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 예레미야 애가 3 19-26, 마태복음 5 7

왕으로 부터 10 년 이상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생명의 위협도 여러번 당했습니다. 천신 만고 끝에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본인이 그 왕의 대를 이을 왕이 되겠다고 원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자기를 죽일려든 사울 왕의 대를 이어 드디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다윗입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자리를 굳히고 나라를 평안케 했습니다. 그 때 다윗은 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므비보셋입니다. 자신을 죽일려고 안간힘을 썼던 원수 왕 사울의 손자였습니다. 원수의 씨입니다. 므비보셋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얼른 불러오게 했습니다.“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삼하 9:7) 원수의 씨를 살려줍니다. 뿐만 아니라 크게 은총을 베풀며 잘 살아가도록 구체적으로 보살펴주었습니다. 큰 긍휼을 베푸는 다윗입니다.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신가요? “긍휼이 풍성한 주님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불쌍히, 민망히 여기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9:36, 15:32) 불쌍히, 민망히 여기는 마음이 곧긍휼입니다.“긍휼이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

"긍휼은 다른 사람, 특별히 어렵고 불행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형편에 있는 사람, 범죄자에게 까지 참되고 진정한 동정과 사랑의 마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예수님이 갈릴리 호수가의 산 위에서 주신 8 가지의 복들 중에 서 다섯 번째입니다, 어떤 복인가요?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네 개의 복들을 말씀하셨습니다천국을 소유하는 복, 위로를 받는 복,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 배 부름의 복들이었습니다. 그런 복들을 받고 누리며 나누고 유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과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의 마음의 상태와 인격이 어떠 해야하는 가를 예수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가난한 심령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입니다예수님은 다섯 째 복 부터는 관심과 시선을 이웃에게로 돌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영생을 누리는 성도가 이웃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 가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결코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명령이라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들입니다. 이웃에게 긍휼을 적극적으로 베푸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긍휼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 중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 올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예수님의 긍휼을 받아누리고 있습니다.긍휼히 여긴다는 곧 불쌍히, 민망히 여긴다입니다.“긍휼자비, 인자, 인애, 민망과 같은 말입니다.“긍휼과 반대되는 말들이 무엇이지요? “냉정, 무시, 멸시, 차별, 차거움, 인정이 없음, 잔인, 포악, 무자비…”입니다

