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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보는 복/ 에스겔 36 장 24-28절, 마태복음 5장 8절
며칠 전 이런 광고 말을 보았습니다,“마음을 버리면 삶의 지혜와 행복을 얻습니다.”괞찮은 말이다 하고 여기다가 얼핏 다시 그 말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지혜와 행복을 얻는 것은 참 귀하고 중요한데 그 길이“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마음이 과연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아야되지 않는가, 그리고 마음을 버리는 것은 어디 쉬운 일인가, 또 가능한가…그러면서 성경은 마음을 버리라고 어디에서도 가르치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영원히 좋도록 지혜롭게 사는 길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지요. 그리고 행복을 얻는 길, 곧 행복한 사람으로 사는 비결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그러나 “마음을 버리라”, 성경은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으로, 복을 누리며, 복을 널리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사는 비결 8 가지를 예수님은 마태복음 5 장에서 가르쳐주십니다. 그 중에서 여섯 번째의 복은“하나님을 보는 복”입니다.“마음이 청결한 자”가 누리는 복입니다. 마음과 관계된 복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복을 먼저 생각해보십시다.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보는 것”,“보는 복”입니다. 요즈음은 개안 수술도 상당히 발달되었습니다. 한국의 실로암 안과 병원은 못보는 가난한 어린이들의 눈을 수술해서 보게합니다. 교회들이 재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1981
년에 62 세인 Anna Mae Pennica라는 미국 여인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나면서 부터 전혀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습니다.
UCLA의 교수 Dr. Thomas Pettit가 이 여인의 눈에서 아주 드물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백내장 수술(to remove the rare congenital cataracts)을
성공적으로 했습니다. 그 여인이 나서 처음으로, 62 년 만에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부인의 말입니다,“모든 만물이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크고 좋고 밝군요!”만물이 기대했던 것 보다 더 좋게 보인다는 감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을 보는 것은 어떠할가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가장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를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은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을지라도 그 사람은 육신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라…”(출33:20)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통하여 사람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영적인 분이시기에 피조물인 사람이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아니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모두,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결코 용납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게 된다고 말 씀하십니다. 그러면“본다”는 무슨 뜻인가요?“안다”입니다.“아는”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강조한 사람도 있습니다. 특별히 과학 기술 문명이 급속히 발달되는 현대에는“아는”것은 아주 필요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4 년 동안 수학을 공부했지만 콤퓨터를 저가 원하는 만큼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꼭 필요할 때 아들 들에게 도움을 받습니다. 그럴 때 마다 좀 챙피한 생각이 들곤합니다.
“아는” 것은 참 좋고 또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는 방법이 여러 가지입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서 압니다. 물건이나 물체는 그렇게 압니다. 음식은 눈으로도 보아야지만 입으로 맛을 보아야 압니다. 그러니까 음식은 입으로 안다, 그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향기는 코로 맡아서 압니다. 향기를 눈이나 손으로 만져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음악은 귀로 들어서 아는 것입니다. 음악인들은 악보를 보고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요. 그러나 음악은 들어서 알게 됩니다. 그런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코로 맡아서 아는 것이 아는 것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이 눈, 귀, 입, 코, 손의 5 가지 감각으로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는 것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게 알아야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령 어머니의 사랑을 아는 길은 무엇인가요? 눈으로도 보아야 하고 또 손으로도 만져서 압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진짜 아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인데 그 사랑은 마음과 가슴으로 느끼고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아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아는”것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믿어서 영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신령한 복들을 마음 깊이 체험적으로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야곱이 쌍둥이 형 에서를 속여서 첫째 아들인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 사실을 안 형이 죽일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먼 곳의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칩니다. 가진 것은 개나리 봇짐 하나 뿐입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광야입니다. 불안과 염려, 외로움이 컸었습니다. 하지만 피곤한지라 돌베개를 고이고 잠에 빠졌습니다.“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킬것이라…”(창28:15) 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외칩니다,“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 야곱의 앞날을 보호, 인도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과연 여기 계시거늘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이 지금 여기, 곧 삶의 현장에 함께 하시는 데 몰랐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불안해 하고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알게 된 야곱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과연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여호와레”(창22:14)이십니다.