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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은 하나님의 가난하게 되심이다/ 고린도후서 8 장 9절, 빌립보서 2장 1-11절
가난함을 원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지구촌 70 억의 사람들은 예외없이 다 가난하지 않기를 원합니다.사람은 할 수 있으면 가난한 것과는 반대로 부자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물론 가난한 정도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아프리카나 이북 등의 가난한 나라에서는 가난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지구촌에는 결코 원하지는 않지만 그 형편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가난하다”는 생존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입고 먹고 잠을 자는 것이 더 이상 계속되기 힘든 정도입니다. 생활의 필수품이 없거나 아주 부족해서 생명을 유지가 위태하다는 것입니다.
가난함의 구체적인 예는 갓난 아기입니다. 갓난 아기는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귀합니다. 그러나 갓난 아기는 결코 자기의 힘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부모나 다른 사람이 반드시 보호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이 생명 유지에 필요한 것 을 공급해주어야 갓난 아기는 살 수 있습니다. 갓난 아기는 가난함이 어떤 것인가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원하지는 않지만 가난한 형편에 놓여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탄은 과연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요? 하나님이 가난하게 되심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원하셔서 가난하게 되신 것이 성탄입니다. 성탄은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기쁜 소식이지요. 성탄에는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뻐하는 그 성탄은 과연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가요? 하나님이 가난하게 되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스스로 가난해지기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난하게 되심이 곧 첫 성탄이었습니다.
오늘의 성경이 증거하는 사실입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8:9)“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가난하게 되신 분이 누구인가요?“부요하신 자" 입니다. 영원히 부요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입니다. 부요하신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탄입니다.
성탄은 예수님이 어린 아기로 태어나신 것입니다.“어린 아기”의 가난함입니다. 육신적인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의 돌봄이 아니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던 가난함이었습니다. 속수 무책의 가난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원래부터 가난하셨는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부요하신 자”였습니다. 얼마만큼 부요하셨는가요? 무한히 부요하셨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부자라도 무한히 부요할 수는 없습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셨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3)
회사를 시작한 사람을 창업주라고 합니다. 삼성의 이병철씨, 현대의 정주영씨 같은 분입니다. 그 회사들의 소유주, 주인입니다. 창업주는 소유주로서의 당연한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없는 데서 있는 것으로 지으셨어요. 우주 만물이 얼마나 큰가요? 한이 없이 큽니다. 그 우주를 다 지으신 예수님이시기에 그 우주의 창업주, 소유주,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한이 없이 부요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렇게 부요하신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신 것입니다.“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이 말의 영어 번역은 “made himself nothing-NIV, emptied Himself-NASB”입니다.“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셨다, 완전히 비우셨다”입니다. 그 이상 더 가난해질 수 없을 만큼 가난해지신 것입니 다. 속수무책의 어린 아기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그렇습니다.“은혜”입니다. 스스로 선택하셔서 하나님이 가난한 피조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받거나 누릴 아무 자격이나 공로가 없는 데 그져 주신 축복입니다. 성탄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어떤 축복인가요? 부요해지는 복입니다.“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하심이라”입니다.“부요함”의 축복입니다.“너희로 부요하게 하려하심이라”,“너희”입니다. 성도님 한 분 한 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성도님 한 분 한 분을 지적하시면서“너를 부요하게 할려고 나의 아들을 가난하 게 했다”, 말씀하십니다, 믿으시지요? 아멘인가요? 성탄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무한히 부요하신 하나님이 성도님을 부요하게 하시고져 인간 역사 속에 딱 한 번 만 있는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린 아기로 말구윳 간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요즈음 미국에서 시작된 말이 있습니다,“1%: 99%” 입니다. 1%의 사람만 부자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 1%의 부자를 향해 지금 분노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 부자들이 너무 이기적이다 라는 지탄입니다. 자본주의 자유 경쟁의 시장 제도에서는 누구든지 부자될 수 있습니다. 