8 복 중 네 번째 복이 무엇이었나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배부른 복입니다.“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그 자체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의로운 하나님, 하나님의 의를 못 마땅해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미시간 주의 그랜드 래피즈에 있는 “Mar’s Hill”교회 Rob Bell이라는 목사님이 자신의 책에서지옥은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잘못된 주장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천국과 지옥이 있고 그 두 곳은 영원히 분리된 곳이라고 증거합니다. 그 목사님의 그런 주장은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 사실 만을 강조한 결과입니다.“하나님은 사랑이다”, 사실입니다. 그런데의가 없는 사랑”,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속성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 없다면 이 세상은 마치 교통 신호등이 고장난 번잡한 네거리와 같습니다성경은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며 또한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증거합니다. 사랑이 없는의로운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 앞에 누가 감히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두려움과 무서움, 그리고 공포에 떨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 하나님은긍휼이 풍성한분이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또한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의로움과 긍휼함이 연합해서 최고로 잘 조화를 이룬 모습이 하 나님의 마음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25:6) 하나님은 영원 부터 영원까지 긍휼하시고 인자하신 분입니다.“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103:17)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참되게 경외하면 그 자손 만대에 하나님은 의로움의 복을 주십니다.“…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러 하심이라  …” (30:8) 오늘의 성경 본문입니다,“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심으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심이니이다”(렘애 3:22-23)“진멸은 영원한 형벌입니다.“죄의 삯은 사망인데”(6:23), 그런데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3:10,23)고 성경은 증거합니다.“진멸되지 아니하나니”,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기에 죄로 말미암아 진멸되어야하는 데 진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무궁한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2:4-5)“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셨기에 죄인이 구원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긍휼의 극치는 곧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죄의 형벌을 우리를 대신해서 받게하신 것입니다그 십자가의 긍휼의 사랑을 받은 우리입니다, 믿으시는가요? 그 사랑 받았기에, 그 구원 받았기에, 그 영생 받았기에, 그 십자가의 놀라운 기쁨과 평안과 소망과 능력을 내 것으로, 영원한 나의 것으로 받았기에 긍휼히 여기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긍휼을 실천하기 위해 기도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다가 그만 빚을 졌습니다. 미국 돈으로백 만불의 빚이니까 아주 큰 빚입니다.“갚을 것이 없는지라...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으라”(18:25)고 채주가 법적인 명령을 내립니다. 도저히 헤어나올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카드를 사용합니다. 채주에게로 갔습니다. 납작하게 엎드려 선처를 호소했습니다.“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렇게 큰 빚을 없었던 것으로, 빚을 지지 않았던 것으로 채주가 완전히 없애주었습니다. 참으로 긍휼히 풍성한 채주였습니다. 큰 빚을 탕감받은 그 사람이 돌아가다가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가 얼마 전에 10 불을 빌렸습니다. 빌려준 10 불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60 만 배나 되는 큰 돈의 자기 빚은 다 탕감받은 것은 잊고 10 불을 당장 내어놓으라고 우격 다짐했습니다. 조금만 참아주면 갚겠다는 빚진 친구의 간청을 뿌리친 채 그 10불 빚진 친구를 경찰에 고발해 버렸습니다. 탕감받은 그 사람의 무자비하고 몰인정한 행동을 본 이웃들이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6 백만 불을 탕감해준 그 채주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큰 빚을 탕 감해준 채주가 몰인정한 그 사람을 불러서 크게 꾸짖습니다,“악한 사람이여, 네가 빌기에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는 데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 같이 너도 네게 빚졌던 사람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채주가 노하여 탕감을 철회하고백만불의 빚을 갚을 때까지 그 채무자를 감옥에 가두게 했습니다.(18:23-35) 예수님이 들려주신 비유입니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빚을 탕감받은 사람, 누구인가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의 값으로 우리가 진 죄의 빚을 다 탕감해주셨습니다. 무한히 큰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빚을 탕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 긍휼하심으로 구원받은 우리들 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도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이 어떠 할지라도 그 이웃에게도 긍휼을 베푸는 것은 내가 받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답해드리는 것입니다. 백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 해드리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부터 시작해서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내 안에 너 있다”, <파리의 연인>이라는 방송극의 대사였습니다. 그 방송극은 2004 년에 한국에서 크게 인기 있었다고 합니다. 그 드라마에서 시청자 기억에 가장 똑똑하게 남는 대사라고 합니다. 그런데내 안에 있는”“가 누구인가 입니다. 만나서 관계를 맺어온 모든 이웃들입니다. 특별히 부모입니다.

월은 한국이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5 월 첫 주일은 한국 교회가 자녀 주일로 지킵니다. 가정을 이루고 돌보는 부모의 큰 관심사는 자녀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뛰어넘기 까지 휼륭하게 되고 잘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녀 속에 누가 있는가 입니다. 자녀의 일생을 좌우하는 영향력입니다. 자녀 속에 부모의 가치관, 행동, 그리고 말이 살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저와 성도님들 우리 모두가 우리 자녀 속에 과연 우리의 무엇이 살아있기를 원하시는가요? 그저 형식적인 겉치레의 믿음인가요?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 속에 살아있어서 그들의 일생이 참으로 복되게 하는 영향력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구원과 영생의 은혜, 복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부모되는 참으로 놀라운 특권을 주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성경은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요? “한 분이신 하나님이 네 아내를 만들지 않으셨느냐? 육체와 영이 둘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느냐?...”(2:15, 표준 새 번역) 우리의 자녀를 경건한 자손으로 양육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경건한 자손은 곧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자녀 속에 살아있는 것입니다. 부모된 우리 모두가 우리의 자녀들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되도록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은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는 가장 빠르게, 확실히 응답해주십니다.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다 물려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좋은 것들이 과연 하나님이 보실 때 좋은 것이라고 인정해주실 수 있는 것인가, 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긍휼의 마음이 지배하는 사람은 확실하고 영원한 복을 누립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입니다사람으로 부터도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귀히 여김과 존경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으로 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입니다.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