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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 시편 37 편 1-11절, 마태복음 5장 5절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셨을까요? 이 땅위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오셔서
33 년을 사셨는 데, 그 때 예수님의 모습은 과연 어떠하셨을까요?
외모 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풍기시는 종합적인 모습입니다. 복음서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특징적인 예수님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신 것입니다. 화도 내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며 그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형식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종교인들을
향하여 “화가 있을 것이다”고 책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들어 괴로워하거나 소외되어 서러운 사람들을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한
사람도 외면 하지 않으시며 최상의 도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크게 보이는 죄도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돌에 맞아 죽을 뻔 한 여인에게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너의 죄가 용서함 받았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빈 들판에서 수천 명의 배고픈 사람들을 순식간에 배불리 먹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과 종합적인 모습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 : 29)“온유함”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약 750 여 년 전,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예수님은 온유함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 성경은 모세도 온유했다고 증거합니다,“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 그러나 모세는 예수님의 한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실체이십니다. 예수님은 온유함, 그 자체였습니다.
힘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예외 없이 모두가 얻고져 몸 부림 칩니다. 그 힘이 돈으로 부터 오는 것이든, 권세로 부터 오는 것이든, 지식으로 부터 오는 것이든,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외모나 재능으로 부터 오는 것이든, 그 힘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양심도 팝니다. 부끄러움이나 염치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 힘과는 아주 다른 것으로 보이는 온유함은 겉으로는 그러지 않을지라도 속으로는 원하지 않는 것, 첫 번째 입니다. 한인 부모가 자녀들이 진정으로 온유한 인격을 갖기원하는가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원하지 않습니다. 온유한 인격의 사람은 생존 경쟁이 치열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그런데 예수님은“온유한 자”,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온유한 사람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자녀 교육에 실패하는 것인가요? 온유한 자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지지리 못난 사람들의
자기 변명에 해당하는 것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복이 있나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복은 진짜 복이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진짜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예수님이 보장하십니다.
“온유함”의 가장 적합한 뜻은 “잘 다스려진 힘- power under control, 잘 길들여진 힘-well tamed power”입니다. 힘입니다. 힘이라고 다 좋고 유익한 것인 아닙니다. 힘은 잘 다스려질 때만 좋은 것입니다. 불의 힘은 큽니다. 그 큰 힘이 다스려지지 않으면 집은 물론 산들을 잿더미로 만듭니다. 물의 힘도 큽니다. 그런데 물의 힘이 다스려지지 않으니까 일본이 경험한대로 상상하기조차 힘들게 모든 것들을 부셔버립니다. 바람의 힘도 큽니다. 다스려지지 않는 바람의 힘이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로 몰려오면 무섭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힘들이 잘 다스려지면 사람이 사는 데 무한히 큰 유익함과 편리함을 가져옵니다. 잘 다스려진 힘, 그것이 온유함입니다. 야생말입니다. 달리는 힘이 아주 큰 말입니다. 그런데 들판에서 자기 멋대로 달리기만 하면 말로서의 값어치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야생마를 잘 길들여놓으면 아주 비싼 경주마가 됩니다. 잘 길들여진 힘, 그것이 온유함입니다.“온유함” 은 “잘 다스려지고 조절되어 그 사람의 인격속에서 덕으로 나타나 아주 좋은 영향을 끼치고 큰 유익을 가져오는 힘”입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하나님의 형상 대로 지음받은 사람 속에는 큰 힘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힘이 어떻게 밖으로 나타나는 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잘 길들 여져서 밖으로 나타나면 아주 좋습니다. 화평을 풍부하게 누리며 다른 사람에게도 화평을 크게 끼칩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크게 유익하게 하고 살맛 나게하고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그 힘이 다스려지지 않고 나타날 때는 감정이라는 화산의 불로 폭발하여서 엄청난 해를 끼칩니다.
일본의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요즈음 백두산에 관심이 쏠려집니다. 백두산은 살아있는 화산입니다. 그 화산이 폭발하면 이북이나 한 반도는 물론 전 세계에 끼치는 영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다고 합니다. 옛날 강대국이었던 발해가 망한 원인도 백두산 화산 폭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백두산 밑 아래 깊은 곳에 있는 힘이 어떻게 다스려지는 가 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전13:4, 엡4:1-3), 온유함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가정에서는
물론 일터에서, 특별히 교회에서도 가장 필요한 은혜입니다. 교회와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온유하신 분이시기에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온유한 마음과 감정과 인격을 나타내는 것은 필수입니다.
