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고난                                                                  로마서 8 18-25

필립 얀시라는 휼륭한 저술가가 있습니다. 그 분이 쓴 여러 권의 책은 믿음 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있습니다.“내가 고통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Where is God when it hurts?)”라는 그 분의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선물”. 선물인데 원하지 않는 선물입니다. 고난이 그 선물입니다. 고난이나, 고통, 환란, 괴로움, 아픔, 어려움이런 것은 예외 없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물론 정도나 종류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현재 자신이 경험하는 고난이나 고통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서 당해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고통이나 고난의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마음의 상처나 아픔입니다. 정신적인 괴로움입니다. 영적인 고통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이지만 영적으로 당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겉으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육신적인 고통이나 고난입니다. 그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고통학이라는 분야도 있습니다. 고통을 덜어주고 나아가 이기도록 도우는 일입니다고난이나 고통은 사람의 외적 조건을 초월하여 공통적입니다. 많이 가진 자나 적게 가진자, 다스리는 자나 다스림을 받는 자젊은이나 나이가 많은 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옛날이나 오늘이나 고통이나 고난은 범 세계적으로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이 현세를 산다는 것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것이 고통이나 고난입니다고통이나 고난은 당하는자에게 원인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당하지 않을 수 있지만 부주의나 사고나 실수나 끊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나 저지르는 죄 때문일 수 있습니다또한 주어지는 고난이나 고통입니다. 본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거쳐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욥이 당한 고난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욥의 고난은 아주 컸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은 욥이 전혀 기대하거나 바라거나 예비하지 못했습니다. 섭리적인 것입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도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17 세에 종으로 팔려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나 힘 밖에서 그냥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고난도 섭리적인 것이었습다또한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나 고통입니다. 믿음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겪는 고난입니다. 믿음의 길이 아니었으면 당하지 않을 고난이나 고통입니다. 이북이나 중국, 이락 같은 회교 나라에서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이 당한 고통이나 고난은 아주 많고 컸었습니다. 바울 만큼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도 없습니다고린도 후서는 바울이 당한 고난들을 이렇게 소개합니다:“…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고후 1:8-9)“…환 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Riots)과 수고 로움과 자지 못함과…”(고후6:4-5)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였으며…”(고후 11:23-27)  그래서 Johannes Schneider라는 분은 누구든지 바울 이야기를 쓰려면 그의 고난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고난이 사람에게 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도 있다고 이렇게 증거합니다,“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2 절 입니다. 고난이나 탄식의 우주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바울이 오늘의 성경 로마서 8 18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난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 고난을 이겨 낼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그 고난을 오히려 더 큰 유익과 축복의 기회로 바꾸어서 이 현세를 고난 때문에 더욱 뜻깊고 의 미있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많은 시편을 기록한 다윗도 시편 119 71절에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증거합니다. 고난이 유익하다, 그렇게 확실히 믿으면 고난이 아무리 클지라도 이미 이겨낸 것입니다.

사실 믿음은 고난이나 고통이나 속상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오히려 유익으로 바꾸는 힘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그런 믿음으로 성숙시켜가야겠습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평소 때, 고난이 없을 때 보다는 고난이 있을 때 참 믿음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겪을 때 그 고난을 오히려 유익하게 바꾸는 힘으로 우리의 믿음을 사용해야겠습니다.

한국에 단군교라는 종교가 있습니다. 그 교의 교주를 하다가 예수님을 믿게 된 김혜경씨라는 분의 간증입니다. 그 분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서울 시내에서 용한 역술가(점쟁이)로 활동했습니다. 그 시절에 그의 고객들 중 상당 수가 크리스찬이었습니다. 무슨 사고가 터지거나 고통, 환난, 고난이 닥치면 크리스찬이라는 사람들이 자기에게로 달려 와서, 자신이 용하다는 점쟁이니까, 많은 돈을 내고 점을 치고 갔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 창세기 부터 요한 계시록까지를 관통하는 한 큰 내용은 고난입니다.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들, 성도들, 교회에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고난의 이유를 자세히, 온전히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사람에게 왜 고난이 있는가, 성경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고난의 이유보다는 고난을 통해 얻는 유익이 크다고 강조합니다. 그러기에 고난 당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고난을 어떻게 대하는가고난에 대한 태도와 반응이 중요함을 가르쳐줍니다. 고난이나 환난이 있다고 빠른 걸음으로 점쟁이에 게로 달려가는 것,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 시는 반응이나 태도, 그것이 우리가 꼭 터득하고 실천해야할 중요한 믿음입니다.

