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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난 지혜 / 야고보서 3장 13-18절
차를 운전하는 성도님들, 운전을 하다가 차선을 바꾸시지요, 꼭 바 꾸어야 할 경우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토론토 의과대학의 도널드 레들마이어 박사는 내과 전문의사 선생님이지만 사람의 심리 연구에 도 힘써왔습니다. 1999년 그 분은 자동차 차선 변경과 수명의 상관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차선을 자주 바꾸면 교통 사고 위험이 3 배나 높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차선을 자주 바꾸는가, 그 이 유는 항상 옆 차선이 더 빠른 것 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그 분은 설명합니다. 그 분의 연구 결론입니다, 차선을 자주 바꾼다고해서 더 빨리 가는 것도 아님은 물론 사고 위험만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지혜입니다, 차선을 자주 바꾸는 운전 습관의 성도님들은 사고없이 오래 살려면 오늘 부터 결심하십시다, 내 차선의 속도가 좀 느려보이고 옆 차선의 속도가 좀 빨라 보여도 차선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구체적인 삶의 지혜입니다. 운전하면서 행여 뒤쳐질까 불안해하며 차선을 자주 바꾸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불안해하고 걱정에 휩싸여 참된 축복을 풍성히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오직 위로 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오늘의 말씀 13,17 절입니다. 지혜입니다. 성경은 지혜는 참된 행복을 누리는 데 필수적으로 중요하다고 증거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 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잠3:13-15) 지혜는 금보다 진주보다 더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현세를 살면서 얻고 누리기를 원하는 그 어느 것 보다도 지혜가 더 귀하고 중요하다는 강조입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잠4:7), 복된 일생을 사는 데 지혜가 제일이므로 그 지혜를 얻으라고 하나님이 권면하십니다.
어느 며느리가 연로하신 시어머님을 효성을 다 해 아주 잘 모시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도 며느리를 친 딸 못지 않게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그런데 이 고부지간에 한 가지만은 뜻이 합쳐지지 못했습니다. 며느리는 모범된 성도로 교회를 힘을 다 해 잘 섬겼습니다. 시어머니는 교회와는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시어머니는 본인께서 나이가 자꾸 들어가자 한 가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 다니지 말라고 아무리 달래고 권해도 저 며느리에게 도무지 먹혀들어가지 않고, 그렇다고 교회 다니는 것 외에 저 며느리가 흠잡을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며느리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이 그 시어머니가 주일 예배에 참석한 것을 보고 너무 기뻤습니다. “모친님, 주일에 교회에 오셔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목사님의 이 인사를 듣자 마자 그 시어머니가 한 대답입니다, “목사님, 내가 죽을 날이 가까워오는 데 가만히 보아하니 죽은 후에 며느리가 내게 제사는 아주 안 차릴 것 같고 그럴 바에야 내가 며느리 자식 따라가는 것이 낫지 않겠소?” 그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며느리는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내며 시어머님을 효성을 다해 잘 모신 것입니다. 참 좋은 지혜입니다. 시어머니는 단지 며느리 자식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영생의 복을 선택한 지혜였습니다.
지혜가 무엇인가요? 단순히 타고난 총명함은 아닙니다. 많이 아는 큰 지식도 아닙니다. 여러가지 경험으로 얻은 상식도 아닙니다. 갈고 닦아 쌓은 기술도 아닙니다. 머리를 잘 굴리는 잔꾀는 더더우기 아닙니다. 지혜는 지식이나 기술, 경험, 총명, 재능을 바르게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력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겸손과 정성과 열심을 다해 진실히 사랑하고 섬기고 의지하는 성도에게 허락 해주시는 분별력과 실천의 능력입니다. 순간적인 것보다는 영원한 것을 택하고, 겉으로 거품처럼 잠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세적인 것보다는 영원한 만족과 보람을 택하고, 현재있는 그대로 자족하고, 설령 어려움이나 고난 중에서도 매일을 감사와 기쁨으로 소망 중에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지혜입니다, 지혜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혜이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 으리니.”(마7:24)
토마스 길로비치라는 코넬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메달 수상자들의 시상식 표정을 분석했습니다. “메달의 심리학 연구”입니다. 이 연구에 의하면 동 메달 선수가 은 메달 선수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동메달의 경우 자칫 메달을 받지 못할 뻔도 했는데 동 메달이라도 받았으니 동메달 자체에 감사히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 메달을 딴 선수들은 감사는 커녕 금 메달을 놓친 것 때문에 억울해 하고 아주 속상해 하며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운동 종목에서 전 세계에서 두 번 째인데도 만족을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물론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아닙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은 이런 지혜는 “독한 시기와 다툼”이라고 증거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 부터 내려온 것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 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15-16절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이 있었습니다. 서정주씨입니다. 그 분은 한국적인 마음과 정서와 감정과 느낌을 가장 한국적인 말로 은근하고도 감칠나게 아름답고 섬세하게 표현한 언어의 마술사 같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불교인이었습니다. 불교 대학인 동국대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가 어느 분의 간증을 읽었는 데 읽다가 보니 그 서정주씨의 아들인 서 윤이라는 집사의 간증이었습니다. 서 윤집사는 미국에 유학와서 부인을 만나 부인의 전도로 1983 년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후 제일 먼저 부담이 되는 것은 불교 신자인 아버지 서정주씨였습니다.