요즈음 미국 단체 운동팀에는 흑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특별히 농구나 미식 축구에는 흑인이 백이 선수들 보다 그 수가 많습니다. 1940 년 대 까지만 해도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직업 야구나 농구팀에는 흑인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1947 년, 그 때 뉴욕의 부루클린에 다져스라는 야구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LA의 야구팀입니다. 재키 로빈슨이라는 흑인이 그 때의 다져스 팀 선수로 뛰게 되었습니다. 첫 흑인 선수였습니다. 로빈슨은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이었는데도 성미가 급해 주먹 싸움도 잘한 젊은이였습니다. 그 다져스 팀의 총감독이 먼저 로빈슨을 불러 한 권의 책을 주었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였습니다. “재키, 너 이 책을 꼭 읽어라. 너의 앞날에 수 많은 조롱과 모욕과 위협과 협박이 있을 것이다. 그 때 마다, 꼭 한 가지를 기억하라, 이 책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마음 판에 새기고 기도하며 그 모습을 실천 해야한다.”재키가 운동장에 나설 때마다 참기 힘든 조롱과 모욕과 위협의 거친 말이 쏟아졌습니다. 흑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으로서 참아내기가 아주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럴 때 마다 재키는 기도하며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온유하심 입니다. 재키 로빈슨은 예수님의 온유하심을 실천하여 승리했습니다. 10 년동안 6 번이나 다져스 팀을 우승케했습니다. MVP 로 뽑힘은 물론 1962년에는 흑인으로 미국 야구의 명예의 전당에 기록되었습니다. 온유함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그 한 사람 재키의 온유함의 승리가 그 뒤 무수히 많은 흑인 선수들이 당당히 직업 운동 선수가 되게하는 문을 열어놓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의 온유함이 가져온 축복이 얼마나 큰 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내 한 사람의 온유함으로 나의 가정이 지상의 낙원으로 가꾸어집니다. 내 한 사람의 온유함이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내 한 사람의 온유함이 내가 사는 사회를 천국으로 만들게 됩니다. 내 한 사람의 온유함이 내가 속한 교회, 우리 교회를 더욱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도록 이끄는 부흥의 힘이 됩니다. 성도님은 과연 온유하시지요? 먼저 내 속에 예수님의 온유함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온유함의 은혜가 충만하도록 간구하십시다.“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함은 보복하지 않는 인내입니다. 감정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결단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최고, 최상의 뜻을 이루어가심을 확신하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기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겸손입니다.“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겨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리라…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시37:4,5,7-8)
그 이름의 뜻이 “웃음”인 이삭은 가축을 길러 생활하는 유목민이었습니다. 유목민에게는 우물이 필수입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의 참 좋은 면 중의 하나가 물의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물은 사람에게는 물론 가축이나 식물, 모든 생물체에 필수입니다. 더우기 사막 지방에서야 물을 얻는 우물은 생명과 같았습니다. 사막 지방에 살았던 이삭은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민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주 먼 곳에서 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민와서 살았습니다. 그 곳에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이 이민자 아브라함의 가족에게 텃세를 크게 부렸습니다. 이민 초창기 때 한인들이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 미국에서지만 텃세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울분이나 감정을 다스린다고 애쓰기도했습니다. 이삭이 이민자의 아들로 우물을 팠는 데 블레셋이라는 힘센 토박이들이 자기들의 우물이라고 빼았았습니다. 맞서서 따지고 싸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양보하고 떠나가서 다른 곳에 우물을 팠습니다. 파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또 블레셋이 빼았았습니다. 네 번이나 그렇게 당했습니다. 마침내 다섯 번째는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습니다.“…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히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창26:22) 온유함의 승리입니다. 하나님이 더 넓은 땅을 차지하여 번성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약속입니다,“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함으로 겸손히 인내하며 예수님을 의지할 때 예수님은 반드시 땅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그 땅은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시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 어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땅을 기업으로 받는 그 복은 오직 온유한 사람들만이 누린다”
저가 부족함을 크게 느끼는 것은 예수님의 온유하심입니다. 내 마음이 예수님의 온유하심 보다는 성급해하고 분해하고 조그마한 일에도 참지 못하고 조급해하고 너그러웁게 여겨 큰 사랑으로 덮어주지 못하여 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송한 것입니다. 가족이나 사람 앞에 부끄러운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온유하심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인격을 온전히 지배하게 할 수 있나요? 성령님은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안타까워하며 간구할 때 반드시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 마음을 9 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아름답게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혀지게 하십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갈5:22-23), 특별히“온유”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함이 우리 속에 충만하여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지배하도록 도우십니다.
이 예수님의 온유함의 열매가 우리 속에 가득히 넘쳐나서 온유함의 따뜻한 햇빛을 온 누리에 가득히 비추이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