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이 알았던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에벤에셀”이십니다.(삼상 7:12)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앞날도 반드시 도우시는 아버지이십니다.“임마누엘”이십니다.(사7:14, 8:8) 나와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여주십니다. 믿음과 능력과 소망을 주셔서 어떤 형편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이기 게 하시는 하나님, 승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한국 근대사에서 크게 존경받는 분 중의 한 분이 백범 김 구 선생님입니다. 그 분의 자서전인“백범일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릴 때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할려고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돈이 급제를 결정하던 때라 급제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습니다,“관상쟁이가 되면 생계는 걱정 없겠다!”아버지 말씀대로 김 구는 관상책을 사서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다른 사람의 관상을 보아주기 전에 자신의 관상을 먼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관상을 보니 천하에 불길하고 흉한 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김이 아주 팍 샜습니다. 관상쟁이가 되는 것을 포기할려고 마음먹고 관상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습니다. “관상(觀相)은 신상(身相)만 못하고 신상은 심상(心相) 만 못하다”그 한 줄이 김 구 선생의 일생을 완전히 바꾸어놓 았습니다. 무슨 뜻의 글인가요? 관상 즉 얼굴이 잘 생긴 것, 그것 보다는 신상, 즉 몸의 건강이 더 좋고, 신상, 곧 몸의 건강 보다는 심상, 곧 좋은 마음이 더 좋다, 입니다. 마음이 제 일 중요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입니다,“생명의 근원”이 마음이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잠4:23)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요? 만약 예수님이“얼굴이 아름다운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복은 커녕 불행을 느끼며 살지 않았겠습니까? 신체가 날씬한 팔등신은 복이 있나니? 높은 권력을 가진 자가 복이 있나니? 부자가 복이 있나니? 머리가 아주 뛰어난 자가 복이 있나니? 예수님이 그렇게 복을 약속하셨는가요? 아닙니다,“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음”입니다.“마음이 청결한 사람”, 오직 그 사람 만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정직입니다, 단순함입니다, 겸손함입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어린아이의 특성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 그런 사람의 마음 중에서도 그래도 깨끗한 마음이 어린아이의 마음입니다. 어린아이는 속임수를 부리지 못합니다, 대체로 정직하지요. 어린 아이는 겸손하고 단순합니다. 듣는 그대로 믿고, 특별히 부모님을 절대 의지합니다. 성령님께서 어린아이 같은 정직으로, 단순함으로, 겸손으로, 전적으로 하나님 만을 의지하는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하십니다.
감사가 마음을 청결하게 만듭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받고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들을 기억하고 보답해드리기를 소원하며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을 드높여드리기를 원합니다. 감사는 마치 안경이나 자동차의 유리에 끼인 먼지나 더러움을 씻어내는 가장 좋은 세척제와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입니다.“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15:3)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믿고 받아들이며 순종할 때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합니다.“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5:26)
오늘의 말씀인 에스겔 36장 25절입니다,“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맑은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을 씻어서 깨끗케하고도 남는 효력과 능력이 있습니다. 에스겔 36 장 26절입니다,“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굳은 마음을 제하고”, 성령님은 성경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없애주십니 다.“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새 마음, 곧 청결한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청결하다”는 무슨 뜻이지요? 불순물이 섞이지 않았다, 더렵혀지지 않았다, 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청결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더럽혀졌습니다. 죄로 인해 더렵혀졌어요.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성령님은 죄로 인해 마음에 끼인 온갖 더러운 것들을 씼어내어주셔서 우리의 마음이 "청결한 마음" 되게 하십니다.“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슥13:1)“죄와 더러움 을 씻는 샘”입니다. 그 샘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입니다.
오래전 영국에 윌리엄 카우퍼라는 아주 뛰어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십대에 변호사가 되어 그야말로 출세가도를 달려가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변호사는 세상적으로 재물과 명성이 크게, 높이 쌓여갈 수록 우울증이 깊어갔습니다.“겉으로는 선한채 가장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죄를 저질러 오지 않았는가? 너는 가망이 없는 존재다!”마귀가 그렇게 우울증으로 공격했습니다. 이 변호사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온 친구가 전도했습니다,“형제여,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만을 의지하십시요!” 카우퍼 변호사의 마음을 성령님이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야 말로 청결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죄 용서함받은 은혜가 너무도 크기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샘 솟 듯하는 피 권세 한 없이 있도다…날 정케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 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찬190 장)
단순하고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으로, 그리고 감사로 마음을 정결토록 가꿉시다. 성경 말씀을 늘 읽고 마음에 간직하고 묵상함으로 마음을 정결하게 가꾸고 지켜나갑시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고도 남는 효과와 능력이 있기에 그 피의 공로만 의지하며 회개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때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되게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분명히 아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것임이요”, 아멘
