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요한계시록 2 장 8-11절
미국 이민자로 우리가 거쳐갔던 어려움들이 컸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모님이 이겨내야했던 어려움들은 우리들이 경험했던 어려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컸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믿음과 기도로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의 기회들로 누리고 살아온 일생이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계2:9) 이 말씀은 서기 100 여 년, 지금의 터키 지방에 있었던 일곱 교회 중 두 번째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서머나>라 이름하는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에는“환난과 궁핍”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서머나는 향료 수출지로 유명했습니다. 수출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으로 부요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과학과 의술이 발달한 도시였습니다. 경제적으로 잘 살고 학문과 의학이 발달한 인구 20-30만의 대도시였는 데 그 서머나 교회에“환난과 궁핍”이 있었습니다.
“환난”은 그 원래의 뜻이“짖이겨 뭉갠다, 눌러서 짠다”입니다. 극심한 고난이나 고통입니다. “궁핍”은, 극빈, 곧 절대 빈곤입니다.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팔복 중 첫 번째인“심령이 가난한 자”의 그“가난하다” 와 같은 뜻입니다. 경제적으로 잘 살고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고 건강을 위한 의 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서머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으 로 말하면 중상류층 이상이 사는 도시였습니다. 그런 곳의 서머나 교회인데 “환난과 궁핍”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당한“환난과 궁핍”이었습니다. 그 때 지중해 연안의 대부분의 나라를 지배했던 로마 제국이 여러 나라들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게 했습니다. 한국을 36 년 간 식민통치했던 일본이 일본 왕을 천황이라고 신격화해서 숭배하게 한 것과 같습니다.“시저 황제가 하나님, 주이다!”는 고백을 하게했습니다. 서머나는 그런 로마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로마 황제 숭배를 단연히 거부했습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믿음에는 댓가가 따랐습니다. 직장을 잃어버리게 되고 재산을 빼앗기고 가족이 살던 집을 버리고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거쳐간 “환난과 궁핍”은 예수님 만이 구세주고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타협하지 않고 지켰기에 당한 고난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도님들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고 그 믿음을 실천할려고 하기에 어려움이나 힘든 일이 있는가요? “환난과 궁핍”이 있었는가요? 현재 있는가요? 회교 나라들과 중국, 그리고 이북이 아닌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환난이나 궁핍”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특별히 미국에서 믿음 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 저와 성도님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환난이나 궁핍”을 거쳐 가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감사하십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어놓으신 이 곳 미국에서 꽃이 피도록 더욱 감사합시다. 감사의 꽃을 피우십시다. 감사할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참으로 많습니다. 특별히 감사할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진 이 믿음이 너무 귀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 처럼 “환난과 궁핍”을 이겨내고, 피를 흘려 순교하면서 까지 지켜서 물려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오늘 이 곳에 심어놓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감사의 꽃을 피우시기 위함입니다. 믿음으로 피우는 감사의 꽃은 대를 이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환난과 궁핍”을 이겨내었습니다. 믿음으로 이겨내었습니다. 귀한 믿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장 잘 아시는 주님이신데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그 믿음을 아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다른 교회들 처럼 꾸중을 듣지 않았습니다. 칭찬만 들었습니다.
서머나 교인들이 주님의 칭찬 만을 받았던 비결은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확실한 믿음이었습니다. “내가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부요한 자니라.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계2:9) 믿음은 무엇인가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고백입 니다. 아시는 주님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이 무한하십니다. 그 러기에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형편에서든지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아시는 주님은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십니다. 그러기에 나를 공격해오는 염려꺼리나 걱정이나 문제꺼리가 아무리 클지라도 다 물리쳐주십니다, 이겨내어 승리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제이 하드필드라는 영국의 심리학자가 <자신감>에 대하여 연구한 것을 발표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넌 틀렸어. 이젠 끝났어”라고 말하면 자기 능력의 30%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넌 할 수 있어. 넌 특별한 사람이야!”라고 자신에게 말하면 실제 능력의 150% 까지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성도님을 누구라고 말하는가요?“…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신33:29) 성도님은 과연“나는 행복자”라고 믿으시는가요? 왜 행복자인가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행복자입니다. 참 신(神)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구원하여주셨기에 그 하나님이“너를 돕는 방패시라”,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행복자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나를 돕는 방패시이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섬기고 드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칭찬받는 참된 믿음은 죽도록 충성을 다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바치는 충성을 주님은 받으시고 반드시 상급을 주심을 확신 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면류관”은“스테파노스”인데 운동 경기에서 최후의 승자에게 주는 관입니다. 요즈음은 대부분의 운동에서 이겼다고 관을 씌워주지는 않습니다. 반지나 돈, 특별히 트로피를 줍니다. 얼마 전에 올해 마지막 메이져 테니스 대회인 US OPEN이 뉴욕시의 플라싱 메도우에서 열렸습니다. 두 주 동안에 무려 일곱 번 시합을 해서 이겨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시합이 한 두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선수들과 싸워 이겨야하는 시합입니다. 그러기에 챔피언이 되면 트로피를 받아들고 그 트로피에 입을 맞춥니다. 그 선수에게는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간 입니다. 로마 제국이 서머나를 다스리는 그 지역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로마 시민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요즈음도 그렇지만 그 때도 사람들은 운동을 즐겼습니다. 로마의 운동 경기 최후 승자 에게는, 스테파노스, 승리의 월계관을 씌워주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영원한 면류관입니다.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현세의 상이 아닙니다. 영원히 영광스러운 천국에서의 승리의 관, 트로피입니다. 누구에게 그런 면류관이 주어지는가요? “죽도록 충성한”믿음입니다.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변함없이, 첫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증거하며 주님의 기쁨되게 달려간 믿음입니다.
칭찬받는 믿음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영원한 축복의 약속이고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자니라” (계2:9) 모든 것의 주인이고 소유주이신 예수님이“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다”고 말씀하시면 진짜로 부요한 자입니다. 세상적인 판단이나 기준으로 볼 때“환난과 궁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을 아시기에 “환난”을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는 축복으로 바꾸어주십니다.
그리고 “궁핍”을 주님이 풍성한 복을 내려주시는
기회로 삼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이 시간 주님이 성도님 한 분
한 분 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실상은 네가 부요한자니라” 실상은 네가
건강한 자니라, 실상은 네가 행복한 자니라, 실상은 네가 승리한 자니라,
실상은 네가 충성을 다하는 자니라…주님이 이 말씀대로 이루시고 축복해주심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트루디 김 사모님 책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2006 년에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암에 걸렸습니다. 미국의 딸 집에서 일 년 이상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암의 치료과정에서 마음 깊이 주님의 음성을 새롭고 분명하게 들었다고 이렇게 간증합니다:“만약 너에게 이런 고통이 없었다면 나와 이렇게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작은 일에도 감사할 마음이 들었겠느냐. 네가 지금 보다 온유해질 수 있겠느냐. 너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주었다. 네가 아파할 때 나 역시 십자가를 지며 걸었고, 네가 고통 속에서 울 때 나도 함께 눈물 흘렸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을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신 주님이, 트루디 사모님을 한국에서 승리하게 하신 그 주님이 성도님들의 앞날에도 감사와 온유와 사랑의 꽃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여주시 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