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 요한복음 15 1-11

지난 주 어느 방송사 기자가 눈이 많이 쌓인 길에서 뉴욕시의 한 시민에게 물었습니다,“눈으로 인한 불편을 어떻게 이겨내는가요?”그 시민의 대답이었습니다,“당장 플로리다로 이사 가고싶어요.”플로리다로 이사?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에는 벌써 겨울이 다 지나기도 전에 눈이 많이 온 편입니다. 힘들게 눈을 치워야하고 길이 미끄럽기도 합니다. 눈오는 것이 좀 귀찮아지기 까지 합니다. 이런 형편을 이겨 내는 최상의 방법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조금 후면 봄이 온다, 오는 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따뜻한 봄 기운이 활동하면 쌓인 모든 눈이 다 녹습니다.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잎이 돋아나며 신록이 무성해지는 좋은 계절이 반드시 오고 있음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반드시 열매가 풍성히 맺혀지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 때를 바라보며 눈 내리는 겨울 추위를 소망으로, 감사로, 기쁨으로, 이겨내는 것입니다.

열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전능하신 손길로 자연속에서 이루시는 경이롭고 아름다운 기적이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포도 나무 열매를 들어서 우리에게 살아있는 놀라운 소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포도나무 처럼 우리도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열매를 풍성히 맺는 비죤을 보여주십니다.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2하나님이 우리를 자녀삼으신 목적은 과실을맺는 것입니다.“입니다. 계속해서 맺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그리고 내일은 오늘 보다 더 맺는 것입니다.“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5) 과실을 계속해서 맺되 많이 맺는 것입니다. 그것은 포도원을 가꾸고 돌보는 농부이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고 뜻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인 우리가 열매를 계속해서 많이 맺도록 돌보아주시고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목적은 열매입니다. 말씀을 듣는 우리가 열매를 맺되 최상의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축복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요즈음 10 년 전에 타계한 정주영 회장에 대해 사람들이 새로운 평가를 합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오늘 만큼 잘 살게 되는 데 그 왕회장이 사업가로 끼친 공헌입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도 길 위에서 현대나 기아 자동차들이 많아지는 것을 볼 때 기쁩니다. 한국의 경제적인 발전을 눈으로 보며 대한민국을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경제적인 부흥의 한 주역이 정주영씨입니다. 정 회장에 대한 여러 일화가 많지만 그 분의 정신과 삶을 요약하는 두 마디의 말이 있습니다,“할 수 있다 (Can Do)”, 그리고 시작하라(Just Do It)”. 그 분은 분명히 교회를 다닌 성도는 아니었습니다. 불신자인 분이할 수 있다고 믿고 해나갔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가 할 수 있음은 더욱 확실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열매를 계속해서, 최상의 열매를 많이 맺는 자녀로 살아가라고 우리를 구원하여주신 것입니다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 나무 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4) “절로입니다. 열매가 맺히는 길은절로입니다.“스스로입니다. 열매는 가지에 달립니다. 포도나무 둥지가 아닙니다. 가지에 열매가 달리는 데절로입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을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열매가 맺힌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이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입니다. 가지인 우리가 열매를 절로 맺는다면 그것은 더 할 나위 없이 좋고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그절로라는 단어 앞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거한다, 붙어있는다입니다. 가지가 절로 열매를 맺는 길은 한 가지가 길 뿐입니다. 나무 둥지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 둥지에서 끊어지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나무 둥지와의 관계가 끊어져버린 가지,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생명이 꾾어졌기에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내 안에 거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거하다(living) 입니다. 머물러서 사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것과 머물러서 사는 것은 아주 크게 다릅니다. 예를 들면 우체부가 매일 우리가 사는 집 앞에 옵니다. 우편물을 배달해줍니다. 고마운 분입니다. 그런데 결코 우리의 집 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가족이나 식구는 어떠한가요? 집안으로 들어옵니다. 들어 와서 함께 머물며 사는 것입니다. 깊은 관계입니다. 연합입니다. 생명 관계입니다.“내 안에 거하라”,“내 안에입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러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입니다. 예수님과의 생명관계입니다. 신비롭습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관계입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러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 찬송할 일입니다. 죄인이 영원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전능하신 예수님 안에 머물러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아주 보잘 것 없이 초라하고 더러운 거지가 어떻게 감히 왕자의 화려한 왕궁에 들어가서 머물면서 함께 살 수가 있는가,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흘려주신 보혈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 피의 값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용서받고 깨끗이 씻음받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예수님 안은 그 어떤 곳보다 좋습니다.  화려한 왕궁 보다도 더 아름답고 좋은 곳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기쁨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평강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ㅇ강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소망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산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만족이 넘쳐 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만족이고 행복이기 때문입니다.“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이 초대하시고 또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트리니다드라는 나라에서 미국 선교사의 아들로 자라난 분의 간증입니다. 그 분이 어렸을 때 한 번은 사는 곳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길거리로 몰려나왔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 곳으로 행차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팡파레가 울려퍼지고 시위대와 호위대가 앞서갔습니다. 