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의 인도, 양의 행복                                                                23 1-6, 요한복음 10 10-16

 시편 23 편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목자와 양의 관계에 비교된다고 가르쳐줍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 기록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는 목동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러기에 목자와 양의 관계를 몸으로 익혀 잘 았았습니다. 그 목자와 양의 관계를 사용해서 하나님과 나,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해줍니다.

한국에는 양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도 양들을 많이 기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나라에는 양들이 많았습니다. 양에게는 특징들이 있습니다양은 순합니다. 동물들 중에서도 양 다른 동물을 공격하거나 해치지 않는 동물입니다. 순하기는 한데 양은 또한 방어 능력이 매우 약합니다. 맹수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양은 자신을 방어하지 못합니다. 방어능력이 없으면서도 고집이 동물이 양입니다. 동료 양들을 떠나 혼자 자기 길로 가기를 잘합니다. 혼자 있으면 결코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제길을 갈려고 합니다.  양은 그런 특성을 가진 동물이기에 목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양들에게는 목자가 생명과 같습니다. 목자가 없거나 목자를 따르지 않으면 방황하기 쉽습니다, 위험합니다, 그리고 푸른 풀이나 물이 부족하여 배가고파 아주 고생하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생명을 잃게도 됩니다. 양에게 절대적으로 제일 요한 것은 목자입니다. 양의 모든 것은 목자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다윗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을 통해 사람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오신 예수님이 오늘의 말씀, 요한복음 10 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이라고 증거하십니다.  우리 모두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은혜와 복을 더욱 풍성히 누리며 널리 유통할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나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노라”, 11, 15절입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지 않아도 아주 괞찮습니다. 사실 양들이 목자를 위해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양을 기르 목적은 양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목자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러기에 선한 목자입니다. “목숨입니다. 전부입니다성도님들, 뭐니 뭐니해도 죽는 것은 가장 심각한 일입니다. 그래서 모두 겉으로는 어떻게  말하건 간에 속으로는 죽지 않기 원합니다. 그런데 죽지 않는 사람은 사람도 없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는 것입니다. 무리 아까워해도, 아무리 아쉬워해도, 아무리 놓치않을려고 내려놓고 떠나는 것이 죽음입니다. 전부를 내려놓는 입니다. 예수님의 목숨입니다. 예수님의 전부입니다. 전부 버리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제물로 바쳐드린 것입니다. 양인 우리의 값을 지불해 주시기 위해 하나님 앞에 전부 속죄의 제물로 바치신 것입니다.   

어느 심리 연구소에서 사람의 자존감이나 건전하고 올바른 체성, 내가 과연 누구인가를 바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식물을 통해 실험을 했습니다 개의 같은 화분에 같은 흙을 담아 햇볕이나 공기가 같이 들어오는 곳에 두었습니다. 화분에 같은 씨들을 심었습니다. 심은 연구원이 하루에 번씩 번째 화분에 심겨진 씨앗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대로 흙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울 없어! 싹이 난다고 해도 말라 죽고 말거야!”   번째 화분의 씨앗을 향해서는 사랑스럽 다정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확실히 싹을 틔우고 라와서 아름다운 꽃을 반드시 피울거야!”  3주가 지난 번째의 화분에서는 여러개의 식물들이 예쁘게 올라와서 튼튼히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번째 화분에서는 두개, 아주 시들 시들하게 겨우 싹이 올라 오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도님들은 누구이신가요? 예수님이 목숨 버리시기 까지 사랑하여주시는 양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 목숨을 바치실 정도로 귀하고 소중한 영혼입니다. 그러기 이제는 성도님 자신이 자신을 향해 ,  “나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귀한 존재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시기 까지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양이야!” 하고 확신있게 속삭여 야합니다. 때로는 소리로 그렇게 웨쳐야합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언제나 최선으로 돌보시는 선한 목자입니다.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니.”(10)  “양의 목자이신 우리 예수를 영원한 언약 피로 죽은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13:20-21)  예수님은 양의 목자이십니다. 들의 모든 것을 최고, 최선으로 돌보셔서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하 누리도록 인도하시는 선하신 큰 목자이십니다. 그래서 시편 23 편은 양의 인도할   부족함이 없다 증거합니다. “푸른 쉴만한 물가 인도하시는 선하고 목자이십니다. “ 초장, 쉴만한” 물가는 육적이며 영적인 모든 필요입니다. 필요를 아시고 풍성히 공급해주신다는 뜻입니다. 만이 아닙니다, 양들인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현세를 통과하여 지나갈지라도  받음 두려워하지 습니다. 선하고 목자이신 예수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전하게 보호,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몇년 전에 미국에서 관광단의 사람으로 이북을 다녀 온 어느  한국 신문 기자의 경험담입니다. 판문점의 북쪽 편에 안내되어 갔을 김일성 기념비가 있었다고 합니다. 비는 김일성이 심방마비로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서명한 문서를 기념하 위해 세운 기념비입니다. 무슨 문서인가 하면 통일문서라고 합니다.  “위대한 수령이 얼마나 통일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말해주는 것이지요” 하고 안내자가 설명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통일입니다. 최근에 이북의 국방위 부위원장인 오극렬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조국 해방전쟁(6.25 사변) 다하지 못한 조국 통일 위업을 반드시 성취하라는 것이 김정일 위원장의 령이다.”  “통일” 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통일이 되는 입니다. 이북이 말하는 통일은 물론 공산주의 적화 통일입니다. 기자의 결론은 이북은 지금 6.25 때 와는 완전히 다르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베트콩이 미군을 이긴 비결은 지하터넬을 뚫어서 미군을 교란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북은 하터넬을 통해 남한후방을 교란하는 사이 전견적으로 기갑 단이 휴전선을 넘는다는 게릴라전과 정규전의 혼합작전 ”  승리한다는 전략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이북이 남한을 흡수하는 공산주의 적화 통일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위해서 기도합니다사랑하는 성도님들, 전쟁은 누구에게 속한 것이라고 성경이 거하는가요? 하나님, 목자이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개인과 교회의 목자이심은 물론 대한민국의 목자로  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현세를 지날 전능하신 지혜의 지팡이와 능의 막대기로 반드시 한국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받아야 할 영혼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 선한 자입니다.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 하여야 터이니 저희도 음성을 듣고 무리가 되어 목자에게 있으리라”, 16절입니다.  “가 라는 말이 구절 중심되는 강조점입니다. “” , 선한 목자이신 예수 님이   우리”  우리 교회 안에 “아직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  내게”, 예수님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원해주기를 원하시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저희도 음성을 듣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을 받게하는 것입니다. 리하여   무리”  우리 교회에서   목자에게 있으리 ”,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경배하며 드높이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은 내가 인도하여야 터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인도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런데 예수님은 영이신 하나님입니다. 영이신 예수님이시기에 구원하실 영혼들을 인도하는 데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을 사용하여 구원하시기로 뜻하신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선한 목자 예수님의 마음이고 소원이고 뜻입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의 소원과 뜻을 이루어드리도록 합심해서 도하십시다.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버려주심으로 양인 우리를 구원해주신 선한 목자 예수님입니다. 양으로 살아가는 필요 모든 것을 아시고 공급해주시는 선한 목자입니다. 세가 아무리 불안하고 온갖 유혹이나 위험이 있을지라도 막대기와 지팡이로 친히 보호해주시는 선한 목자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 예수님은 인도하여 구원해주실 많은 영혼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영혼들을 인도하여 구원하시도록 우리 모두가 귀하고 복되게 쓰임받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