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늦은 비의 축복/ 요엘 2 장 23-30절, 야고보서 5장 7-8절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오늘 성경 말씀, 7절입니다. 거두어 들이는 수확의 때를 바라보고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비가 적게 오는 편입니다. 가뭄도 자주 자주 듭니다. 그 비도 대부분 일년에 두 번 몰아 옵니다. 이른 비입니다. 10-11월에 오는 비인데 “요레”라고 부르는 봄비입니다. 그 때가 농부가 씨를 뿌리는 때입니다. 이른 비가 와야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늦은 비입니다. 3-5 월에 오는 비입니다. “말코스”라고 부르는 가을 비입니다. 거두어들이는 데 필수인 비입니다. 이 늦은 비가 와야 결실이 풍성해집니다. 씨를 뿌리는 10-11월에도 비가 와야 합니다. 그러나 거두워들이는 3-5 월의 늦은 비가 오지 않으면 결실이 헛되게 끝나게 됩니다.
특별히 성경에서 비는 성령의 강림하심을 상징합니다. “비가 온다”는 성령 하나님이 임하셔서 기이하고 놀랍고 특별한 일을 이루어가시는 것을 말합니다. 이른 비의 대표적인 일은 사도행전 2 장의 사건입니다. 성령님이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불의 혀처럼 뜨겁고 바람 처럼 강하게 임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성도들이 다 성령 하나님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 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그 사실을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이 가 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사도행전 2장 17절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 구약 요엘서 2장 28-30절의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령님은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 같은 특별 한 사람에게만 임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신약 시대에는 “모든 육체”, 곧 모든 예수님 믿는 사람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시기에 성령님이 임한 모든 가슴들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사랑과 섬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서로에게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예수님을 전하고 증거했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전심으로, 힘을 다하여, 전적으로 서로 사랑하고 나아가 전도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님이 이른 비로 임하셔서 예수님의 교회가 이 땅위에 시작 된 것입니다. 이른 비의 축복입니다. 농부가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농사의 시작을 위해서 이른 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심고 가꾼 것을 거두어들이는 결실도 중요합니다. 늦은 비입니다. 3-5 월에 늦은 비가 와야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들입니다.
늦은 비는 성령님이 이른 비 이후에 계속해서 이루어가시는 예수님의 일들입니다. 교회를 시작하셔서,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가시는 영적 부흥이 늦은 비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절대 주권적인 뜻과 목적을 두시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한국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셀라 두 선교사를 파송하셔서 한국 교회의 터를 놓게하셨습니다. 성령님은1907 년 평양에서 놀라운 영적 부흥 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1970 년 대에 한국 교회에 큰 양적 부흥을 허락하셨습니다. 늦은 비의 축복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이 늦은 비의 축복을 오늘 여기 모인 우리들을 통해서도 이루어가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성령 하나님이 늦은 비의 축복을 허락해주시도록 우리 모두가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농부로 부터 구체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농부가 주는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최선을 다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최선과 기다림, 그 두 가지는 우리 모두가 성령님의 늦은 비의 축복을 누리는 비결입니다. 농부는 먼저 힘을 다해 논이나 밭을 갈아서 씨 뿌릴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기 전에 땅을 갈아 엎어 흙덩이를 깨어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늦은 비의 축복은 농부가 땅을 갈아 엎듯이 우리의 마음의 밭이 준비되도록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회개는 흔히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양심으로, 사회 법적으로 저지른 잘못을 공개하고 뉘우치거나 합당한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회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늦은 비의 축복을 위해서는 더 근본적이고 깊은 회개가 필요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 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성령의 선물을 받는 길을 베드로는 회개라고 증거합니다. 그 회개는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온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주인과 왕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회개는 주인 바꾸기입니다. 누가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는 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과연 누구를 내 인생의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왔는가요? 단지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입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구를 몇 바퀴, 그리고 남한 반도를 남쪽 끝에서 휴전선까지 걸어서 다닌 "오지 탐험가", 지난 수년간은 NGO 구호팀장으로 "Global Village" 를 "Global Home" 이라고 웨치는 "바람(Wind에서 Hope로 바뀜)의 딸", 한비야씨가 지은 지구 Home을 밟아온 세계 긴급구호현장 보고서입니다. 그 책에서 자신이 케냐에서 만난 한 40 대 중반의 안과 의사를 소개합니다. 그 안과 의사를 만나려면 케냐의 대통령도 며칠을 기다려야할 정도로 유명했습니다. 그런 안과 의사가 풍토병 환자들이 많은 아주 가난한 마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환자들을 만지며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안과 의사인데 왜 이런 위험한 곳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일을 하고있는가요? ”한비야씨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기술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것은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까지 우리의 가슴이 뜀으로 일하고 수고한 적이 있는가요? 있다면 무엇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했는가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으로 사실 때 우리의 가슴을 뛰게합니다. 진정으로 신바람 나기에 휘파람 불며 달려 가게 하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베드로나 바울을 비롯한 모든 초대 교회 교인들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성령님의 늦은 비로 충만한 사람의 가슴과 삶은 가슴이 뛰기에 달려가는 것입니다.
농부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땅을 갈아 엎은 후에 씨를 뿌리고 가꾸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가을 철의 풍성한 결실을 바라거나 기대하는 농부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늦은 비의 축복을 위해서 우리가 뿌려야할 씨는 말씀입니다. 말씀이라는 씨를 뿌린 후에 그 씨를 가꾸는 길은 기도와 섬김입니다. 성령님이 늦은 비로 임하셔서 주시는 복은 말씀과 기도와 섬김 을 통해서입니다. 성경 말씀 충만이 성령님의 충만을 받는 길 입니다. 나아가 말씀을 마음 속에 간직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나의 마음과 생각과 감정과 결정을 온전히 다스려주세요, 그리하여 나의 뜻 보다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렇게 영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님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슴이 불타 올라, 가슴이 뛰게하여 그 사 랑으로 섬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바로 알고 깨닫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흔히 방언을 말하고 넘어지거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으로 성령 충만함을 잘못 되게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런 특별한 은사나 체 험을 주시기도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충만은 곧 예수님의 마음과 사랑과 섬기고 증거하는 능력으로 충만함입니다.
농부는 밭을 갈아 엎어 씨를 뿌린 후에 땀을 흘리며 정성과 최선으로 가꿉니다. 그런데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기다리는 것입니다. 인내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늦은 비를 허락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날, 이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농부가 최선을 다하면서, 최선을 다한 후에, 늦은 비를 기다리는 그 마음을 알기 힘듭니다. 농부의 그 기다림은 참으로 간절합니다. 전적으로 맡겨드리며 하나님의 늦은 비의 축복을 온전히 기다 리는 것입니다.
농부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것입 니다. 그렇게 어리석은 농부는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로 구원 받은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데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요? 최선을 다해 성경을 읽고 기 도하고 또 섬기고 있는가요? 농부가 최선을 다하지만 늦은 비의 축복을 겸손히 기다리지 않 는 것은 아주 큰 교만입니다. 인간의 그 교만은 벽에 부닥치기 마련입니다. 인간의 최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류 역사 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한 번은 비죤을 보았습니다. 성전 동쪽의 문으로 부터 물이 흘러납니다. 그 물이 처음에는 발목만 적시는 정도였습니다. 또 물이 흘러나옵니다. 이제는 무릎을 적십니다. 계속해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허리까지 적십니다. 흘러나오는 물이 이제 넘치고 넘쳐서 헤엄을 치게 되었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감으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것이며…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 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 암아 나오리라…”(겔47:8-12) 성전, 성소는 교회, 우리 교회 입니다. 물은 성령님의 늦은 비의 축복입니다. 성령님의 늦은 비의 축복으로 수 많은 영혼을 살리고 그 영혼들이 예수님의 사람되게 하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 일을 성령님이 더욱 힘 차게 우리를 사용하셔서, 우리 교회에서 이루어가시기를 간절 히 간구합시다.
한국의 이원희라는 사업가가 5 여 년 전에 캘리포니아주의 Napa Valley에 포도원을 사서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Onda d’Oro 라고 이름하는 포도주인데 한국 돈으로 45만원에 팔린답니다. 곧 있을 G20 정상 회담의 만찬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관심을 끈 것은 그 포도주의 이탤리 이름 “온다 도로”입니다. 그 뜻은“황금 물결”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뒤집으면 “도로 온다”, 곧 부활의 상징입니다. 포도주가 황금을 가져오는 물결, 물일수는 결코 없습니다. 포도주가 결코 죽은 영혼을 살려 새 사람되어 가슴이 뛰게 사랑으로 섬기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성령님의 늦은 비의 축복인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만이 다시 살아나게 하는 능력입니다. 살아나기에 가슴이 뛰어 사랑으로 섬기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받고 또 받고 받읍시다. 간구하고 부르짖어 받읍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오직 예수님의 사랑, 기쁨, 평강, 소망, 능력으로 충만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