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6 1-13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보리떡 다섯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오늘 성경 11, 13 절 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 명 이상의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도 12 바구니에 남도록 기도로 기적을 이루어 축복해주신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2010 년 새 해 성도님들을, 우리 교회를 축복하여주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준 헬렌 켈러는 미국이 낳은 귀한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의 사람었습니다. 그런 장애인을 케네디 대통령까지 13명의 미국 대통령들이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그만큼 그 여인은 많은 사람으로 부터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거친 성격의 최악의 장애인이었던 헬렌 켈러였습니다. 그런 장애인이 최고의 존경을 받게 되기 까지에는 가정 교사 앤 설리반의 초인적인 돌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헬렌 켈러는 자서전내 인생 이야기, The Story of My Life”에서 앤 설리 반 선생님이 끼친 영향과 감화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어느 날 나는 설리반 선생님에게사랑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없이 나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댄 후 내 이마에 키스하며 꼭 끌어 안아주셨다. 그리고는 "이것이 사랑이야!”, 라고 말씀하셨다. 삼중 장애인 제자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설리반 선생님의 사랑과 돌봄이 헬렌 켈러를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든 비결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기 모인 우리에게는 그 어떤 인간의 사랑이나 돌봄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이 영원히 크고 놀랍고 구체적인 사랑과 돌봄의 손길이 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예수님의 손길입니다. 예수님은 2천 여 년 전 먼 유대 땅에 33년을 사셨던 과거 역사속의 주님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살아계십니다. 그 때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기적으로 먹여주셨던 예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새 해 남은 355, 매 순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단순히 함께 하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며 축복하십니다. 예수님의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축복해주시는 한 해임을 믿으십니다. 예수님의 축복을 최대로 누리고 그 복을 나누는 한 해로 살아가십시다.

이 지구 위의 모든 사람 중에서 예수님의 축복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예외없이 유한하고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축복이 필요없다"고 아무리 큰 소리칠지라도 사람은 사람입니다. 곧 유한한 존재입니다. 유한한 존재이기에 주님의 축복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은 그 사실을 증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들려주시는 말씀도 듣는 가운데 어느듯 저녁 때가 되었습니다. 모여온 많은 사람들이 배가 고프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12명의 제자들은 그 많은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해야하는 일이 마음에 걱정으로 부닥쳐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저녁 식사를 해결하도록 돌려보내기를 예수님에게 청했습니다. 제자들의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빌립이라는 제자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하겠느냐?”“선생님, 한 사람이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의 대답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그저 요기만 시킬지라도 약 2만 불어치의 빵이 필요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그만한 액수의 돈은 거액입니다. 그렇게 많은 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 중에서 빌립이 제일 계산하는 일에 빨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빌립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빌립의 대답은 무슨 뜻인가요? 남자 어른만 5000 명인데, 여인들과 아이들을 합치면 만 여명, 갑자기 이들에게 저녁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 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예수님이 잘 아시는 데 왜 물으시는가 하고 좀 항의하는 뜻입니다. 인간의 유한성에 부딪친 마음입니다. 그래서 “200 데나리온이라는 숫자까지 제시한 것입니다.

그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안드레가 예수님에게 말합니다,“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아주 가난한 집의 어린아이가 먹는 점심 도시락입니다. 너무도 빈약한 음식입니다. 한 소 년의 점심 도시락으로 어떻게 만 여 명을 먹일 수 있겠는가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하고 안드레도 빌립의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도우며 예수님에게 말한 것입니다. 사실 빌립과 안드레는 나머지 10명의 제자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12명의 제자들은 불가능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니다. 사람의 유한성의 생각이나 판단에 얽메여있는 것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만약에 그 때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 끼어있었다면 우리도 똑 같이 대답했을 것입니다. 도무지 안되는 일을 안되는 줄 알면서 왜 예수님이 질문을 하실까 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원망했을런지 모릅니다. 안된다는 불가능의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새 해를 시작한 우리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들이 바라고 원하는 소원들이 있다, 그런데 그 소원들이 과연 이루어 질 수 있을까, 그 소원들이 개인의 소원이든, 교회의 소원이든, 나라와 지구촌 전체를 위한 소원이든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소원은 소원인데 불가능할 것이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물으십니다.

