬겼습니다.  그런 좋은 전통 위에 세워지고 발전해왔었기에  모범되는 면들이 있었습니다.

행위와 수고와 인내입니다.“행위의 내용은 두 가지,“수고와 인 내입니다. 수고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열심히 일하며 섬겼습니다. 교회는 수고하는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해야하는 일들인 예배를 드리고, 전도하고 구제하고 친교하고 또 교육하는 것은 곧 수고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수고해야 교회가 그런 일들을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대 부분의 성도님들, 특별히 제직들은 아름답게, 헌신적으로 수고를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 수고를 받으시고 크게 기뻐하시며 상급으로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수고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모든 수고의 목적이기에  수고하면서 할 수 있는대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수고하 면서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사실 수고하는 것은 귀합니다. 그러나 수고하면서, 수고하기에 불평하고 짜증내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수고가 그만 허사로 끝나게 됩니다. 인내입니다. 궁극적으로 주님을 위한 수고이기에 주님의 칭찬과 상급만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인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온유와 인내의 주님이시기에 구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인내하는 힘과 은혜를 반드시 주십니다.

교리적으로 바른 믿음을 가졌습니다. 곧 정통 교리를 지켰습니다. 교리는 성경이 가르쳐주는 믿음의 내용입니다. 무엇을 믿는가 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 사도가 가르쳐주는 대로 바로 믿었습니다.“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2:2) 악한 자6절의 니골라 당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과연 무엇을 믿는 가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 다니기에 잘못된 교리나 가르침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니골라 당은 그 당시 에베소에 있었던 다이아나라는 잘못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잘못된 가르침에 넘어가지 않고 바른 교리를 따라 믿음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참 중요합니다이 세상에는 많은 교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파들은 강조점들의 차이로 인해 다른 교리를 따릅니다. 그러나 아주 잘못된 가르침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리를 잘 아는 신학자나 교단이나 교회협의회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경계하도록 경고합니다예를 들면 요즈음 한국에 이만신이라는 교주를 따르는신천지가 있습니다. 기성 교회를 교묘히 파고들어 흔들어놓습니다. 그들의 믿는 바의 결론은 이만신이 구원의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듣고 배워서 고백한 교리에 대하여 감사하십시다. 성경의 내용을 가장 바르고 건전하게 고백하는 교리입니다. 얼마 전까지 여러 번 사도신경의 내용들을 들으셨습니다. 사도신경의 내용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특별히 한 번 구원받았으면 그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다는 장로교의 기본되는 가르침을 그대로 믿으시는 줄로 압니다. 오직 은혜로 예수님을 믿는 오직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을 받았기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가장 잘 아시는 성령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 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2:4) 수고와 인내의 행위가 있었습니다. 바른 교리를 믿음으로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책망의 이유는 처음 사랑을 버렸기때문입니다.“너희가 버렸노라, 처음 사랑을!”, 4절을 그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버렸다고 성령님이 꾸중하시는가요? “처음 사랑입니다.“아가페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계시록을 기록하기 약 35-40 여 년 전에 바울이 에베소서라는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성경 말씀입니다. 그 에베소서의 가장 두드러진 말이사랑이었습니다.“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7-19)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지식은 세상적인 지식이 아닙니다바르고 좋은 믿음을 갖게하는 성경의 지식입니다. 건전한 교리입니다. 무엇을 믿는가를 확실하게 아는 지식입니다. 그런데 그 교리를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실 성경의 가르침을 아는 것은 지식을 더 많이 쌓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죄인되었을 때 죄인이기에 응당 나의 죄 값을 내가 담당해야하는 데 하나님은 나의 죄 값을 예수님이 담당하게 하신 것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귀한 피를 다 흘려 죽으시기까지 나의 죄를 대신 감당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죽어가는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무엇인가요? 가능하다면 죽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 천하와 바꿀 수 없이 귀한 것이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하여 그 죄의 값인 죽음을 내가 죽어야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죽어야할 그 죽음을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85 에베소 교회 교인들은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을 듣고 그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 체험했습니다. 감격하고 감사하며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그렇게 고백하며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나 감사가 식어져갔었습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인내하며 일했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중요합니까? 그러는 중에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그만 가슴 속에서 부터 사랑이 식어져갔습니다.

 첫 사랑을 버렸느니라”,  성령님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아닌가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하게 하라, 성령님에게 간구하여 그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라, 사랑이 제일이니라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 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도와달라 고 성령님에게 간구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게 구하면 성령님은 구하는 가슴 속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가슴 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부어질 때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게 됩니다.

지난 7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재미한국학교협의회가청소년 한글 경연대회를 열었습니다. 미국, 캐나다, 남미의 지역 예선에서 뽑혀온 300 여명의 한인 젊은이들이 참가했습니다. 명의 최종 결선에서 2 등으로 뽑힌 고등학생입니다, 그 학생은 메인주에서 참가한 엘리사 도노반이라는 미국 백인 여학생이었습니다.“나의 꿈 말하기에서 한인 2세가 아닌 미국 여학생이 그렇게 한국 말을 잘하게 된 이유가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한민아라는 한국 이름을 본인이 직접지었다는 그 여학생이 중학교 2 학년 때 한국계 미국인 남자 친구를 짝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하는 데 대화가 중요해서 한글을 스스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가르쳐주거나 누구한테서 배운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배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 친구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사랑을 고백을 하지는 못하고 끝났습니다. 그 여학생의 말입니다,“한글을 공부할 수록 한국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게 되었어요. 사실 한글을 처음 배우며 첫 사랑에 빠졌는 데 그 때 정말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어요 

사춘기의 한 여학생이 얼굴이나 문화가 다른 한 남학생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의 힘이 참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몇 십년을 씨름을 해도 우리는 아직도 영어가 서툽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오직 사랑하기에 그 사랑을 나타내고져 한글을 배워 휼륭하게 말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힘입니다.

우리는 그 여학생의 사춘기적 사랑과는 비교가 안되는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합시다, 그 사랑이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다스리게  하십시다. 그 사랑이 우리의 말을 통해, 행동을 통해, 우리의 삶 을 통해 흘러 넘쳐나게 합시다. 예수님의 사랑이 충만하기에 우리 교회를 통해서 흘러 넘쳐나서 이 세상의 사람들 마음속에 흘러 들어 가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더욱 풍성하고 강하고 구체적으로 체험되고 증거되는 우리 교회의 앞날로 성령님이 인도해주시기를 간절 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