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뚯하신 삼각 관계 /  빌립보서 4 1-7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사람의 건전하지 못하고 잘못된 태도를 꼬집는 말입니다. “로맨스나 불륜 삼각 관계입니다. 관계를 맺는 사람이 셋이라는 것입니다. 둘이어야 하는 하나가 끼어들어온 것입니다. 결과는 불행이고 파멸에 이르기도 합니다.

삶은 관계입니다. 관계가 사람의 기본입니다. 행복은 관계가 아름답고 건강하게 이루어 누리게 됩니다. 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은 관계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부터 출발하여 가족, 친구, 이웃, 시민의 관계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산다 것은 관계를 가꾸고 맺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관계가 중심입니다.

아픔과 고통의 관계도 있습니다. 미위하고 시기하고 지나치게 경쟁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개인이나 가족, 모임은 물론 교회에도 그런 관계가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 사이에도 있습니다. 1989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 동과 서의 무기로 어르렁 거리던 관계 바꾸어졌습니다. 지구 촌위에 이제 남은 장벽이 있습니다. 3.8 , 대한 민국이라 반도의 허리를 갈라놓은 장벽입니다. 장벽이 무너질 날도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들려진 복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 특별히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천년 동안 쌍여진 장벽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십자가로 둘을 몸으로 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이라…”(2:13-16)  예수님의 십자가는 민족과 민족, 개인과 개인이 장벽으로 막히고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특별히 죄인이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원수되었던 관계를 생명의 관계로 회복시킨 것이 십자가입니다.

관계가 원하고 바라지 않게, 좋지 않게 이루어져서 많은 어려움이 도처에 있습니다. 관계 사랑과 배려와 섬김의 아름답고 복되게 만들어가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입니다. “삼각 관계입니다. 제일 기본의 관계는 당사자 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사 사이의 중심에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뜻하시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이웃의 관계입니다. 사람의 관계가 최고, 최대로 아름답고 복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중심에 계시는 삼각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인(하나님의 사람) 누구인가요? 수님을 중심에 시고 모든 관계를 시작하고 발전시켜나가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는 성경입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서 유럽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감옥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진정으로 기뻐하는 바울의 마음을 성령님이 감동하셔서 속에 바울의 기쁨이 녹아 흐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흔히 기쁨의 편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감옥 안에서 감옥 밖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뻐하라고 부탁합니다. 성령님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치던 여종, 여성 사업가 루디아, 간수장의 가족들등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성령님 인도로 빌립보 교회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16:11-40)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회를 떠나 선교하다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소식을 듣고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 사도에게 선교 헌금을 보냈습니다. 아름다운 관계의 예입니다. 선교사인 목사와 (교회) 사이에 사랑과 배려와 기도가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보내 헌금 대한 감사의 마음을 바울은 빌립보서로 표현합니다. 더불어 빌립보서 4장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교인들 간의 관계에 대한 간곡한 권면을 전하고 있습니다.

관계입니다. 교회도 관계가 어떠한 가에 따라 교회가 건강한가, 그렇지 않은가 결정 됩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4:2)   권하다 간곡하게 호소하고 (plead, NIV) 요청하는(entreat, RSV,ESV) 마음, 마음을 다해 강청하는 것입니다. 마일 떨어진 로마 감옥 안에 있는 바울이 마치 옆에 총체적으로 감정과 마음과 정성과 힘을 쏟아 호소하는 같은 간절함입니다.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관계 문제가 빌립보 교회가 부닥친 가장 위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 교회의 교인 유오디아 순두게 관계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성경은 밝혀놓지 않습니다. 사람의 관계에 금이 가거나 관계가 아주 나빠지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마디나 행동 가지가 원인이 있습니다. 나아가 다른 사람이 도저히 도울 없는 원인 때문일 있습니다. 원인이 엇고 상태가 어떠하든 시급하게 중요한 것은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처음 부터 아름답고 좋게 관계를 가꾸고 지켜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관계를 어떻게 맺고 가꾸고 회복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야곱입니다. 야곱은 소유욕과 성취욕이 강했습니다. 형의 장자권을 속여서 빼앗고 아버지가 내리는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았습니다. 에서가 분에 차서 죽일려고 합니다. 하란에 있는 외삼촌에게로 도망을 칩니다. 20 이상 땀 흘려 일해 많은 재물을 모아 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관계입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생겨났던 에서와의 비뚤어진 관계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 앞에 태산 처럼 우뚝 가로 막고 있습니다. 부셔지고 깨어진 관계, 특별히 가족이나 가까운 사이의 상처난 관계는 빨리 회복할수록 좋습니다. 야곱에게는 재산은 물론 가족들이 딸려 있습니다. 에서가 복수의 칼을 들고 쫓아 나올 것인데, 이제 막다른 골목입니다. 얍복 가에서 밤새 씨름했습니다. 누구와 씨름했는가요? 하나님과 입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신 관계로 살아오지 못했 습니다. 재산은 뫃았습니다. 그러나 속이고 속고, 인격적으로 결코 모범이 되지 못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관계의 중심에 들어오실려고 합니다. 야곱은 자아를 깨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관계의 중심에 들어 오실 있었습니다. 뼈가 부러졌습니다. 해가 밝았습니다. 드디어 이제 야곱은 새롭게 하나님을 관계의 중심에 모신 것입니다. 얍복 나루 터에서 새롭게, 사람으로 출발한 아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삼각 관계의 시작이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의 구체적인 조상이 되기까지 영원한 복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신 관계가 가져온 축복이 었습 니다.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빌립보서의 핵심은 예수님의 마음” (2:5)입니다. 예수님을 관계의 중심에 왕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관계를 따라 살아왔습니다. 그러기 바울의 오직 가지 염원입니다, 사나 죽으나 예수님만이 존귀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자신이 옥에 갇힌 사실로 인하여 예수님이 관계의 중심에 모시는 사람이 많아졌기에 기뻐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먼저 관계의 중심에 모셨기에 예수님 보다 귀한 것이 음을 체험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과 비교해 보니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기까지 시시하 보여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앉아도 예수님, 서도 예수님, 들어가도, 나와도 예수님이었습니다. 누구와 어디서 대화를 하든, 교제나 친교를 하든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관계의 중심에 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런가요? 그리스도인 우리가 서로 만나 대화하거나 교제하거나 친교할 예수님이 나누어지는가요? 대화하는 내용의 대부분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와 별차이가 없는 것은 아닌가요? 그런가요? 예수님이 너무 희미하게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관계의 심에 모시고 일이 별로 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관계가 계속되 유오디아 순두게의 관계를 벗어나기 힘들어지게 됩니다.

