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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자의 영광/ 요한계시록 2 장 12-17절
싸웠노라, 이기었노라, 좋았노라.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입니다.이기는 것은 다 좋아합니다. 물론 이겨야할 대상과 싸워서 이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악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나 히틀러 나치당이나 공산주의나 과격 회교도 테러리스트나 온갖 범죄 세력들입니다. 그런 세력들과는 싸워서 이겨야합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싸움이지요. 싸움이기에 이기기를 원합니다. 요즈음 한국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만 특별히 미국에서는“살찌는 것, 비만”과의 싸움에서 이기기를 원합니다. 통계 보고에 의하면 미국의 어린 자녀들 중 다수가 비만증세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 부모들이 자녀 교육의 최우선을 어디에 두는가요? 이기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사회에 나가서 출세하여 잘 사는 길이 곧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기는 것은 좋습니다. 필요합니다. 나라와 나라의 전쟁에서는 이겨 야합니다. 운동 경기에서도 이기는 것은 좋습니다. 그저 참가하는 것에 보람과 목적을 둔다는 것은 이기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입니다. 미식 축구의 전설적인 코치인 빈스 롬바르디라는 사람은 “운동 시합에서는 이겨야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기는 것이 전부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기는 그 과정이 옳다면 이기는 것은 좋습니다.
물론 지는 것이 지혜롭고 잘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간의 다툼은 지는 쪽이 더 지혜롭게 좋은 편입니다. 가정에서는 다툼이 없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교회안서도 성도간에 다툼이 없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런데 교회안에 다툼이 있을 경우 성경적인 근본 교리에 관한 것이 아니면 지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지는 것이 더 좋은 경우도 있지만 사람은 할 수 있으면 이길려고 합니다.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그리스도인은 화평케하는 사람으로 살아야함을 예수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성도는 참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도이기에 이겨야하 는 싸움이 있습니다. 필승해야하는 싸움입니다. 영적인 싸움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인가요?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것 입니다. 믿어서 영생 구원을 받은 것은 곧 영적인 싸움에 나섰다는 뜻입니다. 이겨야하는 영적 싸움 중에 있는 데 그것도 모르며 사는 성도도 많습니다. 그러면 영적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을 포함해서 요한 계시록 2-3 장에는“이기는 자 (그)” 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주후 100 여 년 경, 터키 지방에 있었던 일곱 교회에 주신 성령님의 말씀인데 일곱 개의 교회 전부에게“이기는 자”를 강조해서 말씀합니다.“이기는 것”이 참 좋고 중요하다는 강조입니다. 이 일곱 교회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 이 현세에 있을 모든 교회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요한계시록 2-3 장은 우리 교회, 여기 모인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말씀입니다.“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우리 모두 마음으로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들어야할 말씀은“이기는 자의 영광”입니다.
먼저 성경적인 믿음을 지켜나가는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그 때 성경적인 바른 복음을 공격하여 헷갈리게하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것을 시험하 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계2:2)“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니골라당의 교훈”(계2:6,)“사단의 회”(계:2:9)“발람의 교훈”(계2:14)“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계2:20) 한 마디로 “오직 예수님,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하나 님의 영광”이 아닌 다른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런 가르침이나 영향들이 그 때 성도들의 믿음의 뿌리를 흔들려고 했습니다. 뿌리입니다. 뿌리가 튼튼히 잘 박히지 않으면 결코 잎을 피우거나 멸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도 믿음의 뿌리를 흔들려는 세력이나 영향이 있습니다. 그 한 예가 종교 다원주의입니다. 이 종교 다원주의는 교회나 성도들을“오직 예수님,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의 믿음을 공격합니다.
