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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유익 / 디모데전서 4장 1-10절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딤전4:8) 오늘의 성경인 이 구절은 두 가지를 비교합니다.“약간의 유익”과 “범사의 유익”입니다. 약간의 유익도 없는 것 보다는 좋습니다. 그러나 “범사에 유익”은 참 좋습니다.“모든 것을 위해 유익하다(profitable for all things -NASB)”, ”모든 것에서, 그리고 모든 면에서 유익하고 값어치가 있다”(useful and of value in everything and in every way-Amplified) 입니다. 그렇게 유익한 것은 모두가 바라고 원합니다. 영 혼 육에 유익하고, 나를 위해서도 유익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유익하고, 현세에서도 유익하고 내세에서도 유익한 것입니다. 총체적으로 유익한 것입니다. 두 번째의 비교입니다, “육체의 연습”과 “경건”입니다.“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육체의 연습”은 곧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몸의 건강은 중요한데 그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은 필요하고 유익합니다. 그런데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건강을 위한 운동이 유익하기에 좋은 데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경건”입니다. 경건의 유익은 그 어떤 유익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경건”이 무엇인가요? “경건”은“敬-공경할 경, 虔-정성 건”입니다.“정성을 다 해 공경함” 입니다. 누구를 그렇게 공경하는가요? 성경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정성을 다 해 공경함이“경건”입니다. 하나님을 드높이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이고 주인이라는 고백이 인격과 일상의 생활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예수님의 사랑과 평강과 기쁨과 인내와 온유와 겸손과 자 비와 오래 참음과 절제입니다.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경건입니다.
장로교의 시작자 요한 칼빈은 경건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며 주인으로서 두려워하고 경외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불순종하거나 거역하는 것을 죽음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이다.
“범사에 유익”인 경건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먼저 소극적으로 주의하고 피해야하는 것들입니다: 1.결코 완전해져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성도인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완전하심의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십자가 공로를 의지할 때 하나님이 흠 많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하게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2. 결코 자연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약간의 유익이 있는“육체의 연습”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가요? 아닙니다. 운동 선수들이 시합에 나가기 전에 피 땀 흘리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사람의 본래의 속성인 육신이 경건을 방해하고 거스리는 힘이라고 증거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6-8) 태어날 부터 가지고 있는 육신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경건입니다. 그 경건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육신의 생각, 육신의 본성, 육신의 힘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범사에 유익한”경건을 이루고져 적극적으로 힘써야할 일들 입니다. 1.믿음에서 떠나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어떤 이들이 믿음에서 떠나…”(1절)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처음 부터 믿지 않고 산 것이 아니라 믿다가 그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구원받는 믿음보다는 일상을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하고 가깝게 가꾸어가는 힘 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증거하는가,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 성경이 증거하는대로 과연 그런 분이신가를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윗의 간증입니다,“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핌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16: 2, 34:8-10)“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주님이 곧 복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주님이 주시는 무엇이 복이라고 단정합니다. 물론 주님이 주시는 구원이나 영생이나 평강이나 위로나 기쁨이나 소망이 복이지요. 그런데 다윗은 주님이 곧 복이라고 증 거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으로서의 속성이 복이라는 것입니다.“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그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입니다. 맛은 입으로 음식을 먹을 때에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그 말씀이 주는 힘과 기쁨과 위로가 얼마나 큰가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곧 복이기에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게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가장 좋게, 다 채워주시는구나!”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렇게 경험하며 사는 것이 곧 참된 경건입니다.
3.양육을 받는 것입니다.“믿음의 말씀과 네가 쫓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라.” (6절) 재주가 뛰어나도 양육을 받아야 일등가는 선수가 됩니다. 운동 선수가 양육인 연습을 받을 때의 자세가 어떠한가요? 참피언이 되고 일등을 하고 상 받음을 바라보기에 힘들어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성도인 우리는 어떠한가요? 운동 선수만큼이라도 양육받는 일에 힘을 다해 참여하는가요?
몇 십년 전 남아 공화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때는 인종분 리가 철저히 지켜졌습니다. Holy Church of Zion이라 이름하는 원주민 흑인 교회가 성찬식 이전에 세족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예배에 뜻하지 않게 한 백인이 참석했었습니다. 세족식에 그 백인이 마르다라는 흑인 여성도 앞으로 갔습니다. 무릎을 꿇고 정성을 다해 그 여성도의 발을 씻겨줍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깜짝 놀랐습니다. 발을 씻어주는 그 백인 노신사의 말 입니다,“이 일로 나는 당장 남아 공화국의 대법원장 자리에서 파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르다의 발을 기쁨과 감사로 씻어줍니다. 마르다는 내 집에 노예로 살았습니다. 내 아이들의 발을 수 백 번 씻겨주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본을 따르지 않으면 나의 믿음은 참된 경건이 아님을 깨닫고 깨달았습니다. 드디어 오늘 나의 믿음을 실천하니 너무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성도님 한 분 한 분, 우리 모두, 범사에 유익한 경건의 사람들로 승리하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