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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3절, 디모데전서 1장 12-17절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기억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빌립보서 4장 13절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 사도가 어떻게 살아 갔는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구절입니다. 과거 2 천 년의 역사에서 하나님이 아닌 사람으로서 인류에게 최고, 최대의 영향을 끼친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래서 20 세기 최고의 역사 학자였던 영국의 아놀드 토인비는 “바울을 싣고 가는 배는 유럽, 곧 인류 역사를 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요즈음의 터키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유럽인 희랍으로 갔습니다. 바울이 유럽에 상륙함으로 유럽의 문화나 문명이 인류 역사를 인도하고 지배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의 일생이 그 만큼 위대했다 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위대하게 살게 된 비결이 이 한 구절 속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의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바울이 가졌던 그 믿음, 곧 “모든 것을 할 수있느니라” 의 믿음으로 산다면 우리의 앞날도 하나님께 귀하고 크게 쓰임받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비결”을 말합니다. 서점에 가면 “성공하는 비결”에 관한 책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 책을 쓴 사람들이 모두 강조하는 공통적인 비결이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고 낙천적인 자세와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밝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명랑하고 웃는 사람들을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더 잘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도 있지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의 이 고백보다 더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 고백은 보통 세상 사람들의 적극적인 자세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 이유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입니다. 사람의 막연한 신념이나 의지나 바램이나 인간적인 확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곧 “예수님 안에서”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감사함은…”(딤전1:12, 바울을 능하게 하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능력을 주시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선포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과연 무엇이냐 입니다. 이 힘들고 어려운 일 많은 현세를 살기에 우리는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을 바라고 원하는 때에 바라고 원하는 대로 다 이루고 또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바울의 고백은 그런 뜻의 “모든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라는 말이 없다!”는 말대로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폴레옹의 “모든 것”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마지막에는 남 대서양의 아주 작은 섬인 세인트 헬레나로 귀양 가서 외롭고 쓸쓸히 살다 위암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모든 것”은 영원한 성공이었습니다. 역사가 증거하고 하나님이 증거하십니다.
바울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어떤 고난이나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다는 승리의 확신입니다. 모든 고난을 이겨내었고 이겨낼 수 있다는 바울 사도의 체험적인 간증입니다.
사람이 겪게되는 고난이 여러 가지이지만 외적 고난과 내적 고난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외적 고난은 어려운 형편이나 환경이나 처지입니다. 일터나 사업장이나 이 세상에서 겪게되는 힘든 일들입니다. 가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어려움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 인한 고난입니다. 예를 들면 지도자가 독재자이기 때문에 겪게되는 고난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하이티와 이북입니다. 지도자들이 자기의 사리 사욕만을 챙기고 자신을 우상화 하기 위해 백성들의 기본적인 인권이나 권리까지도 짓밟는 것입니다. 그런 독재자들로 인해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런 외적 고난 외에 내적 고난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쉽게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거쳐 가야하는 고난입니다. 바울 사도는 외적 고난도 무수히 많이 거쳐갔습니다. 또한 내적 고난도 컸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자신이 겪은 특별한 내적 고난을 소개합니다.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말합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고후12:7), “육체에 가시”, 육신의 고질적인 아픔이었습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시”라고 표현했습니다. 끈질기도록 고통스럽게 하는 고질병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단의 사자”라고도 말합니다. “사단”은 최악의 존재입니다. 그 사단이 마음대로 부려서 일하게 하는 종으로 바울을 크게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육체에 있는 가시” 때문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호소하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외적이건 내적이건 고난을 겪게될 때 성도인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가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고후 12:8), “세번” 기도했습니다. 바울 처럼 “세번”기도하는 것입니다. “ 세번” 은 여러 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응답 될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이라도 그 고난을 이기는 길은 기도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기도했을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는가요? “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12:9)
고난이나 어려움이 쉽게 물러가지 않고 너무 크고 힘들기에 그 고난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약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기도함으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약 하기에, 자신의 의지나 힘이나 노력이나 수단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도 없고 또 해결할 수도 없다고 인정할 때, 그 때, 주님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내 능력이 이제 나타날 때이다, 내 능력으로 너를 붙 들어주겠다, 너를 나의 능력으로 붙잡아서 이겨 내게 하겠다.” 그래서 바울이 선포하는 승리의 선언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고난을 이기고도 남는 힘과 은혜를 주신다는 증거입니다.
