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큰 은혜야고보서 4 1-10

이 지구 위에서 현재 제일 장수하는 남자가 있습니다. Walter Breuning이라는 미국 시민인데 올해 나이가 114세입니다. 1957 년에 부인인 Agnes가 세상을 떠난 후 50 년 이상을 홀애비로 혼자 살아 가고 있습니다.자녀도 없습니다.그럴 경우 사는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그런데 생일을 맞아 인터뷰하는 그 분의 모습이 아주 정정하고 건강과 생기가 넘쳐나 보였습니다. 기억력도 아주 생생했습니다. 인터뷰하는 사람이 그렇게 장수해 오면서 쌓은 삶의 지혜가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그 분의 대답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만족한 삶을 살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친절하게 할수록 자신에게 좋습니다. 매일 매일을 좋은 날로 살아가세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난 한 주간을 좋은 날들로 살아오셨는가요?“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오늘의 말씀, 6 절입니다.“더욱 큰 은혜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은혜인가요?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매일 매일을, 하루 하루를, "더욱 큰 은혜"의“좋은 날로살아가는 것입니다. 

먼저 "더욱 큰 은혜"는 욕심을 욕심으로 바로 깨닫는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인 성경 말씀 1-3절에는정욕욕심이라는 단어들이 나옵니다. 1,3절에는정욕”, 2 절에는욕심입니다. 둘 다 비슷한 뜻입니다. "정욕, 욕심"은“이기적인 강한 바램이나 현세적인 쾌락"입니다. 바라고 또한 재미를 누리는 것 자체는 괞찮습니다. 바라는 것이 없으면 진보나 성장이나 발전이 아주 적습니다. 바라고 열망하고 소원하는 것이 있기에 이루어지고 발전하고 성장, 성숙합니다그리고 우리는 목석이 아닌 사람이기에 재미나 즐거움이 있어야합니다그런데 문제는 이기적이고 현세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욕심의 결과가 무엇이라고 성경은 가르치는가요?  절입니다,“너희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 으로 좇아난 것이 아니냐?”“싸움, 다툼은 없어야합니다. 그런데 있습니다, 어느 곳에든지 있습니다. 가정에도, 일터에도, 또 교회에도 있습니다. 나라 사이에도 있습니다.“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 보서 1 15 절입니다. 욕심은 죄를 짓게합니다. 대부분의 싸움이나 다툼 죄입니다죄는 무엇인가, 결국 죽게 만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지구 위의 세상이나 개인을 지배해오는 모습입니다. 다스려지지 않은 욕심이 가져온 결과는 결국 허무하게 망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인 우리도 넘어져 종종 시험에 빠집니다. 그 원인은 기도 응답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내 기도는 안들어주실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해주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가 빨리 응답 안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을 향한 분노의 마음이 가득차 있습 니다. 하나님이 기도 응답을 해주시지 않는다고 단정하기 때문입니다.“…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구함이라”, 2-3절입니다.  얻는 길은 기도 로 구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얻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입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잘못 구하는 기도입니다. 내 지금의 판단으로는 최고, 최선의 간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도 최고, 최선인가. 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최고, 최선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모는 늘 최고, 최선을 주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부모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최고, 최선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 응답이 느리다고 생각될 때는 정욕으로 쓸려고 구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기도해 볼 수 있어야합니다. 더욱 큰 은혜, 그 은혜는 나의 구하고 원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최고, 최선의 것을 하나님이 꼭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욕심이 욕심인 것을 알아 나의 욕심 보다는 하나님의 최고, 최선을 구하는 은혜, 더욱 큰 은혜입니다.

어느 휼륭한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 스승으로 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는 한 제자가 한가지 질문을 했습니다,“스승님, 내 마음 속에는 항상 두 고양이가 싸움을 합니다,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입니다. 흰 고양이가 항상 이기는 비결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그 비결이야  어려운 것이 아니지, 어느 쪽 고양이를 더욱 잘, 계속해서 먹이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지. 흰고양이가 이기기를 원하면 계속해서 흰 고양이를 더욱 잘 먹이게!” 이겨서는 안되는 욕심이라는 마음속의 검은 고양이를 우리는 지금까지 더 잘 먹여온 것은 아닌가요?

더욱 큰 은혜는 성령님이 시기하기 까지 사모하는 사람이 내 자신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줄로 아느냐?” , 5절입니다.  성령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시고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 성령님이 어디에 계신다고요? “우리 속" 입니다. 우리의 몸을 집으로 삼으시고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신비로운 사실입니다. 피조물인 우리에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고 황송하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입니다성령님이 우리안에 내주하시는 증거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 3절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확실하고 분명하게 시인하는 것은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증거입니다. 성령님이 감동하시고 도우시지 않고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시인하거나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라고 분명히 고백하고 시인하시지요? 그렇다면 성령님은 지금 아멘, 라고 분명히 시인하고 고백한 성도님안에 내주 하시는 것입니다. 그 성령님이 단지 내주하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모하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이 있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사모하십니다, 얼마나 사모하시는가요? 시기하기 까지”  입니다. 더 이상 클 수 없는 사랑과 관심으로 사모하십니다. ,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피조물인 나같은 죄인을 그렇게 사모하시는가요?  성령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내가 누구인가를 가장 잘 아십니다. 욕망이나 욕심에 지배되지 않기를 원하지만 때로는 욕망이나 욕심의 힘에 그만 넘어진다는 사실을 성령님은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하나님이신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도우시는 능력을 온전히 힘입기를 기다리십니다. 성도님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들여서 사용하여 승리하기를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도님은 누구이신가요? 성령 하나님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의 감동과 도우심을 늘 힘 입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더욱 큰 은혜입니다.

더욱 큰 은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8절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누구를 가까이 하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정치인을 가까이 하면 정치를 하게됩니다. 사업가를 가까이하면 사업을 하게됩니다.  정직한 자를 가까이 하면 정직하게 됩니다. 선을 행하는 자를 가까이 하면 선하게 됩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을 가까 이하면 참된 믿음을 갖게 됩니다. 누구를 가까이 하는가는 일생을 좌우하는 일입니다.“근묵자흑(近墨自黑)”, 검은 색에 가까이 하면 검게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가를 더욱 잘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하리이다.”(73:28) 무엇이 복인가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옛날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제사장 뿐이었습니다. 제사장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되었습니다. 그런데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십자 가위에서 귀한 피를 다 흘려주셔서 길이 열였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지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다 흘려주신 예수님입니다. 그 흘려주신 피 값으로 우리의 죄 값을 다 갚아주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갈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 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4-16)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는 것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우리는 이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기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그 무엇 보다도 필요합니다. 누구의 도움인가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그 돕는 은혜를 얻는 길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라”, 이 복을 우리 모두가 더욱 풍성히 누릴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항해하던 배가 그만 좌초되었습니다. 바다 속의 모래 언덕에 걸려서 멈춘 것입니다. 아무리 배를 움직일려고 애를 써도 워낙 큰 배라, 속수 무책이었습니다. 그 때 선장이 한 가지를 생각해 내었습니다.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모래톱 위에 걸린 것은 썰물 때문이다, 밀물 때를 기다려보자. 시간이 지나 밀물 때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배가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밀물의 힘이었습니다. 목적지 항구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밀물의 힘입니다. 더욱 큰 은혜입니다. 우리의 최선이 필요없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의 최고, 최선의 노력이나 힘으로도  열리지 않고 풀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일들이 참 많습니다. 밀물의 힘이 큰 배를 다시 움직이게 하듯이 더욱 큰 은혜,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을 받읍시다.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었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4: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