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복을 누리게하는 감사 / 누가복음 17 11-19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나라 미국의 독특한 특징은 감사입니다. 감사로 출발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1621 11월 마지막 목 요일, 마사추세츠 주에서 청교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감사, 그 감사는 아직 황량하고 거칠었던 이 대륙을 미국이라는 나라로 만들어 온 원동력이었습니다그 때 청교도들이 감사를 드리게 된 형편은 지금 우리가 상상 하기도 힘들 만큼 열악했었습니다. 1620 9 29,영국을 출발해서 2 개월의 항해후 신대륙에 도착했던 102 명이 이듬해에는 반수 이상이 죽어갔습니다. 뉴잉글랜드 지방의 매서운 겨울 강추위, 굶주림, 괴혈병과 폐렴 등의 질병때문이었습니다. 살아남은 50 여 명이 거두게 된 농산물은 옥수수였습니다. 그렇게라도 살아남고 또 거두게 된 것 때문에 90 여명의 인디어들을 초청해서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예배였습니다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어렵고 힘든 형편과 자리에서 드린 감사, 하나님은 그 감사를 받으셔서 미국을 사는 후손들 위에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감사 하는 자가 되라주 예수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범사에 감사하라.”(3: 15,17, 살전5:18) 저가 37 년을 미국에서 몸으로 배워가고 있는 가장 으뜸되고 중요하고 귀한 것이 있는 데 그것은 감사입니다. 어느 분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50 개를 선별했습니다. 그 중에서 “Thank You!” 28 %위를 차지했습니다. 다수의 미국 시민들의 몸에 밴 말이감사입니다. 이 지구촌의 나라들 가운데 감사의 실천에 으뜸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올해의 추수감사 주일에 청교도들 처럼 우리 하나님께 마음과 뜻을 다해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로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어서 감사를 실천하는 이 미국 나라에서 우리를 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의 존귀하신 이름을 드높여 드리십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한 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촌의 외진 곳에 아프고 서럽고 외롭고 배고프게 살아가던 10 명의 문둥병자들이 있었습니다. 문둥병은 육신의 아픔도 컸었지만 마음과 정신적인 고통이 더 컸었습니다. 가족과 이웃으로 부터 완전히 떨어져서 지내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겨우 구걸해서, 혹은 가족이나 촌민들이 갖다 주는 음식으로 연명하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문둥병자였습니다.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17:12-13)

그들은 예수님은 못 고치시는 병이 없다, 나사렛 예수님은 병든자, 소외된자, 가난한자, 외로운 자들을 한 없이 긍휼히 불쌍히 여져주신다는 소식을 소문으로 들어서 알았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평소 때 한 번도 연습은 하지 않았겠지만 10 명이 가장 크고 화음이 가장 잘 된 한 목소리로 웨쳤습니다,“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고쳐 주소서!”“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제사장은 구약 레위기의 명령을 순종하여 문둥 병이 아직 그대로인지 혹은 고쳐졌는지를 판정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0 명의 문둥병자들은 반신 반의하며 제사장에게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이 나은 것입니다. 감짝 놀랄 축복입니다. 10 , 다 몽땅 문둥병에서 고침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에게 달려와서 감사했습니다오늘 이 말씀이 우리 모두가 감사하는 사람, 범사에 감사를 실천하는 가장 복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은혜와 능력을 공급해 줍 니다.

감사의 중요성입니다.감사는 벽에 던진 공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벽에 공을 던지면 그 공이 어디로 갑니까? 던진 내게로 되돌아 옵니다. 감사를 실천하면 그 감사가 더 놀라운 복을 가져옵니다. 감사의 효력과 유익은 아주 큽니다. 감사하는 자가 성공하고 감사하는 자가 건강하고 감사하는 자가 행복합니다.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면 참으로 행복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감사는 믿음의 가장 구체적인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불평, 불만, 원망, 짜증, 핑계, 변명합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믿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앞에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 :14-16)

문둥병으로 부터 고침받은 사람 10, 그 중에서 한 명 만이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문둥병자는 겉으로 비록 문둥병에 걸렸지만 그 마음만은 늘 하나님을 향해 열려있었습니다. 불치의 몹쓸 병인 문둥병에 걸려 이렇게 고생 하다니,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살아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쁘거나 악하지도 않은데 왜 이런 시련을 거쳐가야하는가, 그렇게 자신의 어려운 처지나 형편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문둥병이라는 최악의 형편에서도 그 마음의 중심은 하나님을 떠나거나 하나님께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참 좋으신 사랑과 긍휼과 자비를 믿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줄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고침받는 기적이 일어 났을 때 즉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나아가 직접 고쳐주신 예수님에게로 달려가 모든 것 보다 먼저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성경은 그 사람을사마리아인이라고 구별해 놓았습니다. 고침받은 나머지 아홉명의 유대인들과 비교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들로 부터 멸시와 무시, 차별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사마리아 사람만이 감사를 실천했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준이 무엇이냐를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감사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믿음을 제일 기뻐하시며 축복해주십니다.

