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축복의 산에서 듣는 예수님의 말씀 / 마태복음 5장 1-12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마5:1) 이렇게 시작되는 오늘의 말씀을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축복의 산에서 들려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제자들에게 입니다.“무리”중에서도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경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지고 또 많이 읽혀지거나 애송되는 말씀이 마태복음 5장 1-12 절입니다. 그런데 먼저 알 것은 예수님은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따르는 사람들에 게 주신“산상 보훈”입니다. 산 위에서 들려주신 보배로운 교훈입니다. 불신자들도 읽고 들으면 참 좋습니다. 그러나 이 산상 보훈의 진가를 깨달아 누리는 비결은 먼저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 예수님과의 생명 관계가 확실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복이 있나니”, 이 말씀은 3-12절에서 9 번 나옵니다. 강조의 뜻입니다. 11 절과 12 절의 각 구절에 나옵니다만 그 두 구절은 같은 한 제목을 설명합니다. 그러기에“복이 있나니”는 8 종류의 복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8 가지의 복입니다. 그래서“팔 복”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신 목적은 사람이 이“복”을 누리고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섬기며 순종하기에 누릴 수 있는 복들입니다.
예수님은 3 년 간의 공적 생애를 시작하실
때 “복이 있나니”, 오늘의 말씀대로 축복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3 년의 공생애를 마치신 후 승천하실 때도 예수님은 복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눅24:51)
예수님은 재림하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있을
곳을 마련하시면 다시 오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가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 예수님은 재림을 준비하고 계시는 동안에도 구원해주신 그리스도인들이 복있는 사람으로 살도록 기도하고 계십니다,“그러므로 자기를 힘 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나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 25)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주실 수 있고 주시기를 원하시는 그 복을 사람이 구체적으로,
충만히 누리도록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었고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복이 있나니", 이 복은 보통 세상에서 말하는 복과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복을 동양의 유교에서는 5 복이라고 말합니다. 수-오래 장수하고, 부-물질이 풍부하고, 강녕-건강하고, 유호덕-덕이 있고, 고종명-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는 것, 이 5 가지를 복이라고 여겼습니다. 지금도 대부부의 사람들이 이 다 섯가지를 복이라고 생각하고 또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복도 복입니다. 사실 건강히 장수하다가 편히 잘 죽는 것, 큰 복입니다. 그렇게 죽기 까지 물질에 부족함이 없이 누리며 덕을 세우는 것, 참 좋은 복입니다. 그런데 이 5 가지의 복은 상대적입니다. 복이 될 수도 있고 또 복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원이 성취되었기에 오히려 더 불행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복권 당첨입니다.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 대부분은 오히려 복권에 당첨되기 전이 더 행복했다고 증거합니다. 소유욕이 충족되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소유욕을 성취할려고 하기에 오히려 수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맛봅니다. 비교해서 내가 더 높고, 많고, 낫다는 만족감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비교의 대상이 언제든지 나타나서 비교해서 얻은 행복을 사정없이 짓밞아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서양에서의 복은“Happiness”입니다. 그 말의 뿌리는“HAP”입니다.“Hap”의 원래 뜻은 “Luck, Chance”, 곧 행운, 요행입니다.“행복”은 운이 좋아서 누린다는 뜻입니다. 영어의 인사말 중에 “Good Luck”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사말은 가장 막연한 말입니다. 운이라는 것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데 그 막연한 것에“당신의 앞날을 맡기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가장 큰 실례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텍사스 주 어느 부자의 고백입니다, “나는 돈으로 행복을 살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내가 그 착 각에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 온 것이 최대의 비참합이다.”
“복이 있나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복은 과연 어떤 복인가요? 성경의 하나님, 그 분이 바로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향하여서도 “그 사람, 복덩 어리다, 복이 굴러 들어온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어느 나이드신 여 성도님과 나눈 대화가 아주 생생히 기억됩니다. 그 성도님의 며느리에 대하여 저가 좋은 말을 했습니다. 저의 말을 들은 그 성도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우리 집에 굴러 들어온 복이지요!" 그 한 사람, 며느리로 인해서 그 어떤 다른 것으로 부터 얻을 수 없는 행복을 맛보며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복 덩어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성경의 우리 하나님은 그 사람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복의 하나님입니다.“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시며 만 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딤전 1:11, 6:15)) 성경의 하나님은 복되신 분입니다. 하나님 그 분이 복 되시기에 복을 주시며 그 복을 누리고 살도록 축복하십니다.“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히6:14) 복되신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복이 되게 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복을 얼마든지 누리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서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1:1-3) 누가 복있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증거하는가요? 복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복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말씀이 곧 복입니다. 그러므로 그 복된 말씀을 먼저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복되신 하나님, 만복의 근원이신 우리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사는 길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과연 얼마나 즐거워하는가요? 연속극이나 티브 프로그램 보다 더 즐거워하는가요? 말씀을 즐거워하는 은혜를 성령님이 부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복된 하나님이시기에 그 말씀이 곧 복인데, 그 복을 즐거워하기는 커녕,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 복되신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이 늘 마음과 생각에서 떠나지 않도록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묵상"의 본래 뜻은 "되 새김질 함"입니다. 저는 농촌에서 자라난 "촌 놈"입니다. 소 풀을 베며 소를 먹이는 일이 어릴 때의 주된 일이었습니다. 소를 잘 압니다. 소의 한 특징이 되 새김 질입니다. 먹은 풀이나 꼴을 길을 걷거나 앉거나 할 때는 반드시 입안으로 올라오게 해서 다시 씹습니다. 그런 후 다시 삼킵니다. 창조주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되 새김질하도록 소를 그렇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의 되 새김질입니다. 복과 생명의 말씀이기에 "묵상", 곧 다시 되 새김질 하듯, 마음에 품으며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된 자의 삶입니다.