얼마전 뉴욕시 맨해탄 125가의 명소라고 알려진 Riverside 교회에서 집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록펠러가 부자되도록 축복해주신 하 나님께 감사드리며 지은 교회입니다. 분명히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서 가진 집회가 부흥회나 긴증집회였는가, 아닙니다. 한국의 어느 스님을 모셔와서 강연을 한 것입니다. 스님도 얼마든지 집회를 하고 깨달은 바를 가르칠 수 있고 가르쳐야하지요. 그런데 어디에서 스님이 불교의 가르침을 전했다는가요? 교회에서입니다. 그 스님의 말씀도 귀한 면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증거되는 말씀은 어떠해야하는가요? 죄인이 죄 용서함받아 영생 구원 얻어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되는 길은 예수님 뿐이라는 복음입니다.“오직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교회에서 증거되지 않으면 어디에서 증거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이 말씀 그대로를 믿고 선포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과는 아주 어긋나게 예수님 이외의 다른 사람이나 방법을 통해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뿌리를 흔들어 헷갈리게하는 가르침이나 세력을 물리쳐 내야합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승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매일, 순간마다 부딛쳐 이겨야하는 싸움은 섬기느냐, 섬김을 받느냐입니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 싸움은 제일 심각하고 중요한 싸움입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죄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기 전에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무엇이 죄인가요? 사람이 누려야할 참된 행복이나 기쁨이나 만족이나 보람을 빼앗아가는 세력입니다. 그 세력인 죄가 우리 모두를 지배할려고 합니다. 이기심이 죄입니다. 내가 왕이고 주인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판단이나 행동입니다. 과연 사랑으로 섬기느냐, 그렇지 않으면 이기심의 종으로 모든 사람이 나를 섬기게 할려고 하느냐, 그것보다 더 심각하고 치열한 싸움은 없습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아가페입니다. 희생적인 섬김입니다. 예수님 믿어 거듭날 때 성령 하나님은 그 아가페를 마음 속에 부어주십니다.“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 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계3:8,10)“내 말을 지키며,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누구의 말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말씀을 지킨다”, 무거운 느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마22:34-39)“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지난 주 금요일(2011 년9월 24일) 자 조선일보가 서울의 한 교회를 소개했습니다.“작지만 큰 교회”가 그 기사의 촛점이었습니다. 서울 금호동 옥수중앙교회입니다. 교인 가정의 3 분의 1 이 월 수입 120 만원을 못 넘기는 가난한 교회라고 합니다. 그 교회가 이웃을 도우는 여러 일들 중, 인근 독거노인 120 가정에 매일 우유를 배달해줍니다. 이선예(77세)라는 할머니가 우유를 받는 한 분입니다. 그 할머니는 충남 부여에서 상경하여 혼자 사는 데 지난 5 년여 매일 교회가 배달하는 우유를 받아왔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입니다. 그 분이 동대문 시장에서 10만원을 주고 일제 중고 털옷을 샀습니다. 그 분의 형편에서는 큰 돈이었습니다. 그 털옷을 일일이 풀어 값싸고 질 좋은 털실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 털실로 한코 한코 방울 모자를 떴습니다. 아침 부터 저녁까지 하루 꼬박 매달리면 3 개정도가 만들어집니다. 지난 겨울에 방울 모자 100개를 교회에 가져왔습니다. 유치부와 초등부 아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그 할머니의 말입니다,“얼른 마음이 열리지 않아 교회를 나오지 못했는 데 오늘 나왔습니다. 이제 부터 사람 사는 정 이 있는 이 교회를 다닐렵니다.”
이기는 자입니다. 소망으로 박해나 고난이나 아픔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들 중 두 번째 교회인 서머나교회의 형편이었습니다,“환난과 궁핍”이었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세주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에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그 교회만이 아니고 그 때 만이 아닙니다. 지난 2 천 년 교회 역사에서 성도나 교회에 박해나 환난이 없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사실 이 현세를 사는 그리스도인이 참된 믿음으로 살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저와 성도님에게는 지금까지 믿음 때문에 어려 움이 있었는가요? 없었다면 먼저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 보며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기 바랍니다.“사람들이 나를 핍박 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요15:21),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참 큰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너희도 핍박을 받을 터이요”, 그 예수님의 예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믿는 믿음 때문에 핍박이 없다면 그 믿음이 과연 어떤 믿음인가를 예수님 앞에서 반성해야한 다는 말씀입니다.“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 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요16:33,롬8:37)
1967 년 6월 5일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짚트, 요르단, 시리아 등의 아랍 나라들과 이스라엘의 전쟁이었습니다. 아랍나라들의 무차별 테러와 이짚트의 아카바만 봉쇄에 이스라엘이 대응한 것입니 다. 그런데 싸움이 일어난지 6 일 만에 이스라엘이 대승한 것입니다. 그래서 6 일 전쟁으라고 이름합니다. 전쟁 초 이스라엘이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공개할 수 없는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 것이다. 미국 정보당국과 전 세계 군사 전문가들이 극비리에 그 최신 무기가 과연 무엇인가를 알아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 최신무기가 무엇인가를 알게되었습니다, 그 무기는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2-3 장에서 이기는 자에게는 보장된 축복들이 있습니다:“…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주어 먹게하리라”(계2:7)“생명나무 과실을 먹는”복입니다. 영원한 만족과 기쁨입니다.“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2:11) 죽음을 영원히 이기신 예수님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복입니다.“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계2:17)“감추었던 만나”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만이 주시는 영원한 양식입니다.“이기는 자에게는…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2:26)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하는 특권입니다.“이기는 자는…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계 3:5) 천국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확실히 기록되는 복입니다.“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계3:12)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둥같이 사용하시는 복입니다.“이기는 그 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줄 것이다…"(계3:21) 피조물인 죄인이 영원히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권능이 무하하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복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요16:33, 롬3:37, 고후2:14) 참으로 감사한 것은 우리 하나님은 구원해주신 자녀인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비결을 주셨습니다. 그 비결은 승리의 대장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 의지하는 믿음으로, 예수님만 바라보는 소망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랑으로 늘 승리하며 살아가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