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선언(No Guilty!) 로마서 8장 1-4절
수년
전입니다. 저가 뉴져지 어느 법정에 갔습니다. 어느 집사님을 도우기 위해서입니다. 그 분은 연세가 좀 드신 분이었습니다. 교통 사고를 당했습니다.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는 데 교통 순경이 억울하게 잘못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만 좀
상한 사고였습니다. 설령 자신의 잘못일지라도 보험 회사에서 상대방에게 수리비를 지불하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은 큰 비용을 주고 변호사를 샀습니다.
목사인 저까지도 법정에서 도와주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인생 기록에 “Guilty,
유죄”라는 기록을 남기고 싶지않은 그 분의 심각하고도 간절한 바램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하루를 전부 법정에서 보냈는 데 드디어 판사가 선고를 내렸습니다, “무죄,
No guilty”. 그 때 연세드신 그 집사님이 얼마나 기뻐하든지,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오늘 성경 로마서
8장 1절입니다.“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성경 구절의 강조는 “없다”입니다.
영원히, 확실히 없다, 입니다.
무엇이 없는가요? “정죄함, condemnation”입니다. “정죄함”은 법정에서 판사가 선언하는 유죄
선고와 그 선고의 집행입니다. 교통 티켓으로 인해 “유죄”라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죄입니다.“영원히 무죄다”라는 선포입니다. 사람의 선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대 심판자, 판사 중에서도 가장 높은 판사,
한 번도 잘못된 판결을 내리실 수 없는 영원히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내리시는 판결입니다,“정죄함 이 없다, 무죄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이 있습니다,“죄짓고는 못산다!”죄 짓고, 그 죄가 드러나지 않기에 죄 짓지 않은 것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는가가 문제입니다.“평안히,
복되게, 기쁨과 만족과 감사가 넘치게 사는가”입니다.
세개의
법정이 있습니다: 사회
법정입니다. 검사가 고발하고 변호사가 변호하며 마침내 판가사 판결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법정은
종 종 잘못 된 판결을 내립니다. 양심
법정입니다. 비록 겉으로 나타나는 판결이 없을지라도 이 법정에서 무죄가 선언 안 되면 그 가책은 말로 다 할 수 없도록 괴로움이 큰 것입니다. 하나님
법정입니다. 대 심판자 하나님이 판결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 판결은 결코 잘못될 수 없고 또 영원합니다.
그러기에 세상 법정의 판결이나 양심의 가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법정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히9:27)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영원한 진리인 성경의 주장입니다,“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정하지
않을려고 해도 그것은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입니다.
그 속에 저와 성도님들, 우리 모두가 다 포함 되어있습니다. 비록 세상의 법정이나 양심의 법정에서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법정에서 죄인이 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루에 평균 한가지의 죄만 짓는다고 가정합시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일년이면
365 가지, 십 년이면 3,650 가지,
70년이면 25,550 가지의 죄입니다. 70년을 살았을 경우입니다, 법정에서 판사가 25,550 가지의 죄가 있는 피고에게 어떤 판결을 내려야하는가요? “유죄” 입니다. 더우기 하나님 법정에서 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성도님 한 분 한 분을 향하여 무죄라고 선포하신다면 그것은 영원히 좋은 것입니다. 영원한 축복입니다. 그것보다 더 크고 좋은 축복은 없습니다.“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성경은 오늘 이 시간 우리 하나님이 성도님 한 분 한 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으시는가요? 하나님의 법정에서 영원히
“무죄”라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 함이 없나니”, 이 로마서
8장 1절은 성경을 요약하는 구절입니다. 누구이든지 꼭 들어야하는 복음입니다. 영원한 복이 되는 기쁜 소식입니다.
입양된
자녀들은 자라날 때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아픔과 염려가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픔은 나를 낳은 부모, 특별히 어머니가 왜 나를 버렸을까, 입니다. 큰 아픔입니다.
염려는 양부모님이 혹시라도 나를 버리지 않을까, 입니다. 미래의 안전에 대한 불확실한 감정이 괴롭히는 것입니다.“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 말씀은“결코 버림받지 않는다”
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결코 버리거나 잊거나 등한히 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두 아들을 둔
한 아버지를 소개합니다. 둘째 아들이 불효 막심하게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데 유산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갔습니다. 얼마 못되어 모든 돈을 다 날려버리고 굶어죽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큰 못을 박는 상처를 남기고 떠나 와서
이 신세가 되었지만 이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겠다, 그 길만이 살 길이다, 그렇게 정신을 차렸습니다. 방탕의 길로 도망쳤다가 돌아오는 아들, 그 아들을 지금까지 결코 한 순간도 잊어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달려나가
돌아오는 아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당장에 아들의 권리를 회복시켜주고 나아가 너무 기뻐서 아버지가 큰 잔치를
엽니다. 아버지께로 돌아온 아들은 비록 큰 죄를 저질 렀으나 회개하며 돌아왔기에 결코 아버지가 정죄하지 않습니다,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으로 부터 어떻게 무죄라는 선언을 들을 수 있는가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 때문에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공로가 나의 모든 죄의 값을 다 지불하였다, 그렇게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죄 없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사람이 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죄 없으심을 내것으로 인정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3절)
“율법"은 그것을 다 지켜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예를 들면 십계명입니다. 10가지 계명중 9 개는 지켰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연약함이 있습니다. 1 개는 못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9 개라는 다수를 지켰으니 괞찮다,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1 개를 못지키면 전체를 다 못지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약2:10) 그러면 하나님이 십계명과 같은 율법을 왜 주셨는가 입니다.