지난 금요일자 “생명의 삶”의 성경이 어떤 것이었나요? 신명기 6장 1-15절입니다. 광야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2 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들려주신 복의 말씀입니다. 복이 약속된 말씀입니다. 그 복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건축지 아니한 성읍이나 집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손수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고 포도원이나 감람나무에서 난 식물로 배불리 먹는 것이었습니다. 곧 이 현세를 사는 모든 사람이 모두가 원하는 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을 누리는 비결이 무엇이었는가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행하며 특별히“강론할 것이며" (신 6:7)라고 명령합니다.“강론하다”는 무슨 뜻인가요?“Talk about”, 함께 말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집에서 부모들이 성경 말씀을 자녀들과 함께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 속의 유대인들에 대하여 많이 듣습니다. 미국의 유대인들은 약 6 백만, 전체 미국 인구의 2 % 정도입니다. 이 적은 수의 유대인들이 미국과 세계에 끼치는 영항력은 아주 큽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들입니다: 미국 최 상위 지성인 200 명 중 50 %가 유대인입니다, 미국 최 상위 대학교 교수들 중 유20 % 가 유대인입니다, 뉴욕과 와싱톤 디 씨의 최 상위 법율 회사의 파트너 중 약 40% 가 유대인 변호사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과거를 거쳐온 사람들입니까? AD 70 년에 그들의 나라가 이 지구위에서 완전히 망해 버렸습니다. 그 후 1900 여 년을 떠돌이로 지내온 것입니다. 자기의 나라가 없어졌다, 그 기간이 100년, 1000 년도 아닌 거의 2000 년 동안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대인들이 어떻게 미국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렇게 큰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가요? 근본 되는 비결은 신명기 6장입니다.“강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집에서 입니다. 할 수 있으면, 힘과 최선을 다해 부모가 자녀들이 대학을 가기 전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복되신 우리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이 복입니다. 영원한 복의 약속이기에 그 복의 씨가 마음에 심기워지면 반드시 그 씨가 싹이 트고 자라나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복이 있나니”, 예수님이 증거하시는 이“복”은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뜻도 있습니다. 오아시스는 사막을 지나는 사람을 살리는 샘물입니다. 갈증과 피곤을 물리쳐 새 힘과 기쁨을 주는 것이 오아시스의 샘물입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이“복”은 오아시스 생수 처럼 샘솟는 만족감입니다.“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 흐르리라”, 예수님이 주시는 만족감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소망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주님 예수님이 곧 복 그 자체입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복 그자체인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배설물 처럼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현세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의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확실하고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참된 복입니다. 밖의 환경이나 형편이 어떠할지라도, 어렵고 힘들게 보이면 보일수록 더욱 힘차게 솟아나서 영혼과 마음과 전 존재를 살게하고 생기와 능력을 부어주는 생수입니다. 그 생수가 복입니다.“복이 있나니”, 예수님의 이 복은 곧 복 그 자체이신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아주 친하고 가깝고 깊은 관계이기에 예수님이 쏟아부어주시는 영원한 복들입니다.
칼리포니아에서 꽤 잘 사는 어느 여성도의 간증입니다. 남편과 함께 가까운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안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점심 먹는 잠깐 사이에 도둑이 들어온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모으고 간직하고 아껴왔던 귀중품들이 다 도둑 맞은 것입니다.“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너무 기가 막히게 황당했습니다. 다스리기 힘들게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곧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귀중품들을 몽땅 도둑 맞고 난 후에 깨달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귀한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깨달아 안 것입니다,“세상의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리 내 것이라고 다짐해도 있다가도 순식간에 없어질 수 있구나! 그런데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 내게 있구나, 영원히 복되신 하나님이 주신 약속, 그 언약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구나!”그렇게 깨달은 후 복의 약속인 성경 말씀을 더욱 즐워하며 묵상하기에 참된 만족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간증입니다.
영원한 복이신 예수님이 복을 들려주시는 곳은 어디였는가요? “산 위”입니다. 축복의 산입니다. 그 축복의 산은 오늘 우리 들에게는 어디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이 "강론되어지는 가정"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의 가정이 그 축복의 산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 축복의 산은 어디인가요? 말씀이 선포되고 가르쳐지고 읽혀지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입니다. 이 축복의 산에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복이신 예수님을 더욱 깊고 뜨겁게 체험하며 그 복을 널리 나누어주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