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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받는 사람, 승리의 하나님(2010.8.8) 야고보서 1 장 13-18절
수년 전에 미국 택사스 주의 중산층 이상 잘 사는 백인 부자 동 네에서 청부 살인 음모가 드러났었습니다. Houston 근처의 Channelview 라는 타운이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큰 돈을 주어 이웃의 어머니를 죽여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살인을 청부한 부인은 백만 장자의 아내이며 한 침례교회의 오르간 반주자였습니다. 백인이며 교양이 있고 전혀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교인이었습니다. 그 부인이 이웃이며 같은 교회 성도인 어머니를 죽일려고 한 것입니다. 두 어머니에게 중학교를 다니는 딸들이 있었습니다. 그 딸들이 같은 학교 운동 응원단 (Cheer Leader) 에 뽑히는 경쟁을 벌였습니다. 자기 딸의 경쟁 대상 여학생의 어머니를 죽일려고 한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믿기 힘든 일을 꾸미게 된 이유는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질투였습니다. 질투하 는 마음이 얼마나 무서운 시험인가를 깨닫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전혀 부족함이 없이 잘 살며 더우기 교회에서도 모범되게 봉사하는 사람도 욕심으로 생겨난 질투심의 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욕심과 질투심으로 시험에 빠지면 그 파괴력이 얼마나 큰 가를 보게 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인 오늘의 본문이 그렇게 시작됩니다. “시험”은 딸이 응원단에 뽑히기를 원했 던 그 어머니에게 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피부 색깔의 다름이나, 소유의 많고 적음이나,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많이 알거나 적게 알거나,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옛날이나 오늘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시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 입니다. 교회 밖에도 있고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그 “시험”은 세 번이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넘어뜨릴려고도 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 이 “시험”은 유혹입니다. 야고보 서 1장 2절이나 12절도 “시험”을 말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그 “시험 ”은 시련이고 연단이고 테스트(Trial, Test)였습니다. 구원해주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더 좋게 만드시고 더 좋은 것을 주시고져 훈련시키는 과정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 이 말씀으로 시작되는 13절 이하의 “시험”은 유혹(誘惑, Temptation)입니다. “유혹”은 “마음이나 생각이나 감정을 어지럽히고 헷갈리게 하여 나쁜 길로 가도록 이끄는 힘”입니다. “시련이나 연단이나 테스트”는 그 궁극적인 목적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유혹”은 파괴, 파멸, 멸망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유혹에 넘어가면 그 결과는 허무하고 허탈하고 후회하는 것 뿐만 아니라 허물고 썩어져서 마침내 죽고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 그런데 그 “시험”, 곧 유혹이 없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항상 어느 곳에서나 유혹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수도를 하는 한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살기 힘든 환경인 광야에서 수도에 전념하는 그 수도사의 모습이 모든 사람 들에게 감동이 되고 도전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수도사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습니다. 오랫 만에 친구를 만났으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한창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수도사에게 한 가지 소식을 전해주 었습니다, “자네 축하하네, 이런 곳에서 자네가 수도에 전념하니 아마 주님이 크게 축복해 주시는가 보네, 얼마 전에 자네 동생이 추기경이 되었다네!” (추기경은 천주교에서 교황 다음의 위치입니다.) 그 소식을 전하는 친구가 수도사의 얼굴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수도사의 얼굴에 참기 힘들어하는 억울함이나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올라와 얼굴이 갑자기 찡그러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성도님들, “시험”은 항상, 어느 곳에든지 있습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4절입니다. “끌려 미혹되다”는 사냥이나 낚시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짐승이나 물고기가 미끼에 이끌리에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에 끌 려”, “욕심”이라는 미끼에 껄려셔 잡혀 죽게된다는 뜻입니다. “시험”은 자기 욕심에 끌려서 미혹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5절입니다. 욕심에 이끌리면 죄를 짓게 됩니다. 죄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성경은 그 열매를 사망이라고 증거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롬6:23)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은 오늘의 성경을 통해 우리들에게 강조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욕심은 유혹이 되어 죄를 짓도록 이끄는 힘이 된다, 그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욕심은 할 수 있는 대로 무찔러 이겨야한다.