빌립보 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게 교인간의 문제는 예수님을 관계의 중심에 모시지 못했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바울 처럼 예수님께 복종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지금 유오디아가 다시 예수님을 관계의 중심에 모시면, 순두게가 다시 예수님을 관계의 심에 모신다면,  예수님이 그들의 중심에 계십니다. 그들 관계의 중심에 계십니다. 예수님 다스리고 인도하셔서 가장 좋은 사랑과 용서와 이해와 돌봄과 섬김의 관계가 그들 사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저가 결혼 주례를 하면서 젊은 부부들에게 강조한 말씀이 있습니다. 모두가 복된 가정 소망하기에 결혼을 하지 않습니까? 복된 가정, 부부의 관계가 아름답게 가꾸어져 가는 비결은 무엇인가, 입니다. 예수님이 부부 관계의 중심에서 다스리도록 모시는 입니다. 삼각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제 결혼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사이에 끼어 들면 절대적으로 안되지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총력을 다해 지키 보호해야지요. 삼각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삼각 관계입니다. 남편이 아내 보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 보다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삼각 관계입니다. 삼각 관계는 참된 행복을 사는 비결입니다. 예수님이 지켜주시고 축복하여주십니다. 저와 아내의 부부 관계 38 년간의 비결이 바로 삼각 관계입 니다.

부부 관계 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맺는 모든 관계가 삼각 관계로 시작이 되고 가꾸어지는 것이 하나님이 뜻하시는 것입니다. 가족 간은 물론 직장이나 일터,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관계가 예수님이 중심에서 다스리시는 삼각 관계, 관계로 시작되고 꾸어지고 가꾸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축복입니다.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 (3:23), “모든 입니다. 특별히 관계에서 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럴 관계가 영원히 좋은 열매를 풍성히 거두어 들이게 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지중해 연안 나라는 물론 로마에서 까지  목숨 바쳐 올인하여 증거한 바울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선교사로, 신학자로, 자신의 전부를 불태워 오직 예수님의 인으로 바울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관계 회복을 위해 간곡히 권면하는 바울입니다. 바울이 과거에 바나바와의 관계에서 만은 모범되지 못했습니다. 마가 요한을  자신의 영적 은인인 바나바와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는” (15:39) 아픔을 거쳐갔습니다. 바울은 젊은 마가 요한의 흔들렸던 충성에 대한 비판의 마음을 수그러뜨리지 못했기 때문입 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관계, 관계를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긴 바울이었기에 시간 지나 마가 요한과의 관계를 예수님 중심으로 회복할 있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다 번째 로마 감옥에 갇혀 순교의 순간이 가까이 옴을 예감하며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부탁합니다, “…네가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 마가 요한을 복음 증거를 위해 유익한 동역자 관계로 여기고 있는 바울입니다.

삼각 관계입니다. 예수님을 먼저 왕으로, 마음의 운전사로 모시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의 중심에서 왕으로 다스려주시도록 복종하여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예수님이 영원 복되고 아름다운 관계를 펼쳐나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관계의 중심에 모시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나 원인으로든지 깨어지고 파괴된 관계일지라도 새롭게 회복시켜주십니다. 바울과 마가의 관계 처럼 복음을 위해 유익하도록 만들 어주십니다.

사람은 모두 행복한 인간 관계를 바랍니다. “이웃을 사랑하듯 사랑하라, 원수를 랑하라”, 말씀을 그대로 실천 한다면 최고의 행복한 관계입니다. 문제는 관계를 떻게 시작하고 지켜나가는 입니다. 예수님을 관계의 중심에 모시 것입니다. 예수님 사람의 영원히 복된 관계를 가능케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관계의 중심에 모시기에 예수님께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처럼 사랑하는 마음과 력을 주옵소서,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하소서, 구할 예수님은 사랑하는 능력과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뜻하시는 삼각 관계입니다. 예수님을 관계의 중심에 왕으로 모셔서 사시고 다스 리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참된 생명 관계가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예수님이 명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쁨의 관계가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예수님이 기쁨이기 때문 입니다, 참된 평화의 관계가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예수님이 평화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