고난이 있을 때 먼저 생각하여 비교한 후 확신하는 것입니다. “생각건데, logizomai”, 18절이 이 말로 시작됩니다. 이 말은 여긴다, 판단하다, 계산하다, 목적하다의 뜻인데 본문에서는 계산을 한 후에 내가 판단한다입니다. 무엇을 계산하고 판단하는가요? “나타날 영광입니다. 영광이 앞날에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과 비교하여 계산을 해보는 것입니다.

예컨데 사업을 하는 분들은 계산을 해봅니다. 10불에 물건을 사왔는 데 얼마에 팔아야하는 가, 여러가지 비용이나 일한 댓가 등을 계산하여 팔 값을 정하는 것입니다. 밑지지 않고 이익이 있어야 사업을 계속해서 하게되는 것입니다.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 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계산 해보니까 이 현세에서 받는 환난이나 고통은 비교할 수 없도록 크고 영원한 영광을 얻게한다는 고백입니다. 곧 큰 이익이 남는 사업과 같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함이니라."(벧전1:5-6)

나아가 인내하는 것입니다. 참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3-25절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기에 성령이 주시는 인치심과 모든 은사와 구원의 기쁨과 감격 과 감사들입니다. 그런 영원한 영적인 복을 맛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줄 수 없었던, 예수님이 약속하셨던 평안과 능력입니다. 그런 것들을 받고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는 에피타이져와 같습니다. 결혼 잔치나 축하연에 가면 처음 부터 주된 식사가 시작 안됩니다. 먼저 입맛을 돋구는 음식들이 준비되어있습니다. 그런 에피타이져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주된 식사가 아닌 것입니다. 먼저 맛보라고 준비된 것입니다. 조금 참으며 주된 식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는 장차 나타날 영광이 있습니다. 그 영광은 이 현세의 어떤 것과도 비교가 안되게 영원히 좋고 영원히 아름답고 영원히 빛나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바라보며 고난이나 고통을 참고 견디어내는 것입니다.

1914 27명의 영국 남극 탐험대가  Sir Ernest Shackleton을 대장으로 남극 부근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를 150km ( 93miles) 쯤 앞에 두고 빙벽에 갇혀버렸습니다. 배가 난파 되었습니다. 79 일 간을 햇볓을 볼 수 없었습니다. 식량도,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새클턴 대장은 추위와 배고픔과 피곤과 절망의 고통속에 있는 대원들에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큰 소리로 외치게 했습니다,“내일 우리는 반드시 구조 된다!”대장의 말을 듣고 대원들이 생각했습니다: 내일 구조될 때까지 오늘을 살아 남으면 된다, 살아 남을려면 오늘 우리가 할일은 무엇인가? 우선 물과 식량이 필수이다, 그리고 체온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얼음을 녹여서 물을 만들자, 낚시 기구로 물고기와 물개, 바다 표범 등을 잡아 식량을 확보하자, 잡은 동물의 가죽을 벗겨서 말렸다가 태워 몸의 체온을 유지하자. 그렇게 하루, 하루, 매일 매일을 참고 기다리며 소망의 줄을 부여잡았습니다. 하루 이틀, 탐험 대원들이 대장의 말을 들으며 계속 참고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27 명 모두 다 구조되었습니다, 1 개월이 지난 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 어떤 소망이나 희망보다도 확실한 소망은 산 소망인데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주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고 이루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고난일지라도 이겨내는 능력을 주십니다, 기어코 우리를 도우셔서 승리자로 세워주십니다.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하십니다. 나타날 영광을 확신하여 바라보기에 현재의 모든 고난을 다 이기며 달려가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 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