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눈물
                             
창세기 50 15-21

 지난 목요일(5), 텍사스 주의  Fort Hood라는 제일 미군 기지에서 최악의 총기 난사가 일어났습니다. 13명이 죽고 30여명이 상을 입었습니다. 이락이나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미국 본토에서 어난 참사입니다. 적군이 아닌 미군이 미군들과 시민을 죽였습니다. 사건이 충격을 주는 것은 군인들을 총으로 죽인 사람이 군인인데 사병이 아닙니다. 계급이 소령인 장교입니다. Nidal Malik Hasan이라는 39살의 정신과 군의관입니다. 그는 미국에서 어났습니다. 부모가 예루살렘 근처의 팔레스타인 읍에서 미국으로 이민와 버지니아에서 출생한 아랍계 군인입니다. 미국이 대학교와 의과 대학을 보내주어서 군의관이 되었습니다. 육군 소령이면 중급 장교입니다. 그런 그가 동료 군인들을 무참히 총으로 쏘아 였는가입니다. “ 갑자기 이락 전투 현장에 배치를 명령받은 부터 신변에 관한 불안감에 빠져 극도의 신경질과 분노를 나타냈다”, 금까지 밝혀진 이유입니다. 신경질, 분노 , 스트레스를 이긴 것입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것입니다.  정신과 군의관이니까  그런 감정의 문제가 있는 군인들을 치료해주어야하 자신이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지배를 받아 도리어 참사를 저지른 것입니다. 정을 다스시고 가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는 일입 니다.

사람에게는 감정이 있습니다. 감정은 인격의 요소입니다. 감정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실 주신 것입니 . 그러기에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감정이 있다는 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어떻게 스리고 표현하는 가입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자신에게와 웃에게 해가 됩니다.
예를 들면
화를 안내야할 화를 내면 좋습니다. 울지 않아 우는 것은 유치하기까지도 합니다. 어린 아이의 성장하지 못한 증거는 울음입니다.  울면 마음대로 하고 내가 하는 것을 얻게 된다고 생각하여 우는 것입니다. 화나 울음 같은 감정을  스릴 자신에게나 이웃에게 유익이 됩니다.

감정은 상하기 쉽습니다. 감정에 상처가 나면 힘든 점이 많습니다. 생각이나 판단을 바르게 하기 힘듭니다. 어려운 세상 살기에 닥치는 작고 일을 바르게 보고 옳게 판단하지 못하게 됩니다.  상한 감정 때문에 어려움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기 다른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 니다. 우리는 부족한 사람이기에 뜻하지 않고 원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에 상처를 줍니다. 마디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의 감정에 상처를 나게 때도 있습니다. 특별히 가까운 관계에서 입니다. 사실 가깝지 않은 관계라면 감정에 크게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상한 감정은 빠르게 고침받는 것이 행복을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사실 우리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고 꺼져가 심지를 불어 꺼버리지 않는 이심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최고, 최상 의사 선생님, 특별히 상한 감정의 치유자입니다. 예수님이 치실 상한 감정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고쳐주시도록 맡겨드리기만 하면 고침 받습니다.

감정은 상처가 나기 전에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 건강히 지켜야합니다. 내가 감정을 지키지 으면 다른 사람이 지켜주기 힘듭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보다 더욱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4: 23) 권면합니다. 마음은 감정의 본부입니다.  그 마음이 하지 않도록 지켜야합니다.

감정은 가꾸어야합니다. 아름답고 부드럽고 온화하고 따뜻하게, 리고 균형있고 바르게 가꾸어야합니다. 감정을 내가 그렇게 지키 가꾸고져 성령 하나님께 도와주시기를 구하면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의 아홉가지 열매가 마치 아름다운 무지개처 감정을 통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오늘의 성경 창세기 50 17절입니다, “…요셉이 말을 들었을 울었더라.” 요셉의 울음입니다. 요셉이 울었는가요? 아버지 야곱 세상을 떠나자 10명의 형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원수 갚지 말아주시오. 그것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언이오.”

요셉의 형들은 지금 요셉 때문에 당시 제일 가는  나라였던 애굽 와서 살고 있습니다. 형제 초청으로 이민을 와서 가장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연로하셔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혔습니다 17살인 동생 요셉을 죽일려고 하다 겨우 살려서 종으로 팔았던 셉의 형들입니다. 그런데 동생 요셉이 지금 애굽의 국무 총리 되었습니다. 자신들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있는 권세를 동생 요셉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살아 계실 때는 아버지 때문 만이라도 요셉이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원수를 갚지 않겠지, 하고 마음을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언제 동생 요셉이 복수할지 모르지 않은가, 가만히 있다가 당하기 보다는 먼저 동생 요셉에게 찾아가서 , 그렇게 의논해서  형들이 요셉에게 찾아 것입니다. 형들이 찾아와서 하는 말을 들은 요셉이 보인 반응입니다,  아무 없이 그냥 울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여러 것을 기록했습니. 오늘 말씀 전에도 일곱 번이나 울었습니다.

