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름의 복/ 시편 107 1-9, 5:6

배가 몹시 고프거나 목이 타는 갈증을 겪어보셨나요?                                          1950, 6.25 사변 때 저는 어렸습니다. 가족이 멀지 않은 곳으로 피난을 갔었습니다. 어린 나이이기에 피난 중이지만 좀 뛰놀았던 것 같습니다. 배가 고프고 갈증을 크게 느꼈었습니다. 들판에 마련된 우리 집의 간이 부억으로 얼른 달려가서 누룽지 빛갈의 물을 단숨에 마셨습니다. 마시고 났는 데 그 물이 누룽지 끊인 물이 아니라 간장물이었습니다. 목이 타오르는 갈증을 없애느라 물을 바가지 채로 마신 일이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거나 갈증을 느끼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살아있고 또 건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위가 텅 비었는 데 배 고픔을 느끼지 않거나 몸 속에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데 갈증을 못 느끼면 큰 탈이 난 것입니다.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5:6)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보장해주시는 네 번째 복입니다. 배부름의 복입니다. 배부름은 큰 복입니다. 사실 정말로 배가 고파보지 않았던 사람은 배부름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진정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고픈 것은 가장 서러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배가 부른 것은 큰 복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에 주리고 목 마르기만 하면 배부름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목마르거나 주린 갈증의 원인이 음식이나 물이 아닙니다.“”  입니다.“에 주린 것입니다. 배가 고파 음식을 원하듯이, 목이 말라 물을 원하듯이,“를 원하는 간절함 입니다.

사람에게는 갈망하고 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적 욕구입니다. 알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기에 과학이나 기술이나 문명이 나아져 온 것입니다소유의 욕망입니다. 의식주 문제를 넘어선 소유입니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어하는 욕구입니다. 문제는 이 욕망 이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소유하면 할 수록 더 많이 소유해야 행복을 누리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유의 욕망이 채워져서 복을 느끼거나 행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명예의 욕망입니다. 자신이 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렇게 인정과 존경을 받기원하는 욕망입니다사회성의 욕망입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친구, 이웃, 가족, 동반자 꼭 필요한 것입니다사랑의 욕망입니다. 사랑을 주어야하고 나아가 사랑을 받는 것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또 한 가지의 욕망이 있습니다.“에 대한 욕망입니다.“옳을 義”,“옳은 것, 올바른 것입니다.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옳고 바르게 살기를 원합니다. 의롭고 선한 사람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옛날, 악한 일을 많이 저지른 로마 황제 네로가 있었지요. 로마 도시에 일부러 불을 질러놓고 그리스도인이 했다고 덮어 씌웠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원형 극장 사자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악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네로도 사람을 사형에 처하도록 허락서에 서명을 하고는내가 차라리 글을 몰랐다면!”하고 독백했습니다히틀러도 마음 속에 늘정치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그림이나 그렸으면!”하고 소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나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는 무엇인가요?“라는 말은 구약에 약 500 , 신약에 약 200 번 나옵니다.“는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의 중심이 됩니다.“는 곧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의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특별히 사람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성경은그 의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23:6)라고 증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현세에는 의와 반대되는 불의가 참 많습니다. 불의가 판을 칩니다. 의롭게, 선하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고통이나 어려움을 당하고 불의하게 취급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가 다는 모르지만 불의가 의를 짓밟고 의를 박해하는 일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런 불의한 현세이지만 이 현세를 궁극적으로 통치하시며 마지막에는 의로 심판하실 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사실을 믿기에 어렵고 고난이 있을지라도 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롭게 사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하나님의 의로 판단하실 때가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119:137)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의에 주리고 목마른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이 땅위에 넘쳐나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의가 아닙니다. 사람의 의는 내게는 옳지마는 다른 사람에게는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게는 선하고 유익하고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영원히 좋고 선하고 유익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먼저 내 자신을 온전히 다스리고 나의 가정, 나의 일터, 내가 사는 사회, 나아가 나의 교회를 온전히 통치해 주시기를 갈망하는 것 입니다.

오늘 말씀 시편 107편의 저자는 하나님의 의를 선하심, 인자하심, 구속-구원하심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광야 40 년을 지나가게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주리고 목마를 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이에 저희가 그 근심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 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107:6-7) 우리 하나님은 택하여 구원하신 백성이 부르짖을 때, 곧 하나님의 의로움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로움이 통치하기를 간구할 때 응답해주시셔서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는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과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가요? 의로우신 하나님을 우리가 과연 주리고 갈망하는가요? 하루를 살면서 하나님을 얼마나 생각하여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과 의로우심이 나를 지배해주기를 얼마나 갈망하는가요? 우리의 매일, 일상,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우리가 얼마나 갈망하는가요?

주리고 목마르다는 아주 극심한 배고픔과 갈증입니다. 이중적인 갈망입니다. 간절한 갈망입니다. 그리고 한 두 번 만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갈망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니…”(42:1-2)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고 찾듯이 그렇게 하나님을 갈망하고 사모하는 것입니다.“생존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의로운 손을 내 뻗치사 도와주시고 해결해주셔서 영광받으시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기에 의롭지 못한 죄인인 나를 만나주실 수 없었습니다. 죄인인 내가 나의 힘이나 공로나 업적이나 선행으로는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영원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먼저 손을 써주셨습니다. 불의한 내가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하나님의 모든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죄를 알지도 못하신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셨기에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의로워진 것으로 인정, 선포해주십니다.“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우리의 의입니다. 의이신 예수님의 의로우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불의가 다 덮여진 것입니다.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5:16)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이 현세를 살아가야합니다. 이 현세에는 구원받은 성도가 예수님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기에는 많은 유혹이 있고 시험이 있고 시련이 있습니다. 승리하는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돕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는 그냥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아가되 주리고 목마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 으로 채워주시리로다”(107:9)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주리고 목마른 간절함으로 나오는 모든 심령을 좋은 것으로 채워주셔서 만족하게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의 의로우심을 의지기 때문입니다. (3:9)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나아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예수님이 생명의 떡입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생수입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의 생명으로 배부르게 하여주십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의 평강으로 배부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예수님의 기쁨으로 배부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의 은혜로 배부르게 하여주십니다. 참된 만족입니다.“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후3:5)

세상이 주는 만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주시는 만족으로 우리가 늘 배부르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