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은 하나님의 러브 스토리이다 / 호세아 11 1-9

러브 스토리는 사람들의 제일가는 관심과 흥미꺼리입니다사람이 산다는 것은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계속되다 어떻게 끝나는가 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언제 들어도 지루하지 않는 사랑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견우와 직녀의 거짓말 같은 결합, 그리고 춘향이와 이도령의 극적인 사랑의 성취입니다. 비록 사람이 지어냈을지라도 그 사랑 이야기는 한국 사람의 마음에 진한 흥미와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물론 잘못된 사랑 이야기도 많습니다.“내가 하면 로맨스,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 사람의 기본이 되는 도덕과 행복을 파괴하는 그런 잘못된 사랑 이야기는 결코 까십꺼리로도 삼지 않아야합니다. 마귀가 사람의 사람됨과 존엄성과 귀중함을 가장 교묘히 파괴하는 유혹의 방법이 그런 잘못된 사랑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아름답고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최고로 귀하며 영원한 감동을 주는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성탄은 그 사랑이 과연 어떤 사랑인가를 보여줍니다. 물론 성탄은 결코 꾸며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그 사랑을 가장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이시는 행동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그 사랑을 모르거나 체험하지 않고는 성탄의 참된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저 세상적인 한 명절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호세아라는 성경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왜 성경, 구약에 호세아라는 예언서가 들어있을까요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위함입니다. 66 권 전체의 주제가 사실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호세아는 더욱 생생하고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한 명령을 내립니다,“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1:2)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 고멜이라 이름하는 여인에게 장가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멜은 도저히 자기의 아내가 될 만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아내가 될 수 있는 정숙하고 순결한 대상이 많이 있음에도 하나님은 고멜이라는 여인을 지적하셨습니다.“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자식들이 음란한 것이 아니라 호세아의 아내가 된 고멜이 다른 남자의 자녀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타락한 구체적인 모습은 성적인 문란입니다. 오늘 만이 아닙니다. 창세기 때 부터입니다. 창세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을 받은 큰 이유는 성적인 타락 때문이라고 증거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허락하신 것이 성(Sex)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성(Sex)  은 반드시 경계선이 지켜져야 합니다. 그 경계선은 결혼한 남자와 여자의 관계 에서만 성(Sex)의 행동이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경계선이 무너지면 반드시 결과가 있습니다. 사람의 참된 번영과 행복을 위해 뜻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무너지는  입니다.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멸망입니다. 사람의 타락한 본성을 아주 파괴적으로 자극하고 만족시키는 것이 타락한 성적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움받은 호세아, 그 호세아로 하여금 이미 성적으로 타락한 고멜을 아내로 맞으라, 아내가 된 후에도 다른 남자의 자식들을 낳을 것이다, 그렇게 명령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신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호세아의 사랑이야기는 호세아의 자존심이나 감정이나 바램을 무시한 채 만들어지는 것 같이 보입니다.

호세아는 누구를 보여주는가요? 호세아로 하여금 창녀와 결혼하도록 명령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신 이스라엘이 마치 음란한고멜과 같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1:2),“크게 행음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내된 이스라엘이 남편인 하나님을 떠나 다른 남자를 연애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들 중에서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순종하여 의지하며 경외하도록 택함받은 이스라엘이 끊임 없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좇아간 것입니다. 영적인 행음입니다. 그런 아내를 하 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픈 가슴의 사랑 이야기가 성경입니다.

오늘 성경 호세아 11장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설명 하는가요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들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 을찌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11:1-3) “불러내고 걸음을 가르치고 팔로 안고 고치는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로 뜻하시고 그 뜻을 행동에 옮기시는 분입니다. 곧 하나님의 사랑은 선수적이며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먼저 사랑을 시작하시고 그 사랑을 끝까지 실천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존재하면서 부터 사랑이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의 사랑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계산적이고 감정적입니다우리 부모님 때만해도 연애하여 결혼한 경우는 퍽 드물었습니다. 결혼하는 순간 까지 배우자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들이 대부분 함께 해로하지 않았습니까? 계산적이거나 감정적이기 보다는 의지적인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할 대상이 죄인임을 알고도 그 죄인을 사랑하기로 계획하시고 그 사랑을 끝까지 실천해가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을 때 사랑하셨는가요? 완전할 때인가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게 모범일 때인가요? 아닙니다, "아직 죄인 되었을 때"입니다. 죄인인줄 아시면서도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 죄를 짓습니다, 또 죄를 짓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포기하시는가요? 아닙니다. 영원히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아직 죄인 되었를 때" 사랑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호세아가 고멜이 어떻게 할지라도 끝까지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탄은 하나님의 사랑이야기 인데,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의지적으로, 끝까지 사랑하여주시는 그 대상이 누구인가요?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인도하였노라”(31:3),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의 대상이 누구인가입니다. 성도님입니다. 성도님 한 분 한 분입니다. 나는 고멜과는 같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룩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에게는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죄인입니다. 영적으로 고멜 못지 않은 죄인입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을 사랑하고 의지한 것입니다.“…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3:17), 하나님은 성도님 한 분 한 분을 무궁한 사랑으로,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하도다.”(11:8) 하나님은 사랑하기로 뜻하셔서 사랑을 시작하면 그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불붙듯하는 긍휼로 끝까지 사랑하십니다그 사랑의 클라이막스입니다, 성탄입니다.

성탄 이전, 즉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그런 사랑을 여러 모양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호세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점 점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시다가 베들레헴 말 구윳간에 한 아기가 태어 나게 하신 것입니다. 첫 성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행동으로 나타내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전혀 깨닫거나 알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희생과 아픔의 사랑입니다. 영원히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영원한 영광과 권세를 다 버리시고 속수 무책인 어린 아이로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으로 오셔야 죄인인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지구촌의 고아나 배고프고 병들고 외로운 어린이들을 위해 큰 사랑을 실천하는 단체가 선명회(World Vision)입니다그 선명회의 출발은 한국이었습니다. 1950, 6.25 사변이 일어나 수 많은 전쟁 고아들이 길거리에서 방황하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Bob Pierce라는 미국의 목사님이 부산을 방문했습니다. 그 고아들을 본 피어스 목사님의 결심이었습니다, “저 고아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 사랑의 마음인데,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의 그 사랑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게하여주십시요.”그래서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 선명회의 출발이었습니다. 행동하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의 한 예입니다.

그 사랑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85), 이 찬송가 가사대로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성탄은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끝나지 않아야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가 우리를 통해 계속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의 성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힘을 다 해 사랑하십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또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부터 시작하여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참아주는 것입니다, 함께 웃고 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구체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런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이미 부어주셨습니다. 믿으십니다, 성령님이 그 사랑을 내 마음속에 부어주셨다. 그 성령님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우리를 통하여 계속해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올 해에는 성탄에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가장 구체적으로 계속하여 실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