전체를 다 못지킬 것을 아신 하나님인데 말입니다.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율법이라는 거울을 들여다 보니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출발은 의사 선생님의 진단대로 병이 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처방대로 치료를 받고 약을 먹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시고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예수님 안에 있는”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모든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에 합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 예수님 안에 있기를 시작했을 때 이미 정죄는 끝난 것입니다. 영원히 끝난 것입니다.“…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니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예수님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세가지의 놀라운 일이 이미 일어난 것입니다, 그 세 가지는 이미 영생을 얻은 것이고, 심판이 끝난 것이고, 그리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회교
나라 모로코에서 선교사님이 한 모로코 남자에게 전도를 할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글을 모릅니다. 전도가 말 만으로는 부족함을 깨닫고 글을 모르는 그 남자를 위해 선교사님이“글 없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검정색, 빨강색, 흰색,그 리고 황금색의 넉 장으로 된 책이었습니다. 첫
장인 검정색을 보여주었습니다,“선생님, 모든 사람은 이 검정색 처럼
다 죄라는 세력으로 새까맣게 되어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둘째 장인 빨강색을 보여주었습니다,“그런데 예수님이 이 빨 강색 처럼 죄 없는 붉은 피를 죄인들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져 다 흘려주셨습니다.”셋째 장인 흰색을 보여주었습니다,“그래서 우리가 이 흰색 처럼 모든 죄가 깨끗이 다 용서함
받은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 장을 보여주었습니다,“이 황금색은 천국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그 죄가 다 씻기워진 사람은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얼마 후 그 남자가 임종을 맞이 한 순간에 “글 없는 책”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의 부인이 흰색의
장을 펴서 주었습니다. 그 남자가 책을 받아들고는 빨강색의 장을 펴서 자기 가슴에 얹으며 웨쳤습니다,“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렇게 예수님 을 주님으로, 구세주로,
영원한 왕으로 고백하고 찬송하며 임종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우리를 모든 죄의 세력으로 부터 해방시켜주었습니다. 그리하여“생명의 성령의 법”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곧 영원한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백성되게 하신 것입니다.
무죄
선언인“결코 정죄함이 없는 영원한 축복”을 받은 우리, 죄의
세력에서 영원히 해방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가 어떻게 살 아야하는가요? 마귀의
꾐을 말씀과 기도로 물리쳐 이겨내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질 때, 또 범죄할 때, 바라는 바 선을 행하게 되지 못할 때,“그것봐, 별수
없지.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야…”, 그렇게 공격해 옵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언해야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인 로마서
8장 1절에서 하나님이‘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을 믿는다, 그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죄의식이나 지나친 가책을 늘 이겨내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죄 용서함을 받았으니 기뻐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18절에서 기쁨과 감사
사이에 무엇이 놓여있는가요? 기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할 때 기쁨과
감사를 누리며 유통 하게됩니다.
나아가
우리를 해방시켜 영생을 살게한 예수님의 이름을 드높이며 증거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한 가지, 예수님의 이름만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기를 열망할 때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모든 능력을 반드시 주십니다.
5월호 “생명의 삶”에 실린 어느 분의 간증입니다.“내 인생의 행복”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노후는 참
힘들다. 육신이 약해져 기운이 없고 마음도 약해져 자연스레 마음속에 억울함과 섭섭함이 쌓인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황량함은 육신의 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내
나이 73세, 무엇이 나로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게할까?
새벽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나면 자식 걱정과 노파심으로 얼룩진 내 마음이 맑게 갠다. 사람이 줄 수 없는 평강으로 밝아지고 힘없고 부정적이던 내 영 혼이 춤을 춘다. 그러면
외치고 싶다. 물동이 버려두고 뛰어나가 외친 사마리아 여인 처럼‘와
봐! 여기야! 여기에 길이 있어’라고 말이다.‘믿는 자의 배에서 흘러내리는 생수의 강(요 7:38)이 이런 것일까?'...”
나이가
젊건 많건 힘들고 마음 상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영혼이 춤을
추며 여기 길이 있어” 라고 외치기 원하는 그 은혜와 축복의 삶이 성도님들의 삶이기를 간구합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는"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이 주시는 그런 구원의 감격과 신바람으로 달려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