한 여대생이 도서관에서 공부한 후 집으로 가다가 큰 교통 사고를 당했습니다. 탄 차에 불이 났었습니다. 나올 수가 없어서 차 안에서 그냥 불에 탔습니다. 뼈고 살이고 거의 다 무너졌었습니다. 겨우 목숨만 건졌을 뿐 아리따웠던 아가씨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었습니다. 7 개월 동안 수술만 11 번 했었습니다. 여전히 얼굴은 고릴라나 코끼리 모양이었습니다. 제대로 붙어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지선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몸은 불에 탔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믿음은 불타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을 감사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손가락이 하나만 남고 다 잘려나갔습니다. 엄지손가락 손톱이 딱 하나 성한 것으로 남았습니다. 그 하나가 10 인역을 다 하는 겁니다. 그 손가락 하나를 남겨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합니다. 막대기 처럼 되어버린 오른 팔, 휘어지지 않습니다. 항상 뻗어 있어야합니다. 팔의 관절이 구부러지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가 그렇게 귀한 줄 전에는 몰랐습니다. 남은 모습 이대로 하나님을 감사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은 사람, 그 사람만은 감사할 사람이다, 그런 사람치고 감사를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 중에서 감사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 소원이 뜻대로 이루어진 사람, 그런 사람들 중에서 감사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감사할 것이라고는 아주 적은 그런 사람, 마음의 중심으로 부터 감사를 실천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현세가 이 만큼이라도 살 맛이 나고 또 유지되는 가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감사하는 것은 참 좋고 귀한 것임을 압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사가 잘 실천이 안되는 것입니다. 왜 그 런가요? 감사의 이유 때문입니다. 감사할 만큼의 조건이 갖추어지면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를 실천하기 힘듭니다. 그 감사할 조건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요?  이 현세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그 욕심이라는 것은 감사할 조건을 계속해서 커지게 하고 불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끝이나 한이 없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붙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누구든지 감사를 실천할 수 있는 비결을 보여줍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감사입니다. 그 사람은 고침받은 것에 도취되어 고쳐주신 분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이겨냈습니다. 치유보다는 치유자를 잊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치유자 예수님에게 달려와서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의 조건을 받은 복의 크기나 양으로 삼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감사의 이유로 삼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도님들은 죄 용서함받아 하나님의 자녀되는 구원과 영생을 확실히 믿으시는가요?  그 구원과 영생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요? 오직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 공로로 구원받은 것을 확실히 믿고 고백하는 성도는 감사할 이유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예수님입니다.“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하며.”(5:20) “예수님의 이름”, 곧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나를 붙들어 승리하도록 인도하기에 범사에, 항상감사하는 것입니다.

뇌성 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한 마디의 말을 할려면 너무나 큰 고통을 거쳐가야 하는 일급 장애인인 송명희 성도의 감사입니다,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 거의 전부, 90% 이상이 없는 그 성도인데 어떻게 하나님이 공평하시다고 감사와 감격의 찬송을 드릴 수 있는가요? 오직 한 가지 이유,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 님이 그 성도의 전부이고, 사는 목적이고 이유이고 힘이고 기쁨이고 소망이고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7:17-19)  예수님의 마무리 축복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10 명의 문둥병자가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육신적인 건강의 회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로 와서 감사를 실천한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육신의 고침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축복이 주어졌습니다,“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영원한 구원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9 명의 유대인 문둥병 자였던 사람들은 육신의 고침받은 것 뿐입니다. 물론 육신의 고침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뜻하시면 언제든지 치유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육신은 나온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영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영혼은 영원한 지옥, 아니면 영원한 천국으로 갑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가는 영생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감사가 더 큰 은 혜와 복을 누리게 한 것입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띄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30:11-12) 다윗의 감사입니다. 다윗은 이 현세에서도 왕으로서 이스라엘 나라를 참 잘 다스렸습니다. 물론 연약하여 죄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오실 메시야, 구세주의 혈통이 되게하셨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메시야,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 니다. 영원한 복을 누린 다윗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으로 하여금 그런 복을 누리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다윗의 마음 중심이 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기 때문입니다사실 다윗이 기록한 시편들은 회개, 찬송, 그리고 감사가 중심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영영히 감사하는 다윗, 그 감사가 다윗으로 하여금 영원한 복을 누리게 했습니다.

 다윗 처럼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은 성도님의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기쁨으로 띄 띠우실것입니다. 감사입니다, 더 큰 복을 누리는 통로입니다. 우리 모두 다시 새롭게 감사로 승리하는 앞날 되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