또 부자되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자들이 부자될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자된 후에는 그 부를 자신 만을 위해 쓴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부자들도 많지요! 그런데 무한히 부요하신 우리 하나님은 어떤“부자”이신가요? 성도님을“부요하게 하려하시는”부자이십니다. 말만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그 마음과 뜻과 계획을 실천에 옮기신 부자이십니다. 성탄을 통해 보여주시는 부자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부요인가요? 팔자를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운명을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팔자나 운명은 동양적인 표현입니다. 지옥을 향해 달려갔던 발걸음을 천국을 향해 가도록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어두움의 권세에 사로잡혀 진짜 행복을 모른채 살아갔었는 데 하나님이 기이하고 놀라운 빛, 생명과 감사와 감격과 기쁨의 빛에 들어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사람의 그 어떤 것으로도 사거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영원한 영생의 부요함을 그냥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님은“도적이 왔다”고 증거하십니다. 그 도적은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마귀입니다.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는 마귀가 있는 줄도 모른채 살아가는 영혼들을 유혹하고 넘어지게 해서 종으로 만들어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내가 온 것은”, 영원히 부자이신 예수님이 가난하게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세주와 주인, 왕이라고 고백하는 심령들에게 생명을 주실려고 오셨습니다. 나아가 “더 풍성히”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영혼들에게 영생 구원을 주시는 것은 물론 이 땅위에서 부터 참된 만족과 행복을 더 풍성히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진짜로 부요하게 하여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보내준 이메일에 의하면 엔돌핀보다 4 천배나 더 효과가 있는 호르몬이 있다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어주신 우리의 몸, 참 오묘한 하나님의 걸잘품입니다. 그 걸작품 속에 하나님은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비결도 넣어놓으신 것입니다. 엔돌핀은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없애는 효과를 내는 호르몬 입니다. 그런데 그 엔돌핀의 4 천배의 효과를 내는 호르몬이니 놀라운 것입니다.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입니다. 곧 우리 몸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요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이돌핀이 우리 몸에서 언제 생겨지는 가입니다. 엄청난 사랑에 빠졌을 때,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굉장한 감동을 받았을 때라고 합니다.“엄청난 사랑, 새로운 진리, 굉장한 감동”은 과연 무엇인가요?
“내 죄 사함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 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 길이요 주의 피로 씻었네…”(210 장)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구원의 은혜입니다. 가난해지심으로, 베들레헴
말 구윳간에 나시기 까지 가난해지심으로,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그 몸을 내어놓으시기까지 가난해지심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놀라운 영생 구원의 은혜입니다. 성탄은 예수님이 그토록 가난해지셨기에 나의 모든
죄가 다 사함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되었구나, 그 감격과 감사 때문에 기쁨이 충만한 때입니다.
그“굉장한 감동”이 성도님들의 가슴속에 꿈틀거리기를
간구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질병이나 연약함을 완전히 물리치고도 남는 다이돌핀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부요함인가요?“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롬8:17) 큰 부자의 자녀가 물려받는 유산은 큽니다. 부자의 아들이기에 그 아들이 불려받는 유산도 크고 부요합니 다. 그런데 성도님은 누구인가요? 물려받을 유산이 없어서 아 쉬움을 느끼는가요? “하나님의 후사요”, 하나님의 그 무한한 부요를 누릴 상속자입니다.“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예수님이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해지셨어요. 그 이유는 성도님을 위해서입니다. 성도님으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부요를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그리스도 예수 안에서…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갈4:7,엡3:6)
하나님의 무한한 부요함의 유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하나님의“약속”입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약속입니다.“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1:4)“…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지금 물질면이나 건강면이나 살아는 환경이 힘들고 어렵다고 여겨지는가요? 삶의 여러 중압감이 너무 무겁게 마음과 감정을 짓눌러 온다고 느겨지는가요? 기억하고 믿읍시다, 성도님은 이미 부요해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부요한 상속을 누릴 부자입니다. 예수님이 가난해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예수님이 참 좋으신 주님입니다. 성탄하신 그 예수님으로 인해 감격하고 감사하고 기쁨에 넘쳐나서 다이돌핀이 충만한 새로워진 피조물로 늘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