지난 해 성탄 날 박동훈(Robert Park)이라는 28 살의 선교사가 두만강을 건너 뚜벅 뚜벅 이북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는 김정일에게 줄려는 편지 만을 들고 맨 몸으로 들어 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철없는 무모한 만행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그 젊은이가 가슴에 품은 기도와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북의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남북한 이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자유 민주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예배드리는 예배당에 빈 자리가 많습니다. 새 해에는 이 예배당의 빈 자리가 없도록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차고 넘치게 되는 소원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내 집을 채우라”, 주님의 집을 채워드리는 소원입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보면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우리 교회로서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닌가, 하고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성도님 중에서도 지난 해 까지 해결되지 못한 일이 있다면 그 일이 올 해에는 꼭 해결되기를 간구하는 소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보면 힘들 것 같습니다, 불가능하게 보인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빌립에게 왜 그런 질문을 하셨다고 증거하는가요?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6 절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배고픈 사람들이 빵을 먹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셔야 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 길 이외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을 예수님이 잘 알고 계십니다.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잘 아시는 예수님이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시험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마귀의 시험입니다. 유혹입니다. 잘못된 길에 빠져서 결국에는 멸망케 되도록 꼬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시험은 도우기 위한 방법입니다. 지금 빌립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과연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하기를 예수님은 바라고 기대하셨습니다, “예수님, 이들을 먹이는 일은 유한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주님이 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200 데나리온의 떡이 아니라 2백만 데나리온의 떡이라도 주님이 공급해주실 수 있습니다. 없는 데서 있는 모든 것을 지어내신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롬4: 17) 주님은 유한한 우리가 보기에 어떤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다 가능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주님입니다.” 그렇게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믿음로 바로 알고 고백하고 선포하도록 도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새 해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물으실 것입니다
. 특별히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 물으실 것입니다. 이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 풀려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더 좋게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그런 경우에 예수님이 물으실 것입니다, 과연 내가 너를 축복하기를 기다리는 너의 주님, 전능한 창조주, 네 하나님임을 믿느냐?

C.S. Lewis라는 분이 지은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분은 지난 20세기 기독교의 최고 변증자였습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 교수이면서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님이시며 성경의 기독교가 참 진리임을 변호한 분입니다. 그 책에서 그 분은 가장하라고 권합니다. 일정한 기간동안 그런 척이라도 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억지라라도 기뻐하고 웃어보라는 것입니다. 행복해서도 웃지만 힘을 다해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뻐하며 웃을 때는 건강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호르몬의 분비는 뇌의 명령에 따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뇌는 진짜로 기쁘할 일이 있기에 기뻐하는 것인지, 기뻐할려고 기뻐하는 것인지, 구분을 못합니다. 그러기에 자꾸 기뻐하게 되면 기뻐하는 사람으로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새 해 한 해 우리 모두가 설령 연습일지라도 한번 믿어보십시다, 나를 구원해주신 예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바꾸어주신다, 기적을 이루시는 나의 주님이시다, 그렇게 자꾸 믿음으로 고백하고 선포하십니다. 그 믿음이 예수님이 강조하신 어린 아이의 믿음입니다. 천국을 내 것으로 살고 그 천국을 이루어가는 믿음입니다. 일년 만이라도 그렇게 하면 그 믿음이 우리의 살과 피와 뼈가 되어서 믿음으로 승리할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에서 대조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 소년의 점심 도시락과 12 광주리 남은 빵입니다. 만 여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12 광주리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주시되 차고 넘치도록 주시는 축복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가능성의 주님입니다. 성도님들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어떤 형편이나 어떤 일을 만날지라도 예수님은 가능하게 만드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주신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혼만이 아닙니다. 육신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육의 주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인간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시거나 등한히 여기시지 않으십니다. 크신 긍휼과 자비의 주님이십니다. 특별히 우리의 가장 절실한 필요가 무엇이건 그것을 아시고 이루어주시고 해결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 23), 기적을 이루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길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4:19) “그 풍성 한 대로 모든 쓸것입니다. 예수님이 축복으로 반드시 풍성하도록 채워주실 것을 믿으십시다. 그러기에 염려하기 전에 예수님께 먼저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새 해로 살아가십니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관계된 모든 일들을 형통하도록 인도해가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