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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과 경배의 성탄/ 마태복음 2장 1-12절
지난 10월 말, 미국의 해군연구소(NRL)가 우주선에서 밤에 찍은 한반도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너무나 분명하게 대조되었습니다. 거의 전체가 불빛으로 빛나는 남한, 그러나 북한은 거의 전체가 아주 캄캄한 어두움이었습니다. 평양 근처만 빛이 조그맣게 보였습니다. 불이꺼진 북한의 사랑하는 우리 동족들에게 올해 성탄에 소망과 평화와 축복의 빛이 비추어지기를 간구합니다. 서부전선 최전방, 북한과의 거리가 불과 2 마일도 못되는 곳에“애기봉” 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한국의 해병대가 지킵니다. 그 산 위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지난 7 년 동안 불이 꺼진 크리스마스 트리입니다. 올해의 성탄에는 그 크리스마스 트리에 다시 불이 켜집니다. 이북의 개성에서도 그 불 빛이 보여진다고 합니다. 그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 부분에는 사랑의 상징인 심장이 있고 그 위에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있습니다. 올해의 성탄에 그 십자가의 불 빛이 북한의 모든 동족들의 가슴에 소망과 평화와 행복의 빛으로 하나님이 비추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마태복음 2 장은 첫 성탄을 별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절) 별은 깜깜한 밤 하늘을 비추이는 빛입니다. 노천명 시인은 좀 오래 전 이렇게 읊었습니다,“나무가 항시 하늘로 향하듯이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갑시다.” 쳐다보고 걸어갈 별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인생길은 신바람납니다. 이 땅 위 현세의 형편과 처지가 어떠할지라도 이겨내고 승리하는 소망과 평화와 행복으로 그 별이 인도해 주기 때문 입니다.
지금 부터 약 2 천 년 전, 별의 인도를 따라 베들레헴이라는 이스라엘의 한 작은 마을에 도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주 아주 먼 길을 그 별 따라 왔던 순례자들이었습니다. 동방의 나라에서 온 박사들입니다. 하나님은 첫 성탄에 그들을 등장시키셨습니다. 성경을 읽는 모든 심령에 영원히 복된 성탄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동방으로 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마2:1) 그 박사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해서 오게되었는가, 입니다. 성경은“동방으로 부터”라는 말로 그들이 온 나라를 말해줍니다. 예루살렘이 첫 성탄 때의 서울이니까, 예루살렘의 동쪽에 있는 나라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그 “동방”이 바벨론 나라라고 결론짓습니다. 바벨론 나라, 지금은 이 지구 위에서 골치 아픈 문제꺼리가 가장 많 은 나라, 이락입니다. 회교라는 같은 종교인데 파가 다르기에 다른 파나 다른 종족을 무참히 죽이는 살인이 끊이지 않는 나라, 특별히 크리스찬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예배당에 폭탄을 터뜨려 크리스찬들을 죽임으로 자기 나라에서 내어 쫓는 나라, 사는 형편이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나라입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바벨론은 꽤 으뜸되는 면도 많았었습니다. 예를 들면 천문학이나 점성학이 아주 발달했었습니다.“박사”였습니다. 요즈음 처럼 별자리로 점을 쳐주는 점쟁이 정도가 아니라 그들은 왕의 비서관들로 높은 지위를 누렸고 또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 바벨론의 박사들이 어떻게 예수님이 메시야, 구세주로 태어나심을 알았을까, 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586년 전, 이스라엘인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망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많은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그 포로 중에는 유대인 엘리트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성경은 그 중에 한 사람을 특별히 소개합니다, 다니엘입니다. 한번은 느브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왕의 꿈을 해석할 사람은 “박사들” 이었는 데 어느 박사도 해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왕이 진노하여 모든 박사들을 죽일려고할 때 다니엘이 왕의 꿈을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세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으로 삼았으며.”(단2:48) “박사의 어른”, 곧 바벨론 나라의 모든 박사들을 가르치고 다스리고 관리한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기도와 성경의 사람, 선지자였으니까, 자연스럽게 성경의 말씀들로 박사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박사들이 성경을 알게 되고 성경의 핵심인 메시야가 오심을 대망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때가 차서 그 메시야가 탄생하는 곳을 찾아나서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성경을 가르쳐 끼친 영향은 참으로 크고 놀랍습니다.