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995년에 서정주씨가 다니려왔다가 귀국하는 길에 그 아들 서집사가 아버지 가방에 한영 성경을 몰래 넣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불교신자인 서정주씨가 아들이 넣어준 성경을 여러 번 통독했다는 것입니다. 1996년 다시 아들 집에 방문온 서정주씨가 어느 날 아침 식탁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얘야, 이 세상에서 내 죄를 용서하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아들 서집사의 간증의 결론입니다, “아버님의 영혼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 데 그 응답으로 지혜를 주셔서 아버님으로 하여금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오직 위로 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17절입니다. “성결”입니다. 세상속에 살지만 이 세상의 영향을 이겨내는 힘입니 다. “시기, 다툼, 요란함” 등을 이겨내어 이 세상 사람과는 좀 다른 마음과 인격을 보여주는 것이 성결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뱀 같이 지혜로워라, 그리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화평”입니다. “독한 시기나 다툼”과는 정 반대입니다. 용서하고 용서받는 너그럽고 열린 마음입니다. 그리하여 할 수 있는대로 모든 사람과 화목한 관계를 지켜가는 것입니다. “화평케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18절) 성도는 화평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 누리는 축복은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마5:9)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구원받은 성도의 특징은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관용”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탓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지만 용서하고 참아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다 주장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생각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 나님이 주시는 지혜입니다. “양순”입니다. 가까이 하기 쉬운 성품입니다. 13절에는 “지혜의 온유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온유함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과 모습의 특징은 온유함입니다. 성도가 야생마 처럼 거칠고 사납다, 성도로서의 참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온유의 예수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이 현세에서도 구체적인 복을 누리며 살게된다, 누가 그런 복을 받는가요? 온유한 자입니다. “긍휼과 선한 열매”입니다. 어렵고 힘들고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진실히 동정하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마5:7), 우리의 가장 시급한 일은 하나님으로 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긍휼은 긍휼히 여기는자만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 장 10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주신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한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어느 부부가 타 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어린 4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새로운 지역에서 교회를 찾아다녔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여럿 데리고 낯선 새 교회를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많이 신경 쓰이는 일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후 한 분이 먼저 대화를 시작해왔습니다. 또 어린 자녀들 때문에 충고를 들어야하나, 하고 바짝 긴장이 되었습니다. 대화를 시작한 교인의 말입니다, “자녀들이 참 귀엽군요. 낯선 교회에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부모로서 쉬운 일이 아님을 저도 압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교회가 성도님 부부는 물론 자녀들이 참석하게 되어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편벽이 없는 것”입니다. 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법” 을 너무 따집니다. 어떤 교회는 “구제” , "선교" 만을 너무 강조합니다. 교회는 이것도, 저것도, 모두 예수님의 이름을 드높이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면 골고루 실천해야하는 예수님의 몸인 공동체입니다.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부터입니다. 저와 우리들로 부터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거짓이 없이 참되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 모두가 “위로부터 난 지혜”의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성결, 화평,관용,양순, 긍휼과 선한 열매, 그리고 편벽과 거짓이 없는 인격입니다.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성령께서 성도인 우리 속에서감동하시고 도와주셔서 맺혀주시는 열매들입니다. 곧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과 모습입 니다.
미국에서 100 대 교회가 발표되었습니다.(Outreach 격월 잡지가 Lifeway Research와 공동으로 조사 연구) 수 많은 교회가 미국에 있는 데 그 교회들 중에서 100대 교회가 부흥하게 된 비결을 조사한 것입니다.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교인수 늘리기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도록 모든 촛점을 맟춘 것이다.”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개인으로, 교회로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누리고 증거하고 드높일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위로 부터 난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엡1:8)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2:3) 모든 지혜의 보화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지혜로 삼읍시다, 지혜이신 예수님이 다스려 주시도록 의지합시다,럴 때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예수님이 위로부터 난 지혜를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주시는 그 지혜로 승리하며 달려가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