이 철이라는 연세 의료원장의 가르침입니다. 요즈음 소위 잘사는 나라에서 가장 많이 유행하는 성인병에 관한 진단입니다. 그 분이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2004년에 상영된 “슈 퍼 사이즈 미”라는 도큐멘터리 영화를 소개했습니다. 그 영화는 32 살의 남자가 패스트 푸드만 먹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에 대한 조사입니다. 불과 한 달 만에 고혈압, 중독증상, 감 의 급격한 변화 등의 이상증과 함께 체중이 급격히 불어났습니 다. 콜레스톨 수치도 높아진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 중에서 가장 다스리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식욕인데 그 원장의 결론은 식욕 이라는 유혹을 다스리는 가장 효과있는 방법은 식사 전의 감사 기도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 기도를 드리면 먹을려는 음식이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축복의 선물이라고 깨닫게 되는 데 그럴 경우 식욕을 조절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6절 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할 때 나타내보이는 반응들입니다: 1)환경 때문이다, 환경이 나쁘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2)다른 사람 때문입니다. 그 다른 사람의 제일 첫 번째 대상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입니다. 3)하나님 때문이다.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때문”이라고 쉽게, 빠르게 단정하는 것입니다. 환경 때문이다, 다른 사람 때문이다, 하나님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벌써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서 속은 것입니다.
사람의 원조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항하여 범죄 했을 때 그들이 어떻게 했는가요? 아담은 하와 때문이라고 범죄의 원인을 하와에게로 돌린 것입니다. 가장 치사스럽고 수치스러운 변명입니다. 그러면 하와는 어떻게 했는가요? 뱀 때문이라고 나님께 항변했습니다. 아담, 하와 모두, 궁국적으로는 “하나님 때문이다” 입니다, 하고 하나님에게로 공격의 화살을 쏜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향해, 당신이 저 여자 를 나의 갈빗뼈를 떼어서 만들어 나의 배필로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핑계하고, 변명하며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하와는 하나님을 향해, 창조주 당신이 저 뱀을 저기 두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에게로 모든 이유와 핑계를 돌린 것입니다.
시험을 당하는 주된 원인을 오늘의 성경은 무엇이라고 강조하 여 가르쳐주는가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4 절 입니다. 욕심입니다. 시험의 원인이 내 속 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자리잡은 욕심이 시험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받을 때 먼저 내 자신을 살펴보아야합니다. 나의 욕심때문이구나, 하고 내 자신이 욕심에 이끌리고 있음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래야만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성경의 하나님께 나아오기 위해서는 성경이 보여주는 대로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를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3절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여 자녀삼아주신 성도들을 시련은 하십니다, 테스트는 하십니다, 더 좋게 만들어주시고 더 좋은 것을 허락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최선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주시는 과정이 시련이고 연단이고 테스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시험”, 곧 유혹하시지는 않으 십니다. 성경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영원히 선하시고 참 좋으신 인격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기에 유혹인 시험을 하지 않으심은 물론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다리십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 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7절 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 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모든 것입니다. “내려온다”는 현재 분사인데, 끊임없이, 항상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이런 짧은 시를 썼습니다,“하 님은 차거운 존재다, God is so cold!” 만약 그렇다면 빛이나 따뜻함이나 이 세상의 온정이나 사랑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사람은 기분에 따라 결정이나 행동을 하게도 됩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은 너무 감정적이어서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하는 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감정적인 사람 처럼 기분이나 감정에 결코 좌우되는 분이 아닙니다. 영원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시험은 언제, 어느 곳에 든지 있습니다. 유혹이 되어 우리를 넘어뜨릴려고 기다립니다. 그러기에 시험은 물리쳐 이겨야합니다. 이기는 길은 하나님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선하심을 기억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의 증거는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 와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설령 시험에 넘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은 일으켜 세워 회복시켜주십니다. 모른다고 세번이나 저주하면서 까지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를 부활하신 예수님이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갈릴리 호수에 그물을 던져 고기잡이로 되돌아 간 베드로, 시험에 넘어져 제자로서의 인격이 실패했던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회복시켜주신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은 모든 시험을 이기신 승리의 주님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 33)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히13:8) 예수님, 우리의 승리의주님입니다.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여 주십니다.
기억하고 꼭 실천하십시다, 앞으로 욕심이 나의 마음 문을 두드릴 때(When the the corrupted human desire knocks the door of my heart) 예수님이 그 문을 열게 하십시다.(Let Jesus open the door) 유혹이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염려가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두려움이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의심이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예수님이 열게 하십시다, 승리의 주님, 예수님이 반드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승리의 주님, 예수님의 능력을 온전히 힘입어 모든 시험을 물리쳐 승리하도록 성령께서 주장해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