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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주신 결말/ 야고보서 5장 11절, 욥 42:10-17
“끝날 때 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It is not over until it is ov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운동 시합에서 처음에는 계속해서 지지만 나중에 가서 오히려 잘해서 이기는 경우 가 있습니다. 처음에 진다고 해서 기가 죽거나 포기한다면 진짜로 지는 것입니다. 끝날 때까지 인내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인내가 주는 승리의 기쁨이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여 자녀 삼아주신 우리가 인내하여 최선을 다할 때 좋고 아름다운 결말이 있도록 축복하시며 도와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지난 주 “The Seoul G20 Business Summit” (The Seoul G20 Summit과 더불어) 세계 지도자들이 서울에서(경주 모임 이후) 모였습니다. 세계의 Business , 곧 경제를 함께 잘 해결해 나가자고 의논했습니다. Business, 경제, 사업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 “본 죽”이라는 사업이 뜨고 있습니다. 죽을 전문으로 파는 사업체가 아주 빨리 성장하고 있습니다. 김철호, 최복이 부부 성도가 2002 년 서울의 대학로에서 시작했습니다. 죽 가게를 연 후 하루에 100 그릇은 팔아야 수지 타산이 맞는 데, 많이 파는 날에 스무 그룻 정도 밖에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어려움이 아주 많았습니다. 파산해야할 것 같아 보이는 형편을 여러 번 거쳐갔습니다. 그런데 창업 8 여년이 지난 지금 가맹점이 1000 여개, 매출 규묘가 2800억원(2800만 불)입니다. 그 비결입니다, 최복이 여사장의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그 여 성도는 어려울 때마다 성경 말씀 붙들고 기도로 하나님께 메달 렸습니다. 하나님이 기도에 놀랍도록 응답해주신 결과가 지금의 번창이라고 간증합니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빌, 밀란다 게이츠의 자선재단을 본받아 “본사랑재단”을 만들어 구제, 선교, 장학 사업에도 힘을 쓸 정도로 번창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40 대 후 반에 들어선 최복이 성도가 간증을 이렇게 결론 짓습니다, “한 번은 아이를 업고 친척 집에 돈을 꾸러 갔었습니다. 문전 박대와 큰 모욕을 당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날로 다시는 돈을 꾸며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평생 나눠 주고 베푸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 때 부터 이 기도는 제 삶의 중요한 기도제목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그 결말을 좋고 풍성하게 열매 맺어주신다는 산 증거입니다.
야고보서는 신약의 잠언, 곧 하나님이 주시는 구체적인 삶의 지혜입니다. 그 지혜의 중심이 인내라고 증거합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3) 믿음으로 사는 인생길에 때로 시련, 곧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왜 어려움들이 있는가요? 우리를 구원하여 자녀 삼으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눈동자 처럼 사랑하여주시고 돌보아 지켜주신다고 성경에 약속을 기록해주셨는 데 왜 성도들이 시련을 거쳐가게하시는가요? 그 어려움을 통하여 인내를 온전히 이루도록 인도하심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 그 인내로 인하여 하나님이 “온 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련은 하나님이 결말을 좋고 풍성하고 복되고 아름답게 이루어가시는 과정입니다. 야고보서 5장 7-10절에서 하나님은 특별히 농부와 선지자를 인내의 예로 들어서 “길이, 오래 참으라”고 인내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필수 요소임을 말씀해주십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은 구약의 욥을 예로 소개하면서 인내하는 성도에게 주님이 놀라운 결말을 반드시 허락해주신다고 증거합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욥입니다. 성경은 욥이라는 사람의 생애를 마치 세막으로 된 연극 처럼 보여줍니다. 제 1 막은 행복 그대로 입니다. 욥은 의롭고 흠이 없고 순전하기에 존경받고 흠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녀가 10명, 재산은 얼마나되었는가요? 욥기 1장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 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그 소유물은 양이 7000 이요 약대가 3000 이요, 소가 500 겨리요 암나귀가 500 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욥은 가축이 주업인 지역의 사람이었는 데 가축이 모두 11,000 마리였습니다. 거부였습니다. 억만 장자였습니다. 돈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전, 정직, 그리고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참 좋고 과히 모범되는 삶이었습니다.
제 2 막입니다. 그런 욥에게 큰 고난의 폭풍우가 휘몰아쳐 온 것입니다. 먼저 재산이 순식간에 몽땅 다 날라가 버렸습니다. 재산 뿐만이 아닙니다, 10명의 아들 딸들이 다 한꺼번에 죽어 갔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참거나 견디어내기가 심히 어려운 피부병에 걸렸습니다. 건강이 도망쳐가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물론 찾아온 세 친구들이 정작 꼭 있어주어야할 이웃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상채기에 소금을 뿌리듯, 욥의 마음과 감정을 휘저어놓았습니다.사납게 휘몰아쳐온 허리케인 앞에 깜박거리는 한 자루의 촛불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끝나버리면 너무 비참하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제 3막입니다. 사납게 휘몰아쳐온 그 폭풍우를 이겨내었습니다. 인생이라는 배가 금방이라도 침몰해버릴 것 같은 시련들을 이겨내고 평안의 항구에 도달한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 야고보서 5 장 11 절은 그것을 “주께서 주신 결말”이라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욥의 주인과 왕으로 주장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욥으로 하여금 그 모든 시련들을 이겨내고 도달하도록 축복하신 항구였습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결말”이라는 항구는 어떤 것이었는가요?