크롬웰은 17 세기 영국의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삶의 의욕을 잃을 만큼 힘든 일을 만났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맏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크롬웰은 어릴 때 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믿음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살아가다가 특별히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거든 꼭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라고 늘 일러주었습니다. 크롬웰이 빌립보서 4장을 읽어내려가고 있었습니다. 12절입니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 처럼 나도 그 비결을 배웠으면 하는 바램으로 13절을 읽었습니다. 그 순간 벌떡 일어나 웨쳤습니다, “바울 사도의 그리스도가 나의 그리스도, 나의 주님이 아니냐? 그렇다면 그리스도안에서 나도 이겨낼 수 있다!” 그 믿음의 확신으로 크롬웰은 일생을 승리하며 달려갔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 크롬웰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입니다. “모든 것 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 특별히 고난에서 바울을 승리하도록 능력으로 붙드신 예수님이 우리를 붙들어 우리도 어떠한 역경을 만 날지라도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입니다, 자신의 허물이나 단점이나 약점이나 부족함을 이기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약점과 단점을 사랑으로 덮어주는 일에 끝까지 승리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자 보다 더 작은 자” (엡 3:8),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 (고전15:8-9), “죄인 중의 괴수”(딤전1:15)라고 말합니다. 물론 겸손의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완전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약점이나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번은 자신이 예수님의 사도로 살아가도록 도와 준 바나바와 크게 다투어 갈라서기도 했습니다.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게 된다”(롬7: 19)고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런 바울의 생애가 위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흠이나 부족함이나 약점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와 똑 같이 흠이나 부족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토록 위대한 삶을 살았던 비결은 자신의 약점이나 허물, 과거의 실패나 상처에 얽메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고 뜻하지 않은 가운데 잘못을 저지르거나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뉘우치고 회개해야지요. 다시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도록 결심하고 결단해야합니다. 성령께서 능력으로 붙드셔서 승리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런 것들에 얽메이지 않아야합니다. 회개한 과거의 실패나 허물이나 범죄에 얽메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며 실천해야할 것은 내 자신의 부족함이나 약점이나 허물이나 실패가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뒤엣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선언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전15:10),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 본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았기에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은 것입니다. 자신 속에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넘쳐나기에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허물이나 실수를 은혜로 덮어주고 좋게 보아 주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참된 자유입니다. 예수님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자유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입니다.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고도 남는다는 확신입니다. 바울 사도는 구원받은 후 선교 여행을 세 번이나 할 수 있었습니 다. 바울이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을 선교 여행한 것은 요즈음의 단기 선교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위험하고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 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명을 주신 하나님이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해도 영적으로 부자인 교회”, 그런 교회가 있습니다.
코네티컷트의 예일 대학 근처에 있는 교회입니다. 7년 전에 세워진 "아가페 홈리스 교회"입니다. 현재 그 교회에는 매 주일 75-90명의 노숙자들이 모여서 아침 7시 30분 부터 10시 30분 까지 예배, 성경 공부, 식사를 합니다. 미국 교회를 빌려서 모입니다. 유은주 선교사와 6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섬기는 교회입니다. “유학 와서 결혼하여 주부로 살다가 이렇게 미국인 노숙자들을 섬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유은주 선교사가 통화 중에 직접 내게 들려준 간증입니다. 요즈음 처럼 추운 겨울에는 그 교회가 노숙자들을 위해 텐트를 쳐 줍니다. 하지만 노숙자들이나 폭력배들이 그 텐트를 팔아 술이나 마약을 사는 일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지난 12월 27일에는 노숙자들에게 70컬레의 장화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때 선물을 받지 못한 노숙자들을 위해 장화 두 컬레를 자동차 안에 싣고 다닙니다. 그것을 노리는 폭력배들도 있어 겁이 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 해 부터는 매 주일 성경 암송대회를 매 주일 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5-10명의 노숙자들이 반드시 외워옵니다. 한 단어도 틀리지 않고 다 외운 사람에게는 5불 짜리 맥도널드의 쿠폰을 줍니다. "쿠폰 때문에 성경 구절을 외우더라도, 그들 뇌리에 박힌 성경구절이 그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유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영원히 값있고 놀랍게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명입니다. 세상의 사람들, 더우기 크리스찬인 우리 성도들이, 관심을 두지 않고, 관심을 두더라도 실천하지 않고, 실천하기 싫어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영혼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최선의 관심과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영원히 값있는 사명입니다. 그 한 영혼이 우리와 다를 때, 말과 문화와 모든 것이 다를지라도 하나님이 그 영혼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시면 그것이 사명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복음에 빚을 졌다(롬1:14), 빚은 갚아야 한다, 그러한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사명을 맡겨주신 예수님이 감당할 능력을 주시고 감당하도록 인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명은 바울에게만, 선교사에게만 있는가요?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 은혜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다 사명자 입니다. 예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야하는 사명자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해야하는 사명자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명을 맡겨주신 예수님이 능히 감당케하여주십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 입니다. 고난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고 받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피 묻은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하는 사명입니다. 그 “모든 것” 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입니다. 예수님이 은혜와 능력을 끊임없이, 차고도 넘치게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