곧 여왕이 리무진을 타고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지나갔습니다. 그 광경을 직접 보고 경험했던 그 분의 결론입니다,“여왕이 지나갔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Royalty came to town and nothing changed!”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그냥 지나가게 하시지는 않았는가요? “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안에 머물러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기다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3:20)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며 함께 더불어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먹고 그 생명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요한복은 15 장은 예수님이 들려주신 다락방 강화라는 설교의 중간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14 장에서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 후 이 세상을 떠나가신다고 예고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마음에 근심과 염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믿음으로 염려나 근심을 이기라는 권면입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은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 4-11 절에는 거하다가 무려 10 번 이상 나옵니다.“거하다의 중요성입니다. 예수님안에 거하기만 하면 예수님이 열매를 맺혀주시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 때만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중 월 요일 부터 토 요일 까지 매 일, 매 순간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생명관계를 계속해서 가꾸어가는 것입니다삶은 관계입니다.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은 곧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즈음은 Face Book이 등장했습니다. 서로의 사는 형편을 아주 쉽게 주고 받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도 중요합니다관계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생명 관계입니다. 가지가 둥지에서 끊어지지 않아야합니다. 그래야 가지는 잎이 받아들인 햇빛과 탄소라는 요소를 뿌리가 뽑아 올린 물과 영양분으로 잘 배합하여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가지는 계속해서 나무 둥지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생명 관계는 계속성입니다. 가족이 그렇지 않은가요? 계속해서 사랑의 생명 관계를 가꾸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가족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계속해서 가꾸어가야 합니다. 할 수 있는대로 자주 자주 연락도 하고 안부도 묻고 소식도 주고 마음과 관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관계는 쌍방입니다. 내 쪽에서도 관계를 가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늘 두 팔을 벌리시고 기다리십니다. 나주시고 안아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힘을 주시고 고쳐주시고 승리게 하도록 도와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참된 쉼과 위로와 능력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은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시기하기 까지 사모하시며 우리의 몸을 전으로 삼으시고 우리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최상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행복을 체험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가지를 쳐야합니다. 열매 맺지 않는 가지입니다, 열매 맺는 데 방해가 되는 가지입니다, 그런 가지는 쳐내어야합니다.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가지를 치시기 전에 할 수 있으면 우리 스스로가 가지를 쳐야합니다.“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2) 농부이신 하나님이 과실을 맺고 더 많이 맺도록 가지를 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지를 치시는 것은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받아 들이기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연단이나 시련, 실패, 아픔, 힘들고 꼬여 보이는 형편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결코 환영하는 환경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과정들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가지를 치시는 손길입니다. 간증하는 모든 성도들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아픔입니다, 실패입니다, 어려운 순간들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가면서 가지를 쳤다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을 더욱 크고 깊이 체험한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생명 관계에 방해되는 가지들이 있습니다. 그 가지들을 할 수 있으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쳐내어야하는 것입니 다. 방해되는 것들이 무엇인가, 성령님께서 깨달아 알도록 감동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깨닫게 해주시고 힘을 주셔서 열매 맺지 못하게 하는 가지들을 쳐내는 은혜와 능력을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어떤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 부잣 집 앞에 자신의 것인 조그마한 공터가 있었습니다. 그 공터로 인해 부자가 마음 고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쓰레기들을 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쓰레기를 치우고 또 치우고,“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의 팻말을 세우고 또 세워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시골에 사시는 그 부자의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공터로 나갔습니다. 삽과 괭이로 공터를 갈아 엎었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향기 나는 꽃들을 그 공터에 심었습니다. 공터에 꽃들이 아름답게 피고 나비들이 날아들며 싱그러운 향기가 퍼저나갔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가요? 사람들이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들아, 꽃들을 계속해서 심고 가꾸라. 쓰레기를 치우는 것 보다 훨씬 돈이 덜 든다!”

우리의 마음과 삶의 중심에 꽃들을 심읍시다. 계속해서 심읍시다. 심고 가꿉시다. 말씀이라는 꽃입니다. 기도라는 꽃입니다. 순종이라는 꽃입니다. 충성이라는 꽃입니다. 인내라는 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다스려 주십니다. 예수님의 향기가 넘쳐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열매들로 풍성히 넘쳐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의 풍성한 열매들로 넘쳐나도록 충만히 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