어느 교회 주일 학교 교사가 어린이들로 하여금 어머니를 그리게 했습니다: 한 학생은 엄마를 모델로 그렸습니다. 항상 예쁘게 화장하는 엄마의 모습이 어린 자녀의 마음 속에 새겨진 것입니다. 다른 학생은 크리딧 카드를 긁는 모습으로 엄마를 그렸습니다. 그 엄마는 쇼핑을 좀 많이 한 모양입니다. 또 다른 학생은 성경을 펴놓고 읽는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자녀는 일생 성경을 읽는 엄마의 모습 따라 성경의 사람으로, 성경의 복을 누리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66 권의 성경을 갖지 못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백년이 지난 후 메시야가 탄생하는 곳으로 먼 길을 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메시야를 직접보고 경배하는 최고의 복을 누린 것입니다. 다니엘이 가르쳐준 성경의 영향이 그렇게 큰 것입니다. 성탄은 어떤 사건인가요? 하나님은 약속으로 주신 성경을 반드시 이루신다, 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700 여 년 전에 하나님이 주신 그 약속을 하나님은 때가 차서 이루신 것입니다. 베들레헴 말 구유에 성탄하신 예수님이 곧 임마누엘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기적의 축복입니다.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바벨론에서 베들레헴 까지, 먼 길이었습니다. 적어도 600-700 마일 거리입니다. 마차나 짐승이
여행의 수단이었습니다. 먼 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위험이나 외로움, 어려움들도 컸었습니다. 박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걸어왔습니다. 메시야 구세주를 찾아 경배드리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를 찾아 만나는 것을 위해 모든 다른 것은 제쳐둔 것입니다. 어떤 희생이나 댓가를
치르더라도 메시야를 만나야겠다는 결심이 승리한 것입니다. 믿음의 순례자로 먼길을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베들레헴 구유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믿어 얻는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롬10:10,13, 엡2:8) 영생 구원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얻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려주신 피의 공로로 나의 모든 죄가 다 용서함 받은 것을 믿는다, 그것입니다. 돈이나 자격이나 공로로 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영생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100 %의 선물입니다, 값으로 사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 구원이라는 선물을 믿음의 손을 내 뻗쳐서 내 것으로 받아 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위에 동정녀 탄생의 아기로 오셨기에 나 같은 죄인이 영생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영생 구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구원받은 크리스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간증 처럼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워가는 것입니다. 마치 동방박사들이 먼 순례의 길을 아무리 힘들고 어렵게 보여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갔듯이 하루 하루, 날 마다 숨쉬는 순간 마다 박사들 처럼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서 걸어나아가는 것 입니다.
한 사람이 거쳐갈 수 있는 가장 극심한 시련과 고난들을 이겨 승리한 분의 자서전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증거, Evidence not Seen”, 입니다. 1938년, 20 대 초반에 남편과 함께 파푸아 뉴기니아에 선교 사로 간 Darlene Deibler Rose입니다. 그 곳에서 선교하는 중 1942 년, 일본 군인이 미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포로로 붙잡았습니다. 남편과 생이별을 해야했습니다. 3 년 간 정글 지역에서 일본군의 포로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겪었습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고통의 세월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에 남편은 하늘 나라로 갔었습니다. 그야말로 “고난 행전”의 날들이었습니다. 그 포로 기간을 지나면서 기록했던 믿음의 고백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육신의 안위를 모두 누렸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다른 이들에게 주신다 해도 그것은 그 분의 특권이다.” 그 선교사는 일본 군인의 악랄한 박해의 손길에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살게한 일본 군인을 결코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일본 군인을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으로 돌아 왔다가 선교사 새 남편을 만나 함께 다시 그 나라로 갔었습니다. 30년을 선교하며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2004 년 89 세로 천국에 갔습니다. 그 Rose 선교사의 승리의 결론적인 고백입니다,“모든 일이 잘 될 때 성경 말씀을 읽고 믿는다고 고백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을 당하면서도 말씀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믿음이다. 주님, 저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믿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해도 좋습니다. 주님이 저를 떠나 버리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동방에서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순례의 길을 끝까지 달려온 박사들, 그런데 그 이름들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 박사들은 바벨론에서 왕 다음으로 존경받고 또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을 다 물리치고 큰 희생의 헌신으로 베들레헴 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지 않습니다. 아기로 오신 예수님 앞에 인간의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기 예수님을 어떻게 모시는가 입니다.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마 2:11)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주 먼 곳으로 부터 와서 경배를드렸습니다. 희생과 정성과 힘을 다해 드린 경배였습니다.
사람은 예외없이 자랑스럽게 높은 위치에 있고 싶어합니다. 사람 됨의 본능입니다. 사람의 위치가 어떻게 결정되는가요? 섬기는 대상에 따라 그 위치가 결정됩니다. 대통령을 섬기는 사람과 시장을 섬기는 사람의 위치가 같지 않습니다. 경배입니다. 무엇을, 어떤 대상을 경배하는 가, 그 대상이 경배하는 사람의 위치를 결정해줍니다. 오늘 성경은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유대인의 왕, 다스리 는자”(2,6), “그리스도”(4, 마1:21),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6절) 라고 증거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만주의 주, 만 왕의 왕”이라고 증거합니다.(계17:14,19:16) 그 예수님을 경배하는 자는 예수님이 영원히 함께하여주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며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영원한 복을 충만히 누린 것입니다.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마2:11) 별은 아기 예수님을 인도한 한 증거입니다. 실체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을 가르쳐 인도한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동방박사들 처럼 왕 다음 가는 높은 지위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으로, 우리의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시기에 예수님의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예수님의 평강으로 충만합니다, 예수님의 소망으로 충만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충만합니다, 예수님의 소망으로 충만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충만합니다, 할렐루야!
부활절, 특별히 성탄절에 찬양대가 가장 많이 부르는 찬양이 헨델의 오라토리오,“메시야”입니다. 메시야의 절정은“할렐루야 합창”입니다. 그 합창의 가사는 아주 단순합니다, "전능하신 주가 다스리신다, 이 세상 나라가 우리 주님의 나라가 된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길이, 영원히 다스리신다", 입니다.
올해의 성탄, 성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동방 박사들 처럼 경배합시다. 우리의 주인과 왕으로 다스려주시도록 의지하기에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여 그 기쁨을 널리 퍼뜨리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