눈물은 감정의 표현입니다. 감정은 알맞게 표현하면 좋습니다. 울어야할 때는 울어야지요. 그러나 눈물은 경우에 맞게, 알맞게, 절히 흘리는 것은 필요합니다. 감정은 감정을 언제 어떻게 나타 보이는가에 따라 유익하기도 하고 해롭기도 합니다하나님은 감정을 가꾸고 다스릴 있는 힘을 이미 허락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요셉이 울었더라”, 요셉의 울음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요?
부모님의 은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91 요셉이 났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어머니 라헬을 아주 사랑했 니다. 그러기에 라헬에게 장가들기 위해 무려 14년이나 기다리며 노동을 했습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아들 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37:3) “채색 손이나 발까지 내려오는 겉 옷”, 다른 아들 들과는 구별을 지우는 옷이었습니다. 지나치게 편애한 아버지입니다. 물론 편애는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편애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요셉입니다. 사실 부모는 자녀들을 애한다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자녀 사랑은 맹목적입니다. 그런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형들이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셨던 아버지의 유언을 들먹이기에 아버지 야곱의 사랑과 공을 기억하고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감사의 눈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부모님이나 스승이나 은혜와 도움을 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은 가장 아름답고 귀한 감정의 표현입니다. 저가 살아오면서 가만히 발견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은공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름다운 정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한결 같이 감정이 구김살이 지거나 비뚤어지거나 뿌리로 남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게 가꾸어져 감정이 유익하고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효성은 모든 감정의 기본인 같습니다. 성경도 효성은 인간의 기본이 되고 감성이나 감정의 중심이되는 요소라고 증거합니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건 이미 세상을 떠나셨건 부모님의 은공이 무도 크고 놀랍기에  요셉처럼 눈물을 흘리면서까지라도 감사할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눈물은 우리 하나님이 보시고 크게 복을 주시는 눈물입니다.

요셉의 울음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 표현입니다.
18-20절입니다, “ 형들이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성경은 17 살인 요셉이 형들에 의하여 종으로 팔렸을 ,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되었을 , 감옥에서 도움을 주었던 애굽 바로의 고관이 은혜를 잊어버렸을 , 결코 한숨쉬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고 증거합니다. 어떻게 그럴 있었나요? “하나님이입니다. 하나님은 설령 사람들 해를 입혀도 그것을 오히려 선하게 바꾸어주시는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섭리입니다.하나님은 영원히 선한 뜻과 계획으로 택하 여주신 자녀를 가장 좋게 인도하신다, 그럴 있는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시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심을 믿고 의지한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은 하나님은 그런 믿음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증거합니다요셉의 하나님이 성도님의 아버지이심을 믿으시는가요? 전화위복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는가요?
믿으시면 요셉 처럼 감사하십시다. 눈물로 감사를 드려도 드릴 없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아버지의 사랑과 복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울음은 형들과 가족들까지 사랑으로 용서하고 돌보겠다는 결심의 표현입니다.  21절입니다,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간곡한 말로 위로 하였더라.”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누가 누구를 어떻게 위로 했는가요?  해를 받은 사람이 해를 입힌 사람들을 위로한 것입니다.  간절히 위로한 것입니다. 가해자들을 구체적으로 돌보아 것을 약속하면서 위로한 것입니. 요셉이 그렇게 있었던 것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하나 님의 은혜와 사랑과 도우심과 위로와 복을 받은 것에 먼저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요셉은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 까지도 사랑하시며 용서하셨나요? 원수까지도 입니다. 그런 십자가 사랑을 입은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교회로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인 같은 교회의 지체된 것입니다.                                 

데이비드
시맨즈 라는 분은 그의 상한 감정의 치유에서 성도인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예수님의 감정으로 지키고 가꾸는 비결을 렇게  말합니다, “문제 가운데 연관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 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했듯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시맨즈는 교회가 어떤 공동체로 만들어져가야 하는가를 합니다,  교회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서로 사랑할 있고 사랑하는 것이다, 용서받고 용납되었기에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는 곳이다,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혜를 베풀고 은혜를 끼치는 곳이다.”

그러기에 여기 모인 우리들도 요셉 처럼 간곡한 말로 서로 위로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뜻하지 않는 가운데 서로의 감정에 상처를 입히게 되었다면 용서하고 너그럽게 여길 있기를 바랍니. 교회는 치유의 공동체입니다. 치유함을 받아 더욱 건강하게 아가는 예수님의 생명 공동체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위로하고 치유하고 회복하여 일으 세워주시는 은혜와 복을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