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요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요나 3장 1-10절
크리스찬이나 교회가 늘 잊지 않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의 기초와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에게 효성을 다하는 것은 영원히 복을 받는 길입니다. 효성을 다 하기 위해서는 나의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낳으시고 기르셨나, 나의 부모님의 희생적인 사랑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가를 아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은공이 평생에 효성으로 갚아드려도 오히려 부족할진대, 하물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어떠한가요? 한이 없이 크고 깊고 높습니다.
믿음 생활이나 교회를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으로 만 평가하기 쉽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대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깨달을 때 참된 믿음의 열매들이 겉으로 나타나 맺혀집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6:3) 호세아 선지자의 간곡한 권면입니다. 힘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1:3),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드린 간절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 사도 자신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다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3:8)
요나 3장이 가르쳐주는대로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를 함께 살펴볼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리라.”(1절) 요나 1장 1-2절에서 하나님은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니느웨와 정 반대 방향의 다시스로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그 곳으로 가면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계신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십니다. 계실 뿐만 아니라 무한한 능력과 지혜로 두신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요나를 삼일 낮과 밤 동안 큰 물고기 뱃 속에 넣어셔서 훈련시켰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누구이신가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를 응답하신 것입니다. 요나에게 다시 두 번째, 순종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오미라는 한 여인이 두 아들들을 데리고 남편 엘리멜렉을 따라 살 아오던 베들레헴 고향을 떠나 모압이라는 이웃나라로 갔습니다. 흉년이 들었기때문입니다. 모압 나라에서 남편과 두 아들들이 죽어 갔습니다. 고난과 외로움과 시련이 너무 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오미에게 두 번째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으로 주신 축복의 땅인 고향 베들레헴으로 과부 며느리 룻과 함께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룻이 보아스라는 남자를 만나 재혼함으로 다윗의 조상, 곧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 기회를 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도 두 번째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며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그런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두 번째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강림하셔서 베드로를 붙잡으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에 붙잡힌 베드로,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다 로마에서 십자가에 꺼꾸로 메달려 순교 하기까지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두 번째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은 성도님들에게도 두 번째의 기회를 주십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넘치고 충만한 은혜와 축복으로 살아 왔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고 아름답게 쓰임받는 일생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부터입니다. 크리스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두 번쩨 기회는 “오늘” 입니다. 이 시간 이후 부터 요나 처럼 하나님께 기도하고 순종할 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요나 처럼 복음의 증인, 예수님의 증인되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영혼을 구원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요나 때 큰 성읍 니느웨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4장 11절은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12만명”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들은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니느웨를 큰 성읍으로 짓기는 했지만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아주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나 3장 10절에는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니느웨에 살았던 사람들은 “악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이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 악한 사람들이 악한 길로 가서 악의 종착역인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악한 사람들은 저지른 악의 댓가를 받아야 마땅하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김정일과 공산당 우두머리들입니다. 북한의 수많은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습니다. 특별히 어린 아이들이 배가 고파 죽거나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김정일과 소수의 사람들은 그 사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얼마 전에는 김일성 생일을 기념한다고 폭죽을 터뜨렸는 데 그 비용이 어마하게 많았습니다.
악한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길을 갔거나 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다 알 수 없이 많습니다. 악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고 악한 길을 달려가기에 그 악의 댓가를 마땅히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들 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우리 하나님은 니느웨의 악한 길을 달려가는 12 만 여명의 영혼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요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서 증거한 복음을 듣고 니느웨 사람 전부가, 왕까지도 다 회개하였습니다. 회개한 영혼을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악한 길로 달려가던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믿으시는가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무리 악하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영혼을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뻐합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명"은 “심부름 使, 목숨 命”, 목숨을 다하기 까지 충성으로 감당할 심부름입니다. 하나님의 심부름입니다. 그 하나님의 심부름은 요나 처럼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성경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작은 것을 사용하셔서 큰 일을 이루십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느니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 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3-4절) 요나가 한 것은 무엇인가요? 니느니웨로 들어가서 외친 것입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아주 간단한 한 문장의 말입니다. 우리 모두도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짧은 말로 인해 왕으로 부터 시작하여 니느웨 온 성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외친 짧은 말입니다. 니느웨 온 사람들이 회개하는 엄청난 일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 작은 것이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일을 일으킬 수 있었는가요?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판단으로는 작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순종으로 실천할 때 그것을 사용하여 놀랍고 크고 기이한 일을 이루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양을 치던 지팡이를 홍해 위에 내 밀었을 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이 작은 것을 사용하여 큰 기적을 이루신 것입니다. 다윗이 작은 물맷돌 다섯개로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이 작은 것을 사용하여 승리케하신 것입니다. 한 소년의 변변찮은 점심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예수님은 남자만 5000 명을 배불리 먹인 후 12 바구니에 가득차는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무리 작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순종하여 하나님께 바쳐드릴 때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셔서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하시는 분이 십니다.
한 마디의 진실되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셔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특별히 부모된 우리가 자녀를 위해 눈물의 간절함으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여주십니다. 성령의 감동하심과 능력을 힘입어 요나처럼 믿지 않는 영혼에게 전도하는 한 마디의 복음을 하나님은 사용하셔서 그 영혼을 구원하여 주십니다. 사람이 보거나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주님을 위해 바쳐드리는 수고와 희생의 한 행동을 하나님은 받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크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나 재물이나 은사를 하나님께 바쳐드립시다. 하나님이 받으시고 아름답고 귀하게 열매를 맺어주실 것입니다.
두 여성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1960대 저가 다닌 같은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두 분 다 그 당시 한국의 제일 가는 여자 고등학교를 졸 업했습니다. 두 분 다 지금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아주 안정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여자 분들의 모습과 삶이 너무나 대조됩니다. 한 분은 하나님이 주신 많은 축복과 재능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분의 얼굴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지 못합니다. 옛 날 대학 때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평안이나 만족이나 감사나 기쁨은 조금도 느껴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다른 한 여자 분은 교회의 직분자입니다. 평생을 교회를 위해 기도 하며 섬깁니다. 그 분을 가끔 교회 연합 모임 때 만납니다. 그 얼굴과 모습이 너무 은혜스럽습니다. 진정한 안식과 감사와 평안과 만족이 넘쳐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주시는 복들을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 예수님의 복음 증거를 위해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하나님과 아주 친밀히 동행하기에 참된 아름다움과 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도님들도 그 두 번째 여성도 못지 않게 하나님을 바로 알아 하나님과 복되게 동행하시는 앞날이 되도록 성령께서 주장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