먼저 처음보다 갑절로 더 큰 복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 전 소유보 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14.000 과 약대 6,000 과 소 1,000 겨리와 암나귀 1,000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 았으며”, 욥기 42 장 10, 12-13절입니다. “욥의 곤경을 돌키시고”,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곤경을 돌이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과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아버지이십니다. 누구의 곤경을 돌이키시는가요? 성도님의 곤경입니다. “지금, 나의 곤경이 너무 크고 심하고 어렵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성도님이 계신가요? 믿으십시다, 욥의 곤경을 돌이키신 하나님이 성도님의 아버지이심을 믿으십시다,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욥처럼 인내 하십시다, 인내의 은혜를 간구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반드시 성도님의 곤경을 돌이켜주실 것입니다. 가축 수가 배입니다. 자녀도 10명, 먼저 하늘 나라에 가서 사는 자들과 합치니 자녀들도 배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결말입니다. 처음 복보다 더 큰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순간까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들도 참 많고 큽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앞으로 우리에게 주실 복들, 특별히 “하나님이 주실 결말”은 지금까지 와는 비교할 수 없이 더 크고 좋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최 고, 최선은 아직 오지 않았다” 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들 입니다. 그러기에 감사와 찬송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결말은 변화된 믿음의 인격입니다. 욥은 고난을 받기 전에도 괜찮은 사람이었습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실 욥만큼 한 사람들이 많다면 이 세상이 훨씬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괜찮은 욥에게 시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욥의 믿음의 인격이 정금같이 나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욥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단련을 거쳐갈 때 기도의 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욥은 믿었습니다, “아, 내가 지금 거쳐가는 이 단련은 하나님이 나를 잊어버리셨거나 모른채하시기에 당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반드시 주신다, 하나님이 뜻과 목적을 두셨기에 허락하시는구나, 이 단련을 통해 나의 믿음의 인격이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는구나!”
사랑하는 성도님들, 저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한 가지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괜찮은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작고 큰 어려움들을 지나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 게 하시는가요? “정금같이 나오리라”, 성도님의 믿음의 인격이 정금같이 나오게 하기시 위함입니다. “정금”입니다,예수님의 마음이고 인격입니다. 온유, 겸손, 용서, 인내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시고 겸손하시며 용서하시며 길이 참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온유, 겸손,용서, 인내는 자연적으로 우리 속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련이나 아픔이나 단련을 거쳐갈 때 “정금”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 중에서 “정금같이 나온 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시련을 거쳐갔습니다.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 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뵈옵나이다.”(욥42:5) 하나님이 주신 결말은 욥이 하나님을 마치 눈으로 보듯이 확실히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성경 말씀으로, 설교로, 성경 공부를 통하여 듣고 배워서 머리로 알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무엇인가요? 머리로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슴으로 뜨겁게, 확실하게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단련을 통해서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 하나니…” 인내로 단련을 이겨내는 것은 복입니다,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슴으로 체험해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81년에 천국에 가신 김정준 목사님이 계십니다. 김 목사님은 목사가 된지 3 년 만에 폐병 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주 젊은 나이에 마산 결핵 요양원에 가셔야 했습니다. 3 개월의 시한부 인생이었습니다. 그 결핵 요양원에서, 남은 3 개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은 응답을 실천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본인도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몸이지만 그 결핵요양원에서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을 실천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변기통을 집어주거나 음식을 먹여주는 일 등, 이웃을 위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김목사님을 한사코 말렸습니다, 목사님의 몸도 허약하니 제발 가만히 쉬라고. 그러나 김목사님은 쉬지 않았습니다, 그 요양소에서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몸으로 전하는 데 총력을 다했습니다. 그런 김 목사님에게 하나님이 주신 결말이 무엇이었나요? 3 개월이후, 죽었어야할 김목사님, 그 폐병이 온전히 낳았습니다. 온전한 치유의 기적이었습니다. 그 후 목사님은 몇 십년, 구약의 권위자로 한국 교회를 위해 귀한 헌신의 일생을 사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바울 사도가 기록한 성경 몇 구절을 인용함으로 맺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심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롬 8:18, 고후 4:16-18) 현재의 고난, 그리고 장차의 영광입니다. 그 고난과 영광의 비교입니다,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앞날에 우리가 누릴 영광은 현세의 고난보다 비교할 수 없도록 영원히 계속되고 또 영원히 크고 좋은 것입니다. 결말입니다. 주님이 주실 결말입니다. 그 결말을 바라보며 이 현세의 모든 시련, 단련, 고난, 환난을 욥